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강력한 담합 근절에 나서는 것은 일등 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소비자단체가 담합 손해배상 청구에 직접 나서는 등 사회적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 것도 삼성 행보에 영향을 미쳤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는 등 경기상황과 무관하게 최고 경영 성과를 내고 있다. 삼성이 담합 근절에 적극 나서는 것은 일등기업 입지를 강화하면서 일부에서 나타날 수 있는 곱지 않은 인식까지 적극 차단하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다. 정공법으로도 ‘초일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어느 정도 반영됐다는 해석이다.
◇담합은 분명한 ‘해사 행위’=삼성이 그룹차원에서 담합에 대해 강력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재계에서는 임직원이 담합에 가담해도 위법이라는 생각이 적었다. 오히려 ‘회사를 위해 총대를 멘 것’이라는 인식도 존재해 왔다.
삼성그룹은 25일 ‘담합은 분명한 해사 행위’라고 못 박았다. 일시적 이득보다는 기업 이미지 손실, 소비자의 부정적 인식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직시한 것이다.
이제는 소비자단체가 직접 나서 담합에 대해 손해배상도 추진하는 시대다. 녹색소비자연대는 담합이 확인된 삼성전자·LG전자에 대해 손해배상 민사소송을 추진 중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일시적 과징금 부과를 넘어 더 큰 금전적 피해까지 고려할 수밖에 없어진 것이다.
담합은 국내에서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해외시장에서 담합에 대한 징벌은 더욱 강력하다. 글로벌 우량기업을 지향하는 삼성은 이에 대한 대비도 시급했다는 분석이다.
업계 조사에 따르면 우리 기업이 최근 10년간 미국과 유럽연합(EU)에서 부과받은 과징금은 2조4000억원, 징역형 이상을 선고받은 임직원도 12명에 달하고 있다.
◇미래 ‘부정’까지 차단=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2일 삼성전자와 LG전자 담합을 밝혀내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건은 2008년부터 2009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지난해 10월 적발된 삼성생명의 예정이율·공시이율 담합 건도 2001년부터 2006년 사이 발생한 일이다. 수년전 벌어진 일이지만 ‘최고 실적을 내는 삼성이 이런 일을 했느냐’는 비난은 최근 다시 불거졌다.
담합은 이처럼 발생 즉시 발견되지 않는다. 수년이 지난 후 담합 참여자의 고백이 있어야 그 사실이 밝혀지곤 해왔다.
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담합을 포함한 준법교육을 강화한 것은 지난 2010년부터다. 올해 담합 근절 종합대책까지 마련하기로 한 것은 미래에 나타날 부정이나 기업 이미지 손상까지 원천 차단하겠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CEO 책임 강화·담합 근절 확산도 기대=삼성이 다음 달 내놓을 담합 근절 대책의 핵심은 경영자에 대한 책임강화다. 김순택 미래전략실장이 “담합은 일선 현장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면서 “사장(CEO) 책임이라 생각하고 담합 근절을 위한 근본적이고 구체적이며 현실적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한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적발된 임직원에게 ‘무관용’ 원칙도 강화된다.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은 “담합을 부정과 똑같은 행위로 간주해 관용 없이 처벌하겠다”고 강조했다.
삼성의 담합 근절 정책이 재계 전반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크다. 삼성은 계열사마다 대부분 업종에서 선두를 차지하고 있다. 보통 담합은 후발주자보다는 업계 상위에 올라 있는 기업 간 이뤄져 왔다. 삼성이 강력한 담합 근절에 나설 경우 담합 대상자 자체가 크게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담합 근절 기업 문화 확산도 기대해볼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재계 1위 삼성의 강력한 담합 뿌리 뽑기는 다른 그룹에도 기업문화처럼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