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보통신대학교
어느 시대건 새 역사의 문을 활짝 여는 주역은 사람이다.
그래서 유사이래 인재양성은 국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였다.
1996년 11월 8일. 초겨울 바람에 노란 은행잎이 나뭇가지 끝에서 파르르 떨고 있었다.
정보통신부는 이날 범정부 차원 `정보통신 전문인력양성대책`을 발표했다.
대책의 줄기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정보통신 전문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모든 부처가 인력 양성에 나선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 일환으로 IT특성화 대학인 정보통신전문대학원을 설립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정통부가 기회 있을 때마다 밝힌 계획이었다.
대책을 발표하자 각 부처별 반응은 다양했다. 가장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 부처는 교육부(현 교육과학기술부)였다. 정부 부처 중 가장 보수적인 교육부는 자존심이 상했다.
“이젠, 정보통신부가 교육업무까지 관여하나”
당시 교육부 대학교육정책관실 K과장은 “결코 유쾌한 기억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정통부가 정보통신 전문인력 양성이라는 제한된 정책이긴 하지만 교육업무를 총괄하는 교육부입장에서는 마치 영역을 침범당한 느낌이 들어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는 “당시 지식정보화를 추진하는 정통부에 대한 인기가 높아 초임 사무관들이 선호하는 부처였다”면서 “김영삼 대통령까지 정보화에 각별한 관심을 표명해 교육부가 드러내 놓고 반발할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정통부가 발표한 `정보통신 전문인력양성대책`의 내용이 뭐길래 교육부 반응이 시큰둥했을까.
각 부처별 역할을 분담시켜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이의 시행 및 조정, 지원을 하는 총괄부처가 정통부였다. 반면 교육부는 학교교육만 담당키로 했다. 국가 교육정책을 총괄하는 교육부가 마치 정통부 통제를 받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당시 정통부 류필계 기술기획과장(정통부 정책홍보관리본부장 역임, 현 LG유플러스 부사장)의 증언.
“당시 국가정보화의 급진전과 신규 통신사업자 시장 진출 등으로 정보통신 전문인력 수요가 급증했습니다. 그러나 각 대학 정보통신 관련 학과는 소수여서 정보통신 분야 인력난이 심각했습니다. 특히 석사와 박사 인력이 모자라 인력양성이 시급했습니다. 그 무렵, 삼성과 현대, 대우, LG 등 업계 의견도 수렴했는데 한결같이 정부가 전문인력 양성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부가 파악한 정보통신 관련 학과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전국 11개 교육대학 중 컴퓨터심화과정을 개설해 운영 중인 대학은 2개교에 불과했다. 전국 42개 사범대학 중 14개교 만이 컴퓨터교육과를 운영 중이었다. 전국 초중고교 교사 중 컴퓨터 전문과정 교육을 이수한 교사는 7800여명으로 1개 학교당 평균 0.68명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그해 9월 3일 경제장관간담회에서 정보통신산업종합대책과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범정부 차원 지원체계를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한승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국무총리 역임, 현 김앤장 고문)은 이날 오후 2시 과천 재경원회의실에서 경제장관간담회를 열어 `최근 경제상황과 향후 정책방향`에 관해 논의한 후 경제운영방안을 확정했다. 정통부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미래 유망산업인 `정보통신산업의 발전을 위한 종합대책`을 11월 말까지 수립키로 했다. 정보통신 기반 구축을 위해 정보통신게임과 소프트웨어 산업을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정보통신 전문인력 양성 대책도 수립키로 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그해 10월 1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1차 정보화추진확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세계수준의 기술이 확보되도록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예나 지금이나 대통령의 말은 곧 통치행위다. 그런 통치행위를 정책으로 뒷받침하는 일은 해당부처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강봉균 장관(재경부 장관 역임, 현 민주당 국회의원)은 이런 대책 수립에 직접 관여해 내용을 꼼꼼하게 챙겼다. 강 장관은 자타가 인정하는 당대 최고의 기획통이었다. 그런 강 장관이 관계전문가 토론회를 두 번이나 주재해 대책을 수립했다. 그는 공직에 몸 담기 전 한때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적이 있었다. 그는 전문인력 양성에 관한 소신이 뚜렷했고 관심도 각별했다.
정통부는 기존 대책과는 달리 학교교육과 산업체 직업 교육훈련, 전문교육기관을 통한 재교육, 여성 전문인력 양성 계획 등 범국가적인 종합 인력양성 대책을 마련했다.
교육부는 각급 학교 교육과정에 정보화를 포함하고 대학의 정보통신 관련 학과 정원도 늘리기로 했다. 노동부와 통상산업부는 산업정보화와 연계해 산업체 정보화 인력을 양성하고 정보통신관련 국가기술자격제도를 개선키로 했다. 총무처는 행정 정보화와 연계해 공무원에 대한 전산교육 및 정보활용 교육을 실시하고 우수 전산인력을 확충키로 했다. 나머지 부처들도 해당 정보통신 관련 분야 인력 수요를 파악해 자체 교육이나 훈련계획을 세워 시행키로 했다.
정부는 이 같은 대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정보화추진위원회 산하에 정통부와 교육부, 통상산업부, 노둥부 등 관계부처 관계자들로 정보통신 전문인력 양성 분과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키로 했다. 분과위원회에서는 연도별 전문인력 양성 방안 협의 및 추진계획을 심의하고 추진실적에 대한 평가와 미비점에 대한 대책 등을 수립키로 했다.
인력양성 교육은 산업체 수요에 맞게 이론이 아닌 실기 위주로 변경하고 민간기업 사내 교육도 정부가 적극 지원키로 했다. 특히 여성인력의 정보통신 분야 교육도 강화하기로 했다.
류필계 과장의 계속된 말.
“제가 처음 과장으로 가보니 인력양성 예산이 60억원 정도 됐어요. 그래서 이 예산으로는 부족하다고 해 당시 이석채 장관(현 KT 회장)에게 증액을 건의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장관께서 `300억-400억원이면 되겠느냐`고 하시길래 거듭 건의해 1100억원 정도로 늘렸습니다. 그리고 기존 대학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각 대학에 연구비 등을 대폭 지원해 주었습니다.”
이 대책의 정통부 업무라인은 정홍식 정보통신정책실장(정통부 차관, 현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이사장)과 김창곤 기술심의관(정통부 차관 역임, 현 한국디지털케이블연구원장), 류필계 기술기획과장과 김인수 서기관(현 국가인권위 국장), 전성무 사무관(현 우정사업본부우편사업단 우편사업과장) 등이었다.
류 과장은 문서업무를 전 사무관에게 전담시켰다. 그러나 교육부 등 부처 간 협의사항도 많아 김 서기관이 이 업무를 지원해 주도록 역할을 분담시켰다.
실무자였던 전성무 사무관의 말.
“이 안을 마련하기 위해 통신개발연구원(현 KISDI)연구위원인 조신 박사(SK브로드밴드 사장 역임, 현 지경부 R&D전략기획단 정보통신분과 투자관리자)와 최선규 박사(현 명지대학교 디지털미디어학과 교수) 등과 작업을 했습니다. 미국과 독일을 비롯해 대만 싱가포르, 인도 등 정보통신 인력교육 실태도 파악했습니다. 이들의 도움을 받아 인력양성 대책을 수립했습니다.”
산업계가 요구하는 현장 감각과 문제 해결능력을 갖춘 전문기술 인력 양성을 위한 정보통신대학원대학교는 이렇게 틀을 갖춰갔다.
이 작업을 총괄했던 당시 정통부 정홍식 정보통신정책실장의 회고.
“대학원 설립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소IT기업에 우수한 인력을 제공한다는 의도였습니다. 이것이 대학 설립의 실제 추진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IT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대기업 중심 산업 저변이 보다 더 확대해야 했고 그를 위해서는 대기업에 편중된 우수인력이 중소기업으로 고르게 분산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따라 대학원 설립 기본 방향은 △정보통신 분야 교육방법과 내용을 차별화해 최고 수준의 대학원을 지향하고 △부설로 중소기업 연구센터를 설립해 중소기업과 연구개발을 공동수행하는 연구센터 기능수행 등에 두기로 했다. 대학원은 교육법상 대학원대학(단설대학원)으로 설립하고 전자통신연구원(현 ETRI) 부설로 하되 일정기간 후 독립법인으로 전환키로 했다. 또 ETRI와 통신개발연구소 등 기존 연구소 시설과 인력을 최대한 활용해 초기 비용을 최대한 줄이기로 했다.
류필계 과장의 기억.
“대학원은 다른 대학의 롤모델로 만들자는 계획이었습니다. 대학설립 기본계획은 이석채 장관이 확정했습니다. 그해 봄인데 금요일 오후에 갑자기 이 장관이 전화를 하셨어요. `청와대에 이 계획을 설명하고 확정시켜야겠다`면서 `월요일 아침까지 안을 만들라`는 지시였어요. 그래서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간 밤샘작업을 해 기본계획을 작성했습니다. 이 장관이 월요일 청와대 구본영 경제수석(과기처 장관 역임, 작고)와 만나 확정하셨어요.”
개교는 1998년 3월로 예정했으며 이를 위해 그해 12월 말까지 설립기본 계획을 수립해 관계부처와 협의를 하기로 했다.
정통부는 그해 12월 6일 발표한 정보통신산업발전 종합대책에서 정보통신전문대학원 설립을 구체화했다. 정통부는 대학원 설립에 소요되는 추정 예산 1010억원은 정부와 민간이 50%씩 공동 부담하며 정원은 정보통신공학 석·박사와 테크노 MBA과정 등 모두 600명 수준으로 결정했다.
정통부는 이와 별개로 기존 정보통신 전문대학원을 운영하는 대학 중에서 매년 4~5개 대학을 선정해 연구기자재 및 연구과제비로 2000년까지 300억원을 지원키로 했다.
정통부는 효율적인 업무진행을 위해 각 과별로 대학원 설립 추진 업무를 분담했다.
대학원 설립과 기존 대학 지원 업무, 기존 인력 재교육과 해외연수, 여성인력 양성 등은 정보통신정책실 기술기획과가 전담하고 정보화를 위한 전문 교육인력 양성은 정보화기획실 초고속망기획과가 담당하기로 했다,
기본계획 확정은 ICT강국으로 가는 주춧돌을 놓은 것 같았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