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최근 자국내 디스플레이 및 반도체 업체 구조조정을 지원한다는 명목하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키로 하면서 WTO 규정 위배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1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주도하는 산업혁신기구는 자국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을 되살리기 위해 분야별로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 지원은 WTO가 규정한 자유경쟁 원칙에 위배될 수 있어 국가 간 무역분쟁으로 번질 수 있다. 일본의 산업혁신기구는 산업재생법을 통해 2009년에는 엘피다에, 지난해에는 재팬디스플레이(도시바, 소니, 히타찌의 중소LCD 사업 연합)에 지원을 결정한 바 있다. 이어 최근 르네사스·파나소닉·후지쯔 3사가 추진중인 시스템반도체 사업 통합도 지원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과거 하이닉스 등의 사례를 비춰봤을 때 WTO 제소는 물론이고 상계관세 부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하지만, 직접적 피해를 입게 되는 경쟁 기업들의 반응에 따라 제소여부 가 갈릴 수 있어 향후 시장 변화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하이닉스 사례로 본 WTO 제소 가능성=2001년부터 미국 마이크론을 비롯한 해외 기업과 국가들은 우리나라 정부가 하이닉스와 삼성전자에 보조금을 줬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정부가 지분을 갖고 있는 산업은행이 하이닉스 회사채를 인수한 것이 보조금 지급에 해당하며, 삼성전자도 조세혜택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이 받아들여져 2003년 미국 상무부는 하이닉스에 44.29%의 상계관세를 부과했으며, 이후 일본과 EU도 상계관세를 부과했다. 오랜 분쟁의 결과 2008년(미국, EU)과 2009년(일본)에야 이르러 상계관세가 철폐됐다.
수백, 수천억엔에 달하는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산업혁신기구도 일본 정부가 출자한 기구여서 정부 지원으로 해석할 여지가 다분하다. 실제로 지난 2009년 미국 정부는 엘피다에 대한 일본정부 지원에 대해 WTO 제소 여부를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직접적 피해 여부가 관건=일본 산업혁신기구의 잇따른 기업 지원이 당장 국제적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자유경쟁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각 국가의 특정기업과 특정 산업이 피해를 입은 근거가 명확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이닉스 사례에서는 당시 D램 2위였던 마이크론이 자사의 피해를 주장했다. 하이닉스 성장이 곧 마이크론 시장점유율 하락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향후 시장 영향에 따라 분쟁 소지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시장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직접적으로 시장에서 부딪히는 기업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할 경우에만 분쟁이 성립할 수 있다”며 “엘피다는 경쟁기업이라고 하는 미국 마이크론, 대만 난야와 통합 움직임까지 있어 제소 가능성이 낮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시장에는 어떤 영향=엘피다는 정부 지원에도 불구하고 최근 막대한 적자로 다시 정부 도움을 받아야할 정도다. 재팬디스플레이는 아직 출범전이어서 파괴력을 가늠하기 쉽지 않다.
르네사스·파나소닉·후지쯔 3사 통합으로 탄생한 시스템반도체 기업은 자동차 분야에 강점을 가질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 사업과 부딪치는 측면이 있지만 모바일 분야에 강점을 갖고 있는 삼성전자와 직접적인 영향은 적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경쟁사에 대해 뭐라 언급하기는 힘들다”며 “시장 상황 변화에는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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