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4S가 발표되자 마자 모두 몰려왔습니다. 하나같이 ‘시리’와 같은 음성인식 서비스를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지난 주 전자신문이 ‘한국형 시리 개발 경쟁이 뜨겁다’라는 기사를 보도하자 국내외 솔루션 업체 관계자들이 이래저래 뒷이야기를 전해왔다. 국내 기업들은 애플 ‘시리’가 발표된 다음날부터 부랴부랴 움직였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스마트폰 음식인식에도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시장 추격자)’ 전략이 가동된 셈이다.
이런 후일담은 뒷맛이 씁쓸하다. 아직도 ‘아이폰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우리 기업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았다.
24일 애플이 지난 4분기 깜짝 실적을 발표했다. 삼성전자 전체 매출을 앞질렀고, 영업이익도 무려 4배나 많았다. 스티브 잡스가 없어도 ‘애플 생태계’는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다.
반대로 미국 안드로이드폰 1위 기업으로 기세등등하던 HTC는 아이폰4S가 출시된 지난 4분기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패스트 팔로어’의 대명사로 여기던 HTC 전략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분석이 쏟아졌다. 하드웨어 혁신 역량이 약한 HTC가 먼저 제물로 바쳐졌지만, 다음은 우리나라 기업이 될 것이라는 경고도 나왔다.
소니가 최근 발표한 스마트폰 대반격 전략은 그래서 눈에 띈다. ‘노조미(희망)’라는 이름으로 준비한 전략의 핵심은 ‘소니식 독자 콘텐츠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소니엔터테인먼트 등 그룹 역량을 총동원해 음반·영화·게임 등 독자 콘텐츠 제공 플랫폼을 운영하기로 했다. ‘앱스토어’와 ‘안드로이드 마켓’이 양분한 가운데 소니로서는 일종의 승부수다. 그래도 독자 생태계가 아니면 장기적으로 차별화가 힘들다고 판단했다. ‘시리’ 베끼기에 연연한 국내 기업들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우리나라 기업도 물론 TV와 스마트폰을 연동하는 독자 앱 개발에 최근 나섰다. 하지만 얼마나 힘이 실릴지 미지수다. 시리 베끼기에서 보듯, 당장의 성과가 나오는 ‘패스트 팔로어’의 유혹에 여전히 취약하기 때문이다.
쫓아가면 2등밖에 못한다. 노키아와 리서치인모션처럼 한방에 훅 갈 수도 있다. 이젠 판을 바꾸는 장기 전략이 필요하다. 만년 추격자는 만년 마이너일 뿐이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