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 이슈]매시 업(mash-up)

구글이 12일(현지시각) 발표한 구글TV용 유튜브 애플리케이션(앱)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콘텐츠를 종류별로 모아놓은 카테고리에 붙은 검색 기능 `디스커버`다. 코미디·요리·드라마·음악 등 시청자가 원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한곳에 모아서 좀 더 빠르게 검색할 수 있도록 했다. 다른 기능은 즐겨 보는 채널을 별도 앱으로 만들어 클릭 한번에 바로 열어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CJ헬로비전의 `티빙에어` 소개 화면.
CJ헬로비전의 `티빙에어` 소개 화면.

방송 콘텐츠는 방송사가 편성 시간을 결정하고 한방향으로 보여주던 시대에서 시청자가 보고 싶은 시간에 볼 수 있는 시대로 진화했다. 이제 방송 플랫폼은 보고 싶은 콘텐츠를 최대한 쉽고 빠르게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CJ헬로비전이 지난달 31일 공개한 `티빙에어`는 앱 개발자가 CJ헬로비전 N스크린 서비스 `티빙` 콘텐츠를 활용한 별도 앱을 만들어서 배포할 수 있도록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를 개방했다. 패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패션 채널만 모아서 자신이 쓰던 블로그와 바로 연동할 수 있게 됐다.

신병휘 CJ헬로비전 상무는 “개발자가 콘텐츠를 활용해서 새로운 앱을 만들어내는 것을 `매시 업(mash-up)`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매시 업`이란=일반적으로는 API를 개방하는 것을 일컫는다. 이 말은 원래 서로 다른 곡을 조합해서 새로운 곡을 만들어낸다는 뜻의 음악 용어로 쓰였다.

2000년대 이후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융합(convergence)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웹서비스 업체들이 제공하는 콘텐츠와 서비스를 혼합해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을 통칭하는 단어가 됐다. 다양한 참여자가 웹상에서 콘텐츠를 완성하는 `웹 2.0` 범주에 포함됐다.

이처럼 IT에서 매시 업이 쓰인 건 오래됐지만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수많은 데이터를 추리고 분리하는 `빅 데이터` 관리에 관심이 커지면서 매시 업은 더욱 활용도가 커졌기 때문이다.

◇매시 업으로 무한 확장하는 스마트 세계=디지털 세상에서 매시 업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면서 독자 콘텐츠를 개방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사례도 늘고 있다. 구글과 CJ헬로비전 사례가 대표적이다. CJ헬로비전은 앱 개발자들에게 콘텐츠를 개방해서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위한 사용자인터페이스(UI)·경험(UX) 개발 비용을 대폭 줄였다. 국내 포털 서비스 네이버·다음도 API를 공개해 콘텐츠를 이용한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한다.

하드웨어(HW) 회사도 매시 업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퀄컴은 증강현실 소프트웨어 개발도구(SDK)를 소프트웨어(SW) 개발자들에게 배포했다. 증강현실 게임, 지도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개발돼 퀄컴 칩세트 지원을 받는다. 반도체 설계(팹리스) 업체 위즈네트 칩은 해외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개발자 사이에서는 유명하다.

회사가 판매하는 제품은 네트워크 전송프로토콜(TCP/IP)을 칩으로 구현한 것이다. 위즈네트는 칩과 함께 개발 라이브러리를 공개한다. 다시 말해 이 칩에 다른 기능을 추가할 수 있도록 반도체 설계 일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칩은 `아두이노`라는 오픈 HW 플랫폼 커뮤니티에서 소개돼 전 세계에 알려졌다.

아두이노는 오픈소스 HW 커뮤니티로 MCU 개발자들이 모여드는 사이트다. 구글은 지난해 5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구글 I/O(Innovation in the Open) 2011`에서 아두이노 플랫폼을 사용해 주변기기를 만들 수 있도록 했다.

많은 안드로이드 액세서리 개발자들이 아두이노 홈페이지(www.arduino.cc)에 모여서 정보를 공유하고 매일매일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해 낸다. 아두이노 플랫폼을 사용해 새로운 칩을 만드는 프로젝트는 지난해 30만건을 넘어섰다. 매시 업 덕분에 콘텐츠나 칩 사용이 확산되면 이른바 콘텐츠나 SDK를 개방한 업체들이 생태계 맹주로 자리잡게 된다.

◇매시 업 원천 소스는 무한=삼성전자 스마트TV `헬로코치` 시리즈로 돌풍을 일으킨 핸드스튜디오는 `구텐베르크 프로젝트`를 활용한 교육용 앱 개발에 나섰다. 구텐베르크 프로젝트는 1971년 미국인 마이클 하트가 가상 도서관 사업을 하면서 시작됐다. 최근에는 저작권이 만료됐거나 저작권자가 동의한 책 3만6000권이 보관돼 있다. 전자책(e북)이 등장하면서 새롭게 주목받았다.

하지만 안준희 핸드스튜디오 사장은 이를 단순히 전자책에서 보는 콘텐츠가 아닌 무한한 매시 업 원천 소스로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는 “앞으로 이곳 자료를 이용한 교육용 앱을 만들어서 무료로 배포할 예정”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무료 콘텐츠를 이용했으니 배포도 공짜로 하겠다는 것이지만 회사 이름을 알리고 잠재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

◇`빅 데이터`에 없어서는 안 될 매시 업=영단어 `mash up`은 `으깨다`는 뜻이다.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서 으깨면 완전히 새로운 음식이 만들어지는 것에서 `매시 업`이라는 조어도 나왔다. 기존 재료의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도 새것을 만든다는 속성 때문에 많은 회사들이 콘텐츠나 기업 영향력을 확산시키는 데 활용해왔다.

최근에는 매시 업이 단지 한데 모아쓴다는 개념 보다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 중 쓸만한 데이터만 수집해 분류하는 데 쓰이는 추세다.

예를 들어 네이버나 다음에서 `AP`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반도체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무선통신장비 액세스포인트(AP), 통신사 `AP뉴스` 등 다양한 검색 목록이 뜬다. 만약 검색하는 사람이 평소에 반도체에 관심이 많다면 반도체에 특화된 검색 기능을 갖춘 매시 업 앱을 이용하면 원하는 것을 더욱 빨리 찾을 수 있다. N스크린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수많은 채널과 주문형비디오(VoD) 중 패션에 관한 것만 보고 싶다면 매시 업으로 만들어진 패션채널 앱에 접속해서 보면 된다.

매시 업은 콘텐츠를 확장한다는 개념에서 데이터 홍수 속에서 필요한 콘텐츠만 간추려야 하는 빅 데이터 시대에 필수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