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전되는 `스마트그리드`

스마트그리드(지능형전력망)의 거품이 빠지고 있다. 예상만큼 수익이 발생하지 않자 업계가 발을 빼고 있다. 사실상 정부가 추진하는 과제나 실증사업 이외에는 매출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1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스마트그리드 분야에서 가장 활발하게 참여 중인 한국전력을 비롯한 관련 업체들이 사업을 잇따라 축소하고 있다.

한전은 최근 사장 직속의 스마트그리드추진실을 3년만에 개발사업본부 아래 스마트그리드추진처로 변경, 기존의 4개팀을 2개팀으로 축소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한전은 당초 스마트그리드추진실에서 하던 업무를 신재생개발처 소속으로 바꾸기로 했으나 지경부와의 협의를 거쳐 `스마트그리드` 이름은 유지하기로 했다.

한전은 스마트그리드 제주실증단지 5개 전 분야와 한국형마이크로그리드(K-MEG)과 원격검침인프라(AMI)보급사업 등을 주도하고 있다. 그만큼 투자와 집중도가 높았다.

한전 관계자는 “(한전)재무구조 악화로 실적개선이 중요한 상황이라서 스마트그리드가 우선순위에서 다소 밀린 건 사실”이라며 “4개팀을 2개팀으로 줄일 예정지만 기존 업무는 다른 부서로 이관돼 사업진행에는 문제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전과 더불어 국내 전기·전력의 기술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한국전기연구원도 지난해 말 조직개편에서 스마트그리드연구본부를 차세대전력망연구본부로 바꿨다. 모든 조직에서 스마트그리드라는 단어를 없앴다.

상황은 민간 업체도 마찬가지다. SKT는 지난해 스마트그리드사업본부와 스마트시티사업본부를 스마트인프라사업본부로 통합, 스마트그리드 조직을 축소했다. KT도 올해 초 조직개편을 통해 사업단장을 교체하고 성과 중심 조직으로 재편했다.

업계는 스마트그리드를 장기적이고 현실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한 사장은 “우리는 일본·미국처럼 양방향 통신을 지원하는 전력량계조차도 없는 기초적인 수준인데다 한전의 전력산업 독점구조로는 경제논리에 입각한 시장형성이 불가능하다”며 “이런 근본적인 문제 해결 없이 정부의 지원정책은 오히려 거품만을 조장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정부과제 말고는 할 게 없어 대부분 기업들이 경영 윗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업계가 조직을 축소하는 것은 오히려 지금의 시장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는 만큼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한다”고 말했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