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무진한 아날로그반도체 시장
시장조사기관 IHS아이서플라이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아날로그 반도체 시장 규모는 476억달러로 전체 반도체 시장의 18.6%에 육박한다. D램·낸드 등을 포함한 메모리 반도체에 비해 100억달러가량 적지만 성장성에서는 앞지르고 있다. 지난해 메모리 반도체가 극심한 불황으로 전체 규모가 축소된 반면에 아날로그 반도체는 소폭 성장했다. 아날로그 반도체 시장의 강점은 여기에 있다. 시장 경기에 큰 영향 없이 꾸준한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년에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 규모에 버금가는 수준인 539억달러로 확대될 전망이다.
특히, 수요가 무궁무진해 `마르지 않는 샘`에 비유된다. 아날로그반도체는 자연계 아날로그 신호를 증폭하고 디지털 신호로 전환하거나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전력관리에서부터 제어 반도체, 조명 구동용 반도체, 신재생 에너지 전력변환 반도체 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다.
모바일 제품 등 각종 전자기기에 여러 기능이 복합된 제품이 사용되면서 중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애플 아이폰4에 들어가는 메인칩 24개 중 절반이 넘는 15개가 아날로그 반도체다. 통신 산업이 발전할수록 아날로그 반도체의 쓰임새는 더욱 넓어진다. 또, 터치와 음성, 모션인식 등 인간의 오감을 사용하는 기능이 늘어날수록 아날로그 반도체 수요는 계속 늘어나게 된다. 친환경, 고효율도 아날로그 반도체의 장점이다. 전력관리칩을 사용한 디지털 TV는 소비전력을 30% 이상 줄일 수 있다. 조명용 안정기를 아날로그칩으로 교체하면 소비전력이 25% 이상 절감된다. 전기자동차, 지능형 자동차의 확대는 아날로그 반도체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아날로그 반도체 시장은 미국과 유럽, 일본 기업들의 안마당이다. 시장성을 일찌감치 내다본 해외 선진 기업들이 높은 수익을 거둬들이며 장기간 자기들만의 리그를 형성해왔다. 아날로그 반도체 매출 10위 기업은 모두 이들 국가 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선두인 텍사스인스트루먼츠를 위시해 ST마이크로, 인피니언 등은 이 분야에서 40~60%의 높은 이익률을 거두고 있다.
2010년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은 각각 55%, 21%, 20%씩 시장을 점유하며 세계 시장을 사실상 장악했다. 미국과 EU는 자동차·모바일 반도체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고 일본은 소비자 전용 반도체 시장에서 앞서있다.
반면에 우리 성적표는 초라하다. 국내 수요의 97%인 약 4조원 규모를 수입에 의존하는 대표적인 무역 적자 분야다.
반도체 시장 분야별 규모 (단위:억달러)
(자료 : 아이서플라이)
아날로그반도체 업체 매출 순위 (단위 : 백만달러)
(자료 : 데이터빈스)
서동규기자 dkseo@etnews.com
스마트시대를 주도하는 아날로그반도체
박용인 동부하이텍 사장 ypark@dongbu.com
1950년대 단순한 소자와 부품을 집적화하며 탄생한 반도체(IC)는 인류를 산업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변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 기간 동안 반도체는 `사람 흉내 내기`를 하면서 발전해 왔다.
전자계산기 수준의 초기 반도체는 사람의 두뇌의 역할을 하는 연산장치(CPU)와 기억을 저장하는 메모리, 입출력인 키보드와 간단한 LED 정도였으나, 점차 보고 듣고 말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오디오·비디오·디스플레이 구동장치(드라이버) 형태로 발전했다. 또 심장처럼 전자기기에 전력을 배분하고 공급하는 전력반도체로, 인간의 섬세한 감각 역할을 하는 각종 센서 등으로 더욱 세분화되고 전문화됐다.
그 중 CPU와 메모리로 대표되는 디지털과 로직반도체는 얼마나 많은 정보를 빠르게 연산하고 저장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었으며, 이는 집적도를 높이는 미세화공정과 대량생산 방식으로 진화해왔다. 현재 20나노공정까지 진행되며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구동장치〃전력〃센서 등 다양한 아날로그반도체는 어떻게 섬세한 아날로그 신호를 표현해 인간과 전자제품을 연결해주는지가 핵심이다. 트랜지스터, 저항, 커패시터(Capacitor), 인덕터( Inductor) 등 소자의 성능과 모델링의 정합성이 제품의 경쟁력을 좌우한다.
100개가 넘는 소자가 반도체 설계에 활용됐으며 얼마나 많은 고성능 소자를 갖추었는지가 사업의 성패를 결정한다. 현재는 350나노가 기술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동안 선진국의 반도체회사들이 이 분야를 독점했던 이유였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반도체 분야는 각각 독특한 사업영역을 구축하면서, 서로 보완하고 경쟁하며 전자산업의 발전을 이끌어왔다.
최근 IT 시장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융·복합 바람이다. 2010년대는 가전, 컴퓨터, 인터넷, 의료, 자동차와 산업용 제품이 융·복합하는 스마트 시대다.
스마트 시대를 이끌 반도체 기술분야는 크게 디지털 컴퓨팅·그린반도체 테크놀로지·스마트인터페이스 세 분야 정도가 예상된다. 대용량 정보를 신속하게 처리하고, 적은 전력으로 오랫동안 사용하고, 인간과 기기를 원활하게 소통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메모리로 대표되는 디지털컴퓨팅 분야에서 그동안 기업과 정부의 부단한 노력으로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섰다.
하지만 전력 소모를 최소화하는 그린반도체 테크놀로지 분야와 음성인식, 영상인식, 터치 센서를 비롯해 스마트기기의 입출력을 담당하는 스마트인터페이스 분야에서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이 분야의 반도체들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밑바탕이 되는 아날로그반도체 산업의 기반이 아직은 탄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래는 밝다. 지식경제부와 반도체산업협회가 `으라차차 반도체`를 모토로 하며, 메모리 신화의 뒤를 이을 신성장동력으로 아날로그반도체를 비롯한 시스템 반도체를 집중 육성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메모리와 시스템반도체를 동시에 견인해 균형감 있게 세계 반도체 시장을 제패하자는 것이다.
또 아날로그반도체 사업에 도전하는 팹리스들이 성과를 거두면서,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한 팹리스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동부하이텍과 같은 파운드리 기업이 그동안 선진 반도체기업들이 독점하고 있던 아날로그 소자와 공정기술을 확보하고, 팹리스들이 활용할 수 있는 수준 높은 PDK와 IP들을 제공하며 서로 협력했기 때문이다.
아날로그반도체는 스마트시대를 주도하기 위해 힘을 모아 반드시 세계 수준으로 도약해야 할 분야이다. 그만큼 융·복합제품의 핵심기술이며, 부가가치가 높고, 일자리 창출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정부·학교·기업이 협력하여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이 산업을 육성한다면 한국반도체산업이 메모리에 이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