[윤종록교수의 창조정신 후츠파로 일어서라]<5>상상력을 섞어라

전투기 조종사 출신의 눈으로 고안된 이 축전지교환장치는 `베터플레이스`에 차가 들어오면 300Kg이 나가는 방전된 축전지를 2분 이내에 새것으로 교환한다. 이로써 하이브리드가 아닌 100% 전기자동차 시대를 구현했다
전투기 조종사 출신의 눈으로 고안된 이 축전지교환장치는 `베터플레이스`에 차가 들어오면 300Kg이 나가는 방전된 축전지를 2분 이내에 새것으로 교환한다. 이로써 하이브리드가 아닌 100% 전기자동차 시대를 구현했다

 세계 경제는 단순한 굴곡이 아닌 패러다임 변화에 처해 있다. 우리가 부러워했던 선진국들이 국가 부도를 목전에 두고 있다. 이제 경제는 최고 기술과 이론으로 무장한 기업이라 하더라도 상상의 자유지대가 아니면 우위를 점할 수 없는 처지에 몰리고 있다.

 

 새로운 지식기반 경제는 1만명이 모여서 1만개의 밸류를 만들고 1만명이 그것을 나눠 갖는 산업경제와는 다르다. 불과 100명이 모여서 1만개의 밸류를 만들고 그것을 분배하게 되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9900명은 참여 기회도 분배 기회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이 같은 새로운 경제 질서는 빈부 격차를 더욱 넓히고 고용 기회보다는 부의 편중을 가속화하고 있으며 세계 젊은이들이 분노하는 ‘월가 반란’의 단초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삼성, LG와 같은 산업사회에서 출발한 재벌과는 많이 다르지만 이스라엘에도 재벌은 있다. 우리의 재벌은 제조업에서 출발해 수십만명의 고용인을 거느리는 모델이지만 이스라엘 IT기업인 RAD그룹은 주력 사업인 정보통신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기업을 만들고 육성해 그 기술이 필요한 자에게 되파는 모델이다. 한때 나스닥에 상장된 4개 계열사를 거느렸지만 불과 2500명 이내 하이테크 기업으로서 수백개의 특허를 앞세워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주로 연구개발 업무를 대행하는 사업모델이다.

 우리가 지난 30년간 잘 꾸려왔던 제품생산은 개도국으로 이전돼 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우리는 그들이 만들어놓은 제품에 영혼을 불어 넣어 서비스나 솔루션으로 가치를 높여야 한다. 주인이 다가가면 반갑다고 꼬리를 흔드는 자동차, 하루 일과를 마치고 귀가하면 주인에게 운동량과 걸음걸이를 교정해주는 신발, 식사 중인 주인의 염분 섭취량을 알아내고 제지하는 숟가락 등이 이스라엘식 상상개발 모델이다.

 해저 221미터 갈릴리 호수에서 퍼 올린 물을 암반층에 저장하고 그곳에서 물고기를 기른다. 거기에서 나온 배설물을 이용해 유기농사를 짓는다. 저장된 물은 섭씨 38도의 온천수, 그리고 염도는 민물과 해수의 중간 정도로 바뀐다. 그래서 여기에 맞는 물고기를 개발한 것이 우리가 1970년대 값싸게 즐겨 먹었던 향어(이스라엘 잉어)다. 지질학자와 생물학자가 서로 만나야 가능한 상상이다. 세상에서 가장 적은 물로 가장 많은 생산성을 올리는 ‘네타핌’ 경영은 한 마디로 사막에서조차 물고기를 기르는 불굴의 정신으로 대변된다.

 방전된 자동차용 축전지를 충전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방전된 축전지를 3분 내에 새것으로 갈아 끼우는 방법을 제안한 것은 전기전문가가 아니었다.

 차량가격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축전지를 ‘베터플레이스’라는 충전소가 소유하고, 차량 소유자는 몇 년 동안 그것을 임차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운전자는 장시간 운전 후 방전 시 전국 200개 충전소 어디서나 2분 안에 충전된 새것으로 갈아 끼울 수 있도록 한 것은 전투기 조종사 출신 직원이 제안한 미사일 장착용 로봇에서 나왔다.

 원유가 전혀 생산되지 않는 이스라엘은 주변국가가 원유를 팔아서 무기를 사들이고 그 무기의 총 부리가 자기네들을 겨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절박한 환경에서 이스라엘은 ‘석유가 없이도 돌아가는 지구’를 국가적 미션으로 정하고 하이브리드(석유와 전기를 같이 사용) 전기자동차는 아예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생겨난 회사가 베터플레이스다. 만약 이 곳의 축전지 탈착규격이 세계표준으로 채택된다면 아마 구글보다 더 큰 회사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전기기술자가 아닌 전투기 조종사의 눈으로 바라본 간단한 해법이었다.

 스티브 잡스가 만들어낸 혁신은 모두가 상상력에서부터 출발했다. 정작 그가 새로운 기술을 창조해낸 것은 하나도 없었으며 단지 있는 기술을 끌어 모아 그 상상력을 섞어서 실현한 결과였다.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면 책상으로 나가서 메일을 체크하는 대신에 따스한 이불 속에서 연결하고 손가락 움직이는 것도 귀찮아서 음성으로 명령을 내리는 상상으로 충분했다. 나머지는 세상에 있는 기술을 끌어 모으고 없는 기술은 사들이는 방법으로 즉시 구현할 수 있었다.

 연구개발(R&D)이 아닌 상상개발(I&D:Imagination & Development)로 남보다 앞설 수 있었던 것이다. 연구개발이 불과 1%에 해당하는 최고 과학자의 영역이라면 상상개발은 어린 학생과 주부도 참여 할 수 있는 열린 개발이기도 하다.

 이제 전국의 공공 도서관에 ‘무한 상상실’을 꾸미자. 인터넷 세상보다 훨씬 이전에 만들어진 도서관의 개념도 책을 읽고 탐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서로의 상상력을 섞어 창조적인 기회를 만들어내는 도장으로 널리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에서 탄생된 21세기의 대작 ‘해리포터’도 5만개나 되는 전국의 ‘스토리텔링 클럽’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가족들이 각자 클럽에 나가 상상력을 섞는 문화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이제 전 국민의 상상력이 지원이다. ‘무한 상상실’을 통해 주부, 학생, 퇴직자 등 전국민의 상상력을 자원화할 때다.

 윤종록 연세대학교 연구교수 jonglok.y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