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80>

한국정보통신대학교(2)

1989년 9월. 맹위를 떨치던 폭염이 다소 숨을 죽였다. 해가 떨어지면 간혹 서늘한 바람도 불었다.

체신부는 피서철이 끝나자 내연(內燃)하던 정보통신대학(가칭) 설립에 시동을 걸었다.

이현덕의 정보통신부<80>

체신부는 외국 전기통신 교육현황을 파악한 후 내부 논의를 거쳐 단과대학이나 대학원 설립 추진 계획안을 마련했다. 이 계획이 한국정보통신대학교(ICU) 모태다. 정보통신대학 설립은 이미 국회에서 조영장 의원(13·14대 국회의원, 국무총리 비서실장 역임, 현 밀레니엄 인천회장)이 체신부 장관을 상대로 여러 번 필요성을 주장했던 사안이다. 1964년 체신고등학교가 문을 닫자 체신부는 정보통신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1979년 전자통신전문대학 설립을 추진했으나 무산됐다.

이런 상황에서 조영장 민자당 의원의 대학 설립 재촉은 체신부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격이었다. 미국과 일본 등은 정보통신 분야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대학교와 특수대학, 특수대학원을 비롯해 단기교육과정을 다양한 형태로 운영하고 있었다. 반면에 한국은 대학 내 전자공학과 일부 교과목에 정보통신이 포함돼 있는 것이 전부였다.

체신부는 세계 제1의 첨단과학기술대학을 육성한다는 목표 아래 4년제 단과대학 및 대학원을 설립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대학 설립에 따른 자금은 정보통신진흥재단(가칭)을 설립해 조달하기로 했다.

이 계획안을 총괄했던 박성득 당시 체신부 통신정책국장(정통부 차관 역임, 현 한국해킹보안협회장)의 회고.

“그 당시 조영장 의원은 고등학교도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그러나 현실적으로 체신부가 고교와 대학을 설립하는 것은 불가능해 정보통신대학만 설립키로 했습니다. 하지만 대학 설립이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교육부와 다른 대학들의 반대가 대단했습니다.”

정보통신 대학 설립과 운영 주체는 정보통신진흥재단(가칭)이 맡기로 했다. 이를 위해 먼저 재단을 설립하고 이어 대학 설립을 추진키로 했다. 정보통신대학은 1993년 3월 개교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대학은 지역균형발전계획에 연계해 `대덕연구단지`나 `광주 테크노폴리스` 등지에 세우기로 했다. 대학교수와 교육용 기자재는 학사일정에 맞춰 단계적으로 확보키로 했다.

정보통신대학에는 사회과학 분야에 과학경영학과와 정보경제학과, 정보정책학과 3개 학과를, 그리고 자연과학 분야에 전기통신학과, 전자학과, 전산학과, 전자재료학과 4개과 모두 7개 학과를 두기로 했다.

학생 정원은 학과당 60명씩 모두 420명으로 결정했다. 교수 정원은 170명, 교직원은 100명으로 정했다. 대학부지는 3만3000㎡(10만평) 내외로 하고 건물은 본관과 공학관, 학생회관, 도서관, 체육관, 교수회관, 연구소, 기숙사 등을 짓기로 했다.

소요예산은 부지 구입비 150억원, 건축비 400억원, 경상운영비 450억원 등 초기 5년간 1000억원이 필요하다고 추정했다.

이 같은 설립 추진안은 천조운 통신기획과장(작고)이 실무역할을 했다. 천조운 과장의 전임자인 서영길 당시 청와대 행정관(현 IGM세계경영연구원장)의 말.

“제가 통신기획과장으로 일할 때 국회에서 조영장 의원이 앞장서서 정보통신대학을 설립해야 한다고 계속 주장했습니다. 이후 저는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으로 파견을 나갔습니다. 후임인 천조운 과장이 실무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체신부는 정보통신대학 운영 주체인 정보통신진흥재단 설립을 위한 재단법을 그해 10월 제정키로 했다. 체신부는 재단은 법인으로 하며 정보통신인력 양성 촉진과 정보통신 관련 연구기관 단체 육성 지원 등에 목적을 두기로 했다. 구체적인 사업은 정보통신 인력양성 및 지원과 연구활동 지원, 정보통신 관련 국내외 학회 학술활동 지원, 정보문화 확산 사업 지원 등이었다.

재단은 이사장 1명 등 11명으로 이사진을 구성하기로 했다. 재단 기금은 정부출연금과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의 주식매각 대금, 통신공사에 대한 정부 출자수익금, 공중 통신사업자 출연금, 제조업체 출연금 등으로 조성하기로 했다. 당시 정부 출연금 교부 규정은 재단 설립이나 시설 운영 및 사업에 필요 경비와 기금에 출연금을 교부할 수 있었다.

체신부는 1991년 1월까지 재단을 설립하고 그해 6월 학교법인 설립 인가 및 학교 설립 계획승인을 교육부에 요청하기로 했다. 1992년 3월까지 대학 설립 인가 요건에 필요한 부지와 시설을 확보해 대학 설립 인가를 받아 1993년 3월 정보통신대학을 개교한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체신부는 정보통신진흥재단을 설립하면 그 안에 `정보통신대학 설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대학 설립 업무를 총괄키로 했다. 추진위원회는 △대학건립 기본계획 수립 △토지 매입과 소요재원 산출 및 조달계획 수립 △학사운영 계획과 교수진 확보 계획 △최신 정보기술 정보 및 산학협동계획 수립 △대학건립 기본계획 수립 등 업무를 담당키로 했다.

해가 바뀐 1990년 2월 13일.

이우재 체신부 장관(현 KT동우회 고문)은 청와대에서 노태우 대통령에게 새해 업무보고를 하면서 “통신사업자 출자와 정부의 분배당금 등으로 정보통신진흥자금(1000억원)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정보통신진흥재단 설립을 위한 준비였다.

그해 5월, 체신부는 3장 28조 부칙으로 된 정보통신진흥법안을 입법예고했다.

법안의 골자는 정보통신 진흥과 계획을 수립할 정보통신진흥재단 설립과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기금 조성과 운용관리 등이었다. 특히 정보통신분야 인력이 1992년이면 9500명, 2002년이면 2만1000여명 부족할 것으로 예상, 정보통신대학 등 전문인력 양성 기관을 설립하기로 했다.

노태우 정부 말기에는 제2 이동통신사업자 선정과 한미 통신회담 등 현안이 등장해 정보통신대학 설립은 우선순위에서 뒷전으로 밀렸다. 포기할 일은 아니었다. 체신부는 대학 설립을 계속 추진했다.

1992년 8월 28일. 최각규 부총리(강원도 지사 역임, 현 현진그룹 경영고문) 주재로 교육, 상공, 체신, 과기처 등 관계부처 장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어 정보산업육성계획안을 확정했다. 정부는 정보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전략 수립을 위해 정보산업실무기획단을 구성하고 단장에 강봉균 당시 경제기획원차관보(정통부 장관, 재경부 장관 역임, 현 민주당 국회의원)를 임명했다. 기획단은 정보통신 전문인력 앙성기관 설립과 소프트웨어산업 육성지원 방안, 정보산업 수요기반 확충 등 전략을 마련키로 했다.

체신부는 1994년 11월 10일 초고속정보통신기반구축 종합추진계획(안)에 정보통신대학원 설립안을 포함시켰다. 당시 체신부 초고속정보통신망구축기획단장은 박성득 체신부 정보통신정책실장이었다.

1994년 12월 24일 김영삼 정부가 체신부를 정보통신부로 확대 개편하면서 정보통신대학 설립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경상현 정통부 장관(현 KAIST 겸직교수)은 1995년 1월 11일 언론 인터뷰에서 “재임 중 초고속정보통신 기반 구축, 한국통신 주력사업자 육성, 인재 양성 등에 중점을 둘 것”이라면서 “그 일환으로 정보통신대학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보통신부는 그해 3월 14일 확정한 `초고속정보통신기반구축 종합추진계획`에서 정보통신전문인력 양성 및 확충을 위해 정보통신대학원 등 전문 고급인력 양성기관을 신설하고 교육대·사범대 등 교과과정에 정보통신 과정을 추가하고 정보통신교육전문학과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정통부 정보통신정책실장으로 ICU 설립 추진을 총괄했던 정홍식 실장(정통부 차관 역임, 현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이사장)의 회고.

“정통부의 ICU 설립에 기존 대학의 반대가 무척 심했어요. 그들은 ICU를 설립할 예산이 있으면 차라리 기존 대학 IT 관련학과 지원을 강화하라고 요구해 왔습니다. 하지만 기존 대학들은 IT 관련학과를 최우선순위로 하기는 어려웠고 또 IT 관련학과는 수많은 학과 가운데 하나일 뿐이어서 말 그대로 IT만을 고민하고 집중 육성하는 교육기관이 필요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ICU는 반드시 필요한 대학이었습니다. 교육부와 갈등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경상현 초대 정통부 장관에 이어 이석채 장관(현 KT 회장)은 교육부와 접촉 및 설득, 협상에서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셨습니다. 그리고 ICU 설립은 강봉균 장관이 마무리하셨습니다.”

이석채 정통부 장관은 1996년 1월 20일 발표한 새해 주요 업무계획에서 정보통신전문대학원 설립을 추진해 1998년 3월에 개교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계획은 그해 9월 3일 오전에 열린 제2차 정보화추진위원회(위원장 이수성 국무총리)에서 정보통신산업 전문인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정보통신전문대학원 설립을 추진하기로 확정했다. 대학원을 설립한다는 방침이 정부안으로 확정된 것이다. 이날 회의에서 정부는 정보통신산업 기반 조성을 위해 2000년까지 1조9800억원을 투입해 정보통신기술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정보통신전문대학원을 설립하고 매년 전문대학과 실업고교에서 각각 5개교를 지정, 지원키로 했다. 정부는 또 2000년까지 1만여개 초중고교 82% 수준까지 1교실 2컴퓨터를 마련하고 전국 6400개 학교에 근거리통신망(LAN)을 구축하기로 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그해 10월 1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1차 정보화추진확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정보통신산업을 21세기 주도산업으로 육성하겠다”면서 “세계수준의 기술을 확보하도록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통령은 “정보화는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한 가장 중요하고도 강력한 수단이며 정보화를 효과적으로 촉진하려면 무엇보다도 이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비전, 그리고 체계적이고 입체적인 전략이 있어야 한다”면서 “정보화는 이제 우리 모두의 과제이자 기회”라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의 이런 말은 정통부에 복음(福音)이었다. ICU 설립에 서광(瑞光)이 비치고 힘이 실렸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