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서 국가 경쟁력은 과학기술력에 좌우된다. 연구개발도 사람이 한다. 과학기술력은 결국 얼마나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느냐에 달렸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과학인재 확보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첫째로는 우수한 학생들이 이공계 대학 진학을 꺼린다는 점이다. 한 예로 올해 서울대 이공계 학과 수시모집에 최연소로 합격한 과학영재가 결국 서울대를 포기하고 연세대 치과대학에 진학했다는 사실이 이러한 경향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몇 년 전에는 포스텍 수석 졸업자가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진학하여 파문을 일으켰고, 대학에서 이공계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의학전문대학원으로 다시 진학한다 해서 국회에서 문제가 된 일도 있었다. 우수 인재들이 이공계 전공을 택하기보다 안정된 의사나 치과의사의 길을 선호하는 경향이 심하지만 그 해결책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유혹을 견뎌내고 이공계 대학 및 대학원으로 진학해 학업을 계속한 인재들에 대한 대책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정부의 연구개발 투자는 계속 늘고 있으나 이공계 석박사 학위자에 대한 정규직 일자리는 제자리 걸음이다. 많은 고급인력이 계약직으로 전전하며 정부출연연구소조차 사정은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장기 인력 수급 예측을 보면 앞으로 이공계 박사인력의 국내 공급능력은 수요에 비해 상당히 부족할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외국 박사 학위 취득자 중 귀국해서 활동할 계획을 가진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우리나라의 두뇌유출지수는 1995년에는 7.53으로 세계 4위 이었으나, 2009년에는 3.44로 전체 48위로 하락했다는 사실은 정도의 심각성을 한 눈에 보여준다.
우리 과학기술 발전에서 해외 과학기술자의 역할을 빼 놓을 수 없다. 국내 기술이라고는 전무하던 시절, 해외과학기술자들을 유치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설립해 국내 연구개발 발판을 마련했다. 그 후에도 반도체, 조선, 석유화학 등 우리나라의 근간이 되는 산업분야에서 예외 없이 해외 유학파를 영입해 기술을 습득했다. 이 전략이 성공해 이제 많은 기업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했다. 이 때문에 고급 인재의 해외 유학을 `두뇌 유출`이라고 걱정하지 않고 `두뇌 저축`이라고 말한다.
몇 년 전 남아메리카의 어느 나라가 과학기술 전담부처를 만들 계획이라며 한국의 경험을 이야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나라 정부 관리들은 무엇보다 어떻게 유능한 과학기술 인력을 확보할 수 있는지를 궁금해 했다. 필자는 한국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초반에 선진국에서 공부한 한국인 과학기술자를 유치했으며, 어느 수준을 넘은 시기부터 국내 대학과 대학원의 연구능력을 키워 과학기술 인력을 훈련시켰다고 대답했다. 그 나라 관리들은 자기나라에 외국에 유학한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유치할 수 있는 과학기술자를 찾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 때 우리나라 사람들의 독특한 교육열 때문에 많은 인재들이 해외로 유학을 나갔다. 그것이 결국 우리나라 과학기술발전의 밑거름이 됐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해외 과학기술자의 영입에 대한 열기가 식은 듯해 우려된다. 물론 국내 과학기술인력 양성프로그램의 수준이 높아진 이유도 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분야에서 선진국 과학기술자를 영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수 해외 과학기술자를 유치하기 위한 체계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두뇌귀환(Brain Return-500) 프로그램을 만들어 상위 1%의 저명·신진 과학자 등 해외 인재 500명 유치를 추진할 계획이다. 연구단장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하고 개방형 인력체계, 차세대 연구리더 양성, 3년 단위 묶음예산 적용 등 여러 유인책을 마련 중이다. 선진형 연구제도와 최고급 과학인재의 영입은 IBS에서 세계적 기초과학 연구업적을 창출되는 토대가 될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국민들의 합리적이고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오세정 기초과학연구원장 sjoh@ibs.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