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기 전에 고백하듯 창업하라!

[윤종록교수의 창조정신 후츠파로 일어서라] <9>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택한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에서처럼 두 갈래 길 앞에 선 이스라엘 청년들은 당연히 누구도 가보지 않은 숲으로 난 길을 택한다. 그들은 기억(Memory)의 반대어가 망각이 아니라 상상(Imagination)이라고 생각한다. 기억은 낯익은 과거로의 여행이고 상상은 낯선 미래로의 여행이기 때문이다. 비록 위험할 수도 있지만 히브리어를 구사하는 유대인의 호기심은 리스크 편에 선다. 우연하게도 그들의 언어인 ‘히브리(Hebrew)’가 ‘반대편에 선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이스라엘 고교생 90%는 졸업 후 곧바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군 복무를 먼저 마친다. 수학, 과학성적 우수자들은 엘리트 부대가 우선 낚아챈다. 그들은 거기서 집중 훈련을 마친 후 병사를 지휘하고 수백만달러나 되는 장비를 다루며 생과 사를 가르는 중요한 결정을 스스로 내리게 된다.

 군대에서의 구호는 항상 “나를 따르라!”다. 그러나 이 의미는 우리와 사뭇 다르다. 지휘자는 최소한의 지침만 내려주고 나머지는 명령을 어기는 한이 있더라도 지휘를 받는 자가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도록 교육 받는다.

 이스라엘 기업 지속성장 비결은 인텔 이스라엘 연구소 슬로건에서 엿볼 수 있다. ‘문 닫을 위기에서도 끝까지 버티는 것’이 아니라 ‘혁신으로 끝까지 살아남는 기업’을 지향하는 것이다.

 컴퓨터 회로 밀도가 높아지며 발생하는 발열문제를 1단 기어를 장착한 엔진에 견주어 다단계 변속기어 개념으로 풀어낸다. 이처럼 멈춰버릴 것 같았던 무어의 법칙을 살려낸 것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남들이 전혀 가지 않은 길을 택한 덕분이다.

 지난 60년, 이스라엘 인구 70%가 이민자로 채워지는 동안 수많은 작전이 있었다. 에티오피아 유대인 1만5000명을 비행기 36대로 하루 밤에 공수해온 ‘솔로몬 작전’이 그랬고 4만9000명 예멘인을 3주에 걸쳐 공수해온 ‘마법의 양탄자’ 작전이 그랬다.

 심지어 루마니아 유대인 4만명을 데리고 오는 대가로 독재자 차우셰스쿠에게 11억2500만달러를 지불하기까지도 했다. 1인당 비용으로 환산한다면 2700달러가 넘는 금액이다. 만약 연말 라디오에서 이민자 수가 줄었다는 뉴스가 나오면 마치 그 해 강수량이 모자란다는 뉴스처럼 나쁜 소식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들에게 이민자란 다시 시작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들이다. 이민자의 나라가 바로 기업가들의 나라로 인식된다. 그 후 옛 소련으로부터 하이테크 중심 이민자 80만명을 흡수하면서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그들의 무한도전과 정부 배려로 확실한 과학기술 중심국가로 도약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 젊은이들은 맘에 드는 여성을 만나면 그 날 해가 지기 전에 프로포즈하고 사업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 주가 가기 전에 창업한다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실행력을 중시한다.

 ‘내일 몇 시에 어디서 만납시다’가 아니라 ‘다음에 봅시다’라고 했다면 그 일은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내가 KT 임기를 마치고 뉴욕 벨연구소에 근무하러 도착한지 1주일 만에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이스라엘 청년들이 메일을 보내왔다. 내용은 “당신이 뉴욕에 와있다고 들었는데 이번 주 토요일에 맨해튼 32번가 246번지에 있는 음식점에서 점심 때 봅시다”였다.

 만나자마자 거두절미하고 지난주 벤처를 차렸는데 사외이사를 맡아달라는 부탁은 차라리 명령이었다. 그들은 거의 반 강제로 승낙을 얻은 다음 내게 온 경위와 사업모델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이스라엘 신문에 소개된 기사에서 내 정보를 알게 됐고 이스라엘에 있는 지인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28세, 31세 젊은이였고 이미 벤처를 두 번이나 실패한 경험이 있는 소위 우리나라의 신용불량자쯤 되는 친구들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곳 이사장(사외이사)은 내가 이스라엘 수상의 초청으로 2005년 방문 시 이스라엘에서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연간 특허매출 1조2000억원을 자랑하는 히브리 대학 기술지주회사인 이숨(Yissum)의 이사장이었다. 사회적으로 덕망 있는 리더들이 자청해서 멘토를 자청하며 무보수로 봉사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결국 내 소개로 미국 벨연구소와 협력관계를 맺고 양사가 공동으로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 주요 인터넷사업자들과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그들은 인터넷 트래픽이 집중되는 병목구간을 재빨리 예측하고 소프트웨어를 가동해 즉시 논리적으로 다른 루트를 만들어 내는 개념 하나로 무작정 사업을 시작했다. 기술 개발은 여러 인적 네트워크로 연결된 벨연구소 노하우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2년 만에 성공을 눈앞에 둔 두 젊은이가 남긴 여운이 있다면 그들이 선택한 ‘프로스트의 길’이었다. 그리고 세계 어디가 되든지 끝까지 필요한 네트워킹을 찾아내 도와주는 시스템은 사회의 몫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2012년 국정연설에서 일자리를 42번이나 언급하며 “일자리 창출에 필요하다면 지구 끝이라도 기꺼이 달려가겠다”고 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윤종록 연세대학교 연구교수 jonglok.y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