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법무부가 증선위원 자리를 요구했다"
법무부 "효율적인 사건처리를 위한 것이었다"
(서울=연합뉴스) 한승호 박상돈 한지훈 기자 = 주가조작 사범에 대한 과징금제 도입방안이 법무부의 금융당국 내 고위직 자리 요구 때문에 무산된 것으로 드러났다.
정치테마주가 기승을 부리는 등 증시에서 주가조작이 범람한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이 같은 사실이 밝혀져 파장이 예상된다.
금융계 고위 관계자는 29일 "주가조작에 대해서 신속하게 과징금을 물릴 수 있도록 하는 금융당국의 제도 개선안이 무산됐다. 법무부가 과징금제를 도입하는 조건으로 금융위 내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 위원 한 자리를 자신들에게 달라고 요구했으나 금융위가 거절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금융위는 주가조작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하는 제도의 마련을 위해 2010년부터 법무부와 협의를 벌였다. 그러나 법무부의 반대로 지난해 11월 자본시장법 개정안에서 과징금제가 빠졌다.
금융위 관계자는 "주가조작에 대한 과징금제 도입방안을 법무부가 거부해 행정부 내에서 관련 논의는 끝난 상태"면서 "법무부가 부처 협의과정에서 1급 자리인 증선위원을 요구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증선위원은 과징금 부과와 같은 사안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불공정행위 관련 모든 업무와 금융정책을 결정하기 때문에 법무부 인사가 증선위원이 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금융위 지배구조 자체를 흔드는 요구여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증권가에서는 `작전`이 범람하고 있는 상황에서 법무부가 1급 자리를 챙기려다 안되니 과징금제도 자체에 제동을 걸은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다른 일각에서는 법무부가 과징금제를 무산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금융당국이 수용하기 힘든 자리를 요구한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증권업계의 한 임원은 "법무부는 기업의 공정경쟁 위반사안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자체적으로 과징금을 물릴 수 있도록 과거에 허용한 것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다. 자기부처의 권한을 축소시킨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금융위에 과징금 권한을 주지 않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무부도 1급자리를 요구한 것 자체에 대해서는 시인하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금융위와 부처 협의를 하는 과정에서, 증선위에 직접 참여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으로 고려했었다"면서 "(증선위에) 민간 위원도 있어 수사 기밀이 누설되고 사건처리도 오래 걸리고 있다. 수사 보안을 강화하고 좀 더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하기 위한 취지로 증선위 참여를 검토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금융범죄 처벌이 약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고 주가조작에 대한 과징금 부과의 필요성도 있다고 본다"면서도 "하지만 엄격한 형사처벌이 무력해질 수도 있어 금융범죄에 대한 처벌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절차 개선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차원에서 과징금제를 반대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공시 위반의 경우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지만 주가조작에 대해서는 부과 근거가 없어 검찰로 넘기기만 하고 있는데, 형사 처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그나마 기소율도 낮다.
이를 고려해 위법성이 낮은 시장질서 교란행위는 과징금 부과를 통해 단속의 실효성을 높이자는 취지로 과징금 도입 논의가 시작돼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도 넓어졌으나 결국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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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