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준이 쓴 `근원수필`에서 게(蟹)는 `어리석으면서도 눈치 없고, 꼴에 서로 싸우기 잘하는 놈`으로 그려진다. 자신의 위치와 분수도 모르고 아무거나 먹겠다고 덤벼드는 미물(微物)로 묘사된다. 실제로 바닷가 개펄에 미끼를 던져 보면 게의 어리석음은 금방 드러난다. 게들은 처음엔 제법 영리한 듯 내다본 체도 않다가 콩알만 한 새끼 놈들이 먼저 덤비고, 그 곁두리를 보아 가면서 차츰차츰 큰 놈들이 한꺼번에 몰려든다. 이내 서로 미끼를 빼앗느라고 수십 마리가 한 덩어리가 되어 동족상쟁을 벌인다. 그 때를 놓치지 않고 미끼를 번쩍 들어 올리면 모조리 잡히고 만다. 결국 밥상 위 반찬 신세가 그놈들의 운명이다. 그래서 게는 창자와 배알도 없는 무장공자(無腸公子)로 단장의 비애도 모르는 녀석이다. 근원수필에서 나온 표현 그대로, 정말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놈이다. 거기에다 뻔뻔스럽고 염치까지 없다.
인간과 기업도 이런 게의 모습이나 운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처음엔 한둘씩 눈치를 보며 미끼 주위에 몰리다가 `무언가 된다` 싶으면 큰 놈 작은 놈 가릴 것 없이 한꺼번에 달려든다. 어느 순간에 미끼는 사라지고, 결국 집게발이 서로 얽혀 빠져 나갈래야 나갈 수도 없다. 대기업, 중소기업, 소상공인 가릴 것 없이 한 덩어리가 되어 말 그대로 `게떼처럼` 싸운다. 최근 빵집과 떡볶이 업종에 일부 대기업 재벌 2세, 3세들이 진입했다가 곤욕을 치르는 모습이 딱 그 짝이다. 시스템통합(SI)과 소프트웨어(SW) 시장을 둘러싼 그룹 계열사와 중소 전문업체 갈등도 같은 연장선이다.
우리니라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도 기업과 시장에 대한 이미지는 부정적이다. 서울시교육청 `경제와 사회` 인정도서에는 `대기업은 문어발식 경영으로 외형 성장에만 집착하고, 중소기업은 하루에도 수십 개씩 망한다`고 기술했다.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애플과 구글 횡포에 웬만한 기업은 내색도 못하고 `냉가슴`만 앓고 있다. 이들 공룡 기업에 찍히면 모바일 시장에서 아예 쫓겨나거나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런 암울한 시장 분위기는 자본주의 위기론으로 이어진다. 지난주 폐막한 다보스포럼은 `자본주의는 실패하고 있는가?`를 첫 토론 주제로 올렸다. 포럼에서 샤런 버로우 국제노총 사무총장은 “우리는 도덕적 나침반을 잃었다”고 단언했다.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칼라일 그룹 회장도 “만약 지금 당장 경제모델 개선작업을 해내지 못하면 우리는 게임에서 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리가 오랫동안 의존해 살아왔고, 최선의 형태라고 여겨왔던 자본주의가 무분별한 탐욕과 지도력 상실로 종말을 맞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자본주의 역사상 지금처럼 기업 역할이 강조되는 시기는 없었다.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기업과 창업자는 가장 영향력 있고 존경받는 대상으로 떠올랐다.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집단`으로 매도하던 과거 시절과는 비교가 안 된다. 그러나 자본주의 종말을 막으려면 기업 성공만으로는 부족하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를 지탱하고 기업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이윤추구`가 아니라 `윤리의식`이라고 강조했다. 인간의 무제한적인 욕심과 충동을 합리적으로 억제하고 조절하는 것이 자본주의 근간이라는 것이다. 가능한 많은 이윤을 추구하지만, 한편으로 절약하고 타인에게 베푸는 정직한 마음이 자본주의 출발이라는 논리다. 만약, 윤리적이지 않은데도 높은 성과를 올리는 글로벌 기업이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우량기업이 아니다. 탐욕에 사로잡혀 아무거나 먹겠다고 덤벼드는 `게만도 못한 기업`들로 득실거리는 시장에는 미래가 없다.
주상돈 경제정책부 부국장 sd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