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반갑지만은 않은 고졸채용

“못해도 초대졸 이상은 뽑아야 하는데 고졸채용을 늘리라니 답답한 것이 사실입니다. 대졸자 정원(TO)도 몇 년째 제자리 입니다.”

고졸채용을 늘리라는 지시를 받은 한 정부 산하 공공기관 관계자는 난색을 표했다. 기관 업무 성격상 억지로 고졸자 자리를 만들기 힘들뿐더러 전체 TO도 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청년 실업을 해결하겠다며 `고졸채용 확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공공기관 신규 채용 16% 수준인 2350여명을 고졸자로 채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기업, 금융권도 화답하며 고졸 채용 바람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물론 고용할 때 학력차별은 없어져야 할 우리나라 고질병 중 하나다. 그러나 최근 화두가 된 청년 실업은 학력 차별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젊은이들이 가고 싶은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게 문제다.

공공기관 입장에서 TO가 부족하다 보니 비정규직으로 고졸자를 채용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고졸 출신을 2년짜리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던 관례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 정책이 대량의 비정규직 양산에 기여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신빙성 있게 들리는 이유다.

“산업과 IT가 융합해야 일자리가 많아집니다.”

지식경제부 고위관계자는 청년실업 해법으로 이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단순한 일자리가 아니라 청년들이 가고 싶은 양질의 일자리를 정부가 책임지고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용의 질적 수준과 일자리 시장 확대가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지식경제부는 올해 민간과 공공분야에서 청년 일자리 3만 명을 창출하겠다는 목표을 세웠다. 연구개발(R&D) 인건비 비중을 높이고 중견기업을 육성하는 월드클래스 300 사업에 투자를 늘려 고용을 촉진하겠다는 의지다.

정부 고용정책이 현실성을 반영하지 못하면 문제가 풀릴 턱이 없다. 고용 창출 없는 고졸채용 확대는 고졸자와 대졸자 간의 자리 뺏기 싸움이 될 뿐이다. 당면한 청년 실업을 일시적으로 해결하는 게 아니라 전체 고용시장을 활성화할 정책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정부는 고민해야 할 때다.

정미나기자 min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