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공공사업 전면 참여제한을 담은 SW산업진흥법 개정(안)의 활시위가 당겨졌다. `대기업 참여전면 제한` 화살이 활을 떠나면서 IT업계는 후속대책 마련에 바빠졌다. 정부는 `공생발전형 SW 생태계구축 전략`을 발표한 지 4개월만에 진흥법 개정(안)을 구체화해 통과시켰다.
개정(안)의 핵심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는 국내 IT대기업을 2013년 이후 공공정보화 시장에서 완전 배제하는 것이다. 즉, 공공기관의 수백억 규모 차세대시스템 구축 사업에서부터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의 정보화 사업까지 모든 공공기관 정보화 사업에 IT서비스 대기업은 참여할 수 없게 됐다.
◇중소SW 업계 환영 분위기=중소SW 기업은 이번 정부 결정을 반기는 분위기다. 대기업 참여 제한이 SW산업 발전을 가로 막았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겠지만 새로운 변혁을 일으킬 동기부여는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영상 SW전문기업협회 회장은 “사실상 국내 공공 정보화 시장에서 불공정 거래로 시장 파괴를 주도해 왔던 대기업에 규제를 강화한 것은 바람직한 조치라고 본다”면서 “추가 보완할 부분이 있다면 우선 시급한 불부터 끄고 나서 단계적으로 보완해 나가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미 여러 중소SW 기업이 대기업 수준의 프로젝트 관리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전문 인력 확충에 나섰고 공공기관은 자체적인 프로젝트관리조직(PMO) 운영을 모색하고 있다”며 “이는 SW생태계가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는 징후”라고 설명했다.
김학훈 날리지큐브 사장은 “IT서비스 대기업들이 서로 과당경쟁하면서 대형 프로젝트가 원가 이하에 낙찰되는 폐단이 있었다”며 “중견 IT서비스 업체나 중소SW 기업이 주도적으로 정부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이전에 비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대안책 찾는 공공기관=공공정보화 사업을 진행하는 당사자인 공공기관은 대기업 참여를 차단한 이번 개정(안) 통과로 인해 생길 전력누수 현상 방책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하지만 뚜렷한 대안을 찾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올해부터 2015년까지 2300억원을 투자해 차세대시스템을 구축하는 국세청은 올해 1단계 사업은 대기업 중심으로 시작할 수 있지만 이후 2단계와 3단계 사업은 개정(안)의 영향을 받게 됐다. 국세시스템은 특수성을 띠기 때문에 경험이 풍부한 대기업의 참여 없이는 완성도를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세시스템 구축은 대기업도 프로젝트 전체를 단독 수행하는 게 버거워 유사 프로젝트 수행경험을 갖춘 경쟁 대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할 수밖에 없는 분야다.
이런 특성 때문에 국세청이 이후 2, 3단계 사업을 시행하려면 각각의 사업으로 분리된 사업형태가 아닌 `계속사업` 형태로 유지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개정(안)에 딸린 예외규정은 올해부터 진행하는 계속사업에 대해선 내년 이후에도 대기업 참여를 허용한다.
관세청 역시 같은 고민에 빠져 있으며, 2000억원 규모의 차세대 프로젝트를 준비 중인 국책은행 기업은행이나 대형 IT사업을 앞둔 대법원, 보건복지부, 근로복지공단 등의 공공기관도 유사한 고민을 갖고 있다.
◇“대기업 규제가 해결책은 아니다”=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IT서비스 대기업과 학계는 이번 조치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 규제 정책 시행이 SW생태계를 바로 잡기보다 오히려 더 혼란을 가중시켜 공공정보화 퇴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SW산업을 IT서비스, 패키지SW, 임베디드SW 등으로 분류하면서도 IT서비스를 SW로 보지 않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는 설명이다.
오석균 현대정보기술 상무는 “이번 정책은 IT서비스 산업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온 결과”라며 “일반적으로 대국민 서비스를 위해 100여개에 달하는 솔루션을 동시에 적용하는데, 이것을 유기적으로 통합하려면 대기업이나 글로벌 기업의 기술력이 없어선 안된다”고 말했다.
SW산업을 시장 논리가 아닌 재벌개혁 논리로 해석하는 정부의 접근방식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높다.
김진형 KAIST 교수는 “SW산업에 대해 깊이 있게 분석하지 않은 상황에서 재벌개혁 논리에 휩싸여 정부가 시장 전체의 판도를 흔들만한 사안을 서둘러 결정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이런 상태라면 공공정보화 사업에 중소기업이 참여할 수 있다는 기대와는 달리 공공기관 발주 자체가 소극적으로 이뤄지는 역기능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전문가적인 식견 없이 SW산업진흥법 일부를 정치논리로 개정할 것이 아니라 충분한 시간을 두고 전면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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