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합종

 글로벌 반도체 업계가 손을 잡는다는 기사가 이번 설 연휴기간 동안 일본 주요 매체 1면 머리로 올라왔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국내 반도체 기업에 대항하기 위해 3위 업체인 일본 엘피다가 4, 5위 업체인 미국 마이크론, 대만 난야 등과 경영통합을 추진한다는 내용이었다.

 전쟁터로 비유되는 기업 경쟁에서 선두 기업을 견제하거나 대항하기 위해 힘을 합치는 것을 흔히 ‘합종연횡’으로 지칭한다. 정치판 ‘이합집산’도 같은 의미다. 미국·대만·일본 반도체 기업들의 통합 추진 소식은 바로 산업계의 합종연횡이자 이합집산이다.

 합종연횡의 기원은 BC 4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전국시대때 등장했던 두가지 외교 전략인 ‘합종(合從)’과 ‘연횡(連衡)’을 합친 것이다. 연합이라는 형태는 같지만 두 전략은 서로 반대의 뜻을 갖는다. 합종은 힘을 합쳐 최강국인 진나라를 견제하자는 뜻이지만 연횡은 진나라를 섬기자는 의미를 담고 있어 오히려 연합을 깨는데 사용됐다.

 글로벌 반도체 3사의 통합 추진은 합종에 해당한다. 전국시대의 합종은 결실을 이뤄낸 반면 이번 반도체 3사 합종은 결과가 불투명하다.

 전국시대 당시 6개국을 돌며 합종설을 주장했던 것은 ‘소진’이라는 입지전적인 인물. 세치 혀로 나라를 일으켜 세우겠다는 야망을 가졌던 그는 ‘진 밑에서 쇠꼬리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닭의 머리가 되자’고 나머지 국가들을 설득시켜 합종에 성공한 것으로 유명하다.

 통합 추진에서 엘피다는 소진의 역할을 자임하고 있지만 설득력은 떨어진다. 겉으로는 ‘한국반도체 업계 견제’를 외치지만 속내는 ‘자사 위기 탈출’에 있기 때문이다.

 엘피다는 지난해 말부터 자금난에 시달리면서 일본 정부의 구제금융 지원을 기다리는 상황까지 내몰렸다. 통합 추진 목적은 ‘살아남고 보자’다. 목적이 틀린 합종 의의를 다른 기업들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이번 합종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이유다.

서동규기자 dk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