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정의 그린로드]전력계통, 심판을 선수로 뛰게 할 것인가

한동안 잠잠했던 전력산업 구조개편 이야기가 다시 수면으로 떠올랐다. 2010년 정부가 한국전력과 6개 발전자회사·전력거래소로 이뤄진 현 체제를 유지하겠다고 밝힌 지 1년 만이다.

이번엔 전력거래소 계통운영 업무를 한전에 합쳐야 한다는 게 쟁점이다. 9.15 순환정전이 단초를 제공했다. 9.15 순환정전이 일어나자 한전과 전력노조는 한전에 전력거래소 업무를 재통합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계통운영(전력거래소)과 송배전 업무(한전)가 분리돼 제대로 된 컨트롤타워 기능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정치권에서도 지난해 정태근 위원을 포함한 지식경제위원 25명이 전력거래소의 계통운영 기능을 한전으로 이관하는 내용을 담은 `한국전력공사법 일부개정법률안`과 `전기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18대 국회가 막바지에 들어서고 두 개정법률안은 자동폐기를 앞둔 시점에서 김영환 국회 지식경제위원장이 14일까지 관련 법률안 심사를 마쳐달라고 주문하면서 변수가 생겼다.

이 시점에서 생각해 볼 대목이 있다. 계통운영 업무만 한전에 통합하면 9.15 순환정전 사고 재발이 없을까 하는 점이다. 정전사고와 전력산업 구조개편 문제는 연관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정전사고 재발을 막는 완벽한 처방은 아니다.

조직 간 문제로 오인해서 미봉책(계통운영 업무 한전 재통합)으로 가져가면 전력산업은 꼬이고 진퇴양난 수렁에 빠져 풀기 어려워진다.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단시일에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쉬운 일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일단락지은 지 10년 가까이 지나서 재검토에 들어간 정부가 현 체제를 유지하기로 발표했겠는가.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용역까지 줘가면서 연구하고 각계 논의를 거쳤지만 딱 떨어지는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력산업 구조개편 논의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장기적인 플랜으로 접근해야 한다. 단순히 정전사태 재발을 위해 전력산업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것은 비약된 논리다.

또 하나 생각해 볼 것은 애초에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추진한 배경이다. 한전의 전력산업 독점구조에서 나오는 방만 경영 폐해와 과도한 시장지배력을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계통운영기능을 한전에 다시 이관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간단히 비유하면 축구 경기를 할 때 심판이 한쪽 팀 선수로 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심판이 선수로 뛴다면 그 경기 결과는 어떻겠는가. 승패는 심판하기에 따라 갈리는 경우가 많다. 전력산업에서 계통운영은 심판기능에 해당한다. 전력상황에 따라 내리는 급전지시를 제3자인 전력거래소가 아닌 발전사와 이해관계(지분 100% 소유)가 있는 한전에 맡기는 것은 항공사에 항공관제 업무까지 맡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결국 전기를 사는 사람이 골라서 사는 셈이다. 전력구매자가 전력판매자(발전사)에 직접 발전을 해라 마라 하는 것은 공정한 게임의 룰에 위배된다.

KDI가 2010년 내놓은 `전력산업구조 정책방향` 연구결과처럼 한전에서 전력 판매기능을 분리한다면 한전이 전력계통 업무를 해도 된다. 하지만 이런 논의가 없는 상황에서 업무 통합이 이뤄지면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려워진다.

한전이 계통운영을 하면 민간 발전이 설 자리도 없어진다. 한전이 자회사인 발전자회사 전기를 선별해서 구입하더라도 급전지시를 분석해 공정한 지시였는지 여부를 분석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전력계통 운영에 따른 급전지시는 특성상 송배전을 비롯해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상황 등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섞이기 때문에 공정성을 따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판매를 독점하고 있는 한전이 계통운영 기능을 갖게 되면 발전사의 가격까지 결정할 수 있게 된다. 결국 개정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는 것은 전력산업을 한전이 독점하던 과거로 돌아가게 만드는 셈이다.

주문정 그린데일리 부국장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