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관 건립, 결사 반대!`
몇 주 전부터 지금 사는 아파트 근처에 플랭카드가 붙기 시작했다. 정부가 종로 창경궁 옆에 있는 서울과학관을 하계동 불암산 도시자연공원 인근으로 이전하는 방침을 정하면서부터다. 창경궁 과학관 건물 소유주인 문화체육관광부가 청사를 옮기면서 서울과학관은 하루라도 빨리 새 둥지를 마련해야 할 형편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자연 산책로가 있는 조용한 동네에 아이들로 북적거릴 과학관이 들어서는 것이 못내 불만이다. 실제로 공휴일이나 주말에는 과학관 방문객으로 동네 주변이 소란스러울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동네 아파트 입구에 과학관 이전을 반대하는 플랭카드까지 붙게 됐다.
![[주상돈의 인사이트]과학관 건립, 결사 찬성 !](https://img.etnews.com/cms/uploadfiles/afieldfile/2012/02/09/240226_20120201182410_057_0001.jpg)
그러나 과학관 이전을 반대하기 앞서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사실이 있다. 서울과학관은 단순한 어린이 놀이터가 아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개관해 일반인은 물론 수많은 청소년에게 과학의 꿈을 길러준 역사적 장소다. 엄밀하게 따지면, 국립과학관의 역사는 1927년 일제 강점기 남산 인근 조선총독부 구청사에 과학전시관을 만든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전쟁으로 남산 전시관 건물이 완전 소실되면서 1962년 지금의 창경궁 옆 건물로 이전했다. 1990년 국립중앙과학관이 대전에 세워지고 2008년 국립과천과학관이 개관하면서 서울과학관은 청소년을 위해 특화된 전시공간으로 운영돼 왔다.
지난 80여 년간 서울과학관이 옮겨 다닌 남산과 창경궁 인근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중심 지역이자 명당자리다. 우리 꿈나무들이 미래를 설계하는 과학관은 아무 곳에나 세워지는 시설이 아닌 것이다. 과학관 부지는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축복받은 땅이다.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대도시에 변변한 과학관 하나 없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특히 하계동 2만5839㎡ 부지에 새로 짓는 서울과학관은 전시장은 물론 산림생태 체험장, 숲속 산책로, 야외 캠프장이 함께 조성된다. 불암산 주변 자연환경과 어우러진 인간 중심의 과학공원으로 재탄생한다.
이런 역사적 사실과 이전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과학관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이 과연 몇이나 될까? 주민의 집단적 의사결정이 반드시 옳은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일어나는 집단적 의사 결정의 오류를 설명하는 대표적 이론이 `애빌린 패러독스(Abilene Paradox)`다. `동의되지 않은 합의의 모순`으로 정의되는 애빌린 패러독스는 구성원이 실제로는 원하지 않지만 겉으로 동의한 듯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자면, 3차 술자리와 같은 경우다. 늦은 밤까지 회식이 이어지면서 흥에 취한 누군가 별 생각 없이 “3차 가자!”고 외친다. 이 때 꼭 가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사람 대부분은 어쩌다 보니 3차까지 끌려간다. 다음날 아침 쓰린 속을 쓰다듬으며 “도대체 누가 3차 가자고 했지?”라며 서로를 추궁하지만, 정작 3차까지 가고 싶었던 사람은 없다. 누군가 무심코 내뱉은 말에 다른 사람이 별 생각 없이 맞장구를 쳤고 나머지 사람은 모두가 동의하는 줄 알고 내키지 않았는데도 그냥 따라 갔다는 얘기다. 이상한 일이지만 의외로 현실에서 이런 사례는 자주 발생한다.
애빌린 패러독스를 방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앞으로 일어날 상황에 대한 `진실`을 확인하는 작업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솔직히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청소년들이 미래 과학의 꿈을 키우는 소중한 공간` `주변 자연과 어우러진 친환경 과학 공원`. 이것이 서울과학관 이전과 미래 존재 가치의 진실이라면, 나는 과학관 이전을 결사적으로 찬성한다.
주상돈 경제정책부 부국장 sd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