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사외이사제 대폭 손질…금융위도 법제정 추진
(서울=연합뉴스) 한승호 이율 한지훈 기자 = 정부가 기업 경영에 대한 감시와 견제 기능을 제대로 못하는 사외이사제도의 개선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정부는 상장사들이 권력 출신을 사외이사로 뽑아 `로비용`으로 활용하는 행태를 막는 방안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20일 "사외이사의 문제점 개선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면서 "권력층 고위직 출신이 전문성은 없이 `로비용` 사외이사로 이용되는 등의 현상을 막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논의를 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면서 "방안이 구체적으로 나와 확정되면 언론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사외이사들이 원래의 기능을 제대로 하도록 상법 회사편을 폭넓게 손질한다는 뜻이어서 주목된다.
◇ 권력ㆍ자본 독립성 강화에 초점
법무부는 지난해부터 상법특별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하면서 사외이사 제도를 비롯한 상법 전반에 대한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유명무실`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사외이사 제도개선에 대해서는 기업의 지배구조 건전성 제고를 통한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비중있게 다뤄질 전망이다.
특별위원회 실무 관계자는 "사외이사가 갖춰야 할 덕목은 독립성과 전문성 두 가지다. 로비를 줄인다는 것은 독립성을 강화한다는 의미다"면서 "독립성과 회사업무를 잘 알아야 하는 점의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도 사외이사를 두지 않아도 됐던 자산 2조원 미만의 금융회사 이사회의 4분의 1은 사외이사로 채우도록 하고 사외이사의 자격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의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 제정안을 지난달 입법예고했다.
경영진과 이해관계가 있는 해당 금융회사나 계열사의 상근 임직원은 퇴직 후 3년 이내에는 사외이사가 될 수 없다. 금융지주회사의 상근임직원과 비상임이사도 역시 퇴직 후 3년 이내에는 자회사 사외이사가 될 수 없다.
사외이사 선임과정에서 경영진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해 현재 2명 이상으로 규정된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정원을 3명 이상으로 늘리고 과반수를 사외이사로 채우도록 했다.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은 본인을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하지 못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제정안에 대해 관련업계와 전문가 의견수렴을 거쳐 올해 정기 국회에서 제정안이 통과되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시행령을 통해서는 사외이사의 자격요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담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 공직자 출신 39%…`찬성 거수기`
정부가 이처럼 제도개선에 나서는 것은 권력기관 등 공직 출신이 늘면서 사외이사들이 로비에 전념하거나 `찬성 거수기` 역할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지난해 6월말 현재 총수가 있는 30대 그룹 1천140개 계열사의 사외이사 799명 가운데 공무원 출신 인사가 지난해 256명보다 52명 늘어난 308명이었다. 전체의 38.5%에 해당하며 전년 32.9%에 비해 5.6% 포인트 올라갔다.
판ㆍ검사 출신은 84명에서 97명으로, 정부 장ㆍ차관 출신 인사는 37명에서 49명으로 각각 늘었다. 국세청 출신도 전년보다 12명 늘어난 46명으로 파악됐다.
금감원 출신이 8명에서 12명, 공정위가 11명에서 13명, 감사원은 8명에서 10명으로 각각 늘었다.
전관예우 관행이 심한 공직사회 풍토를 회사의 대정부 업무 등에 활용하려고 공직자 출신을 선호하면서 이같은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또 지난해 11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밝힌 `대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 정보공개`를 보면, 시가총액 상위 100개사 중 대기업 집단 소속 79개 회사의 전년 이사회 운영 결과 상정안건 2천20건 가운데 사외이사 반대로 부결된 안건은 1건에 불과(0.05%)했고, 2천13건(99.65%)는 그대로 가결됐다.
사외이사들이 기업 현안에 대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찬성 거수기`로 전락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 사외이사 진입 요건ㆍ투명성 강화해야
사외이사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외이사 진입 요건과 추천과정의 투명성이 강화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의 이시연 연구위원은 "로비용 사외이사의 활동이 정도를 넘어선다는 것이 사외이사제도의 큰 문제점"이라며 "권력층 고위직이 로비용 사외이사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결격사유를 명시하고 냉각기간(사외이사진입 금지기간)을 확대하는 등의 조치를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는 상장사의 경우 내부 임직원에 한해 사외이사 진출을 제한하고 있으나 정부 고위직이라 해서 막는 규정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사외이사 활동이 깨끗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강조했다.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는 "사외이사 추천시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이 회장과의 친소관계이고 당장 해결해야 할 기업 현안이 무엇이냐를 그 다음으로 따진다"면서 "상시 관리가 필요한 권력층에 대한 배려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기준으로 선임된 사외이사가 견제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면서 "사외이사 추천과정을 투명하게 하기 위한 장치들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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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