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보통신대학교
1996년 12월 21일 토요일.
정보통신부는 정보통신전문대학원 설립 추진기구를 구성했다. 그 무렵, 각 부처는 연말인데다 하루 전 20일 김영삼 대통령이 8개 부처 장관 및 처장에 대한 중폭 인사를 단행한 후여서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그러나 정통부 분위기는 활기가 넘쳤다. 오랜 숙원사업인 대학원 설립을 위한 추진기구를 구성했기 때문이다. 세상 일이란 작은 발걸음이 성공의 밑거름이 되는 법이다.
정통부가 구성한 대학원 설립추진기구는 정통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설립추진위원회와 설립자문위원회, 그리고 설립추진단 3개 조직이었다.
당시 설립추진위원장이었던 박성득 정통부 차관(현 한국해킹보안협회장)의 말.
“대학원 설립과 관련한 주요 사항을 결정하고 집행과정에서 타당성과 효율성 등을 심의하기 위한 집행기구를 구성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강봉균 장관(재경부 장관 역임, 현 민주당 국회의원)이 큰 역할을 하셨어요. 대학원 설립은 각 부처의 협조가 절대적입니다. 설립추진위원회는 그런 협조체계를 만들고 주요 집행사항을 심의하고 확정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선 그해 10월 27일 한국전자통신연구소(현 ETRI)는 대학원 설립을 위한 추진반을 구성했다.
이와 관련한 양승택 당시 소장(ICU 총장, 정통부 장관, 동명대 총장 역임, 현 인터넷스페이스타임컨소시엄 대표)의 회고.
“나는 당시 강봉균 장관에게 새로운 대학원 설립은 연구소가 맡아서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아마 시기는 10월 하순 무렵일 거에요. 즉시 연구소에 설립추진반을 구성했으니까요. 설립추진반장에 최영일 전 총무부장을 임명했고 반원은 김기복, 김태권, 송민철씨 등으로 구성했어요. 12월 첫 주에 설립 계획서를 완성했습니다. 총 1310억원을 투입해 연구소 부설 대학원으로 설립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 당시 대학원 설립계획서와 대학헌장까지 다 작성을 했습니다.”
이어지는 양승택 소장의 회고록 증언.
“이후 강봉균 장관이 회의석상에서 학교 설립은 연구소에만 맡길 수 없다면서 정통부가 직접 하겠다고 말했다. 연구소장도 정통부 월례회의에 나와서 업무보고를 하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하자고 했다. (회고록 끝없는 일신(日新)에서)”
정통부 정홍식 당시 정보통신정책실장(정통부 차관, 현 한국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이사장) 말.
“정통부 주관으로 산업계에 필요한 창의적 고급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대학원을 설립하기로 하고 설립추진위원회 예산과 행정절차 등 대학원 설립기본계획을 심의, 확정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정보통신전문대학원 설립추진기구가 발족하게 됐다.
실무를 담당한 정통부 류필계 당시 기술기획과장의 증언.
“설립추진위원회를 자문할 기구로 산·학·연 전문가 10명 이내로 설립추진자문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아울러 설립 작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유관 연구소와 기관 등 전문가들로 실무 설립추진단을 만들었습니다.”
설립추진위원회는 대학원 설립 기본계획을 심의하고 확정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위원은 예산 지원을 위한 관계부처 공무원과 관련기관 대표 등을 구성했다. 안병우 재경원 제1차관보(예산청장, 충주대 총장 역임), 장오현 교육부 고등교육실장(현 동국대 명예교수), 김정덕 과기부 연구개발조정실장(한국과학재단 이사장 역임), 정홍식 정통부 정보통신정책실장, 양승택 한국전자통신연소장, 이천표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현 서울대 명예교수, 산업은행 사외이사), 이계철 통신사업자연합회장(정통부 차관, 한국통신 사장 역임, 현 KT사우회장), 조백제 박사(한국통신 사장 역임, 현 서울디지털대학교총장), 정보통신대학원설립추진기업협의회 정창훈 내외반도체 사장 등이었다. 간사는 김창곤 정통부 기술심의관(정통부 차관 역임, 현 한국디지털케이블연구원장)이 맡았다.
대학원의 장·단기 발전계획과 교과과정, 그리고 학사운영 등 설립추진위원회에 대한 자문 역할을 할 설립추진자문위원회는 정보통신 대학교육 분야 전문가와 정보통신 산업 인력전문가 등으로 구성했다. 위원장은 조백제 전 한국통신 사장이 맡았다. 위원은 안병훈 KAIST테크노경영대학원장(현 교수)와 정기원 숭실대학교 정보과학대학원장(현 명예교수), 이기호 이화여대 공대학장(현 명예교수), 서울대 이병기 교수(현 서울대 교수,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박찬모 포항공대 교수(포스텍 총장, 대통령과기특보 역임, 현 평양과기대 명예총장), 정창훈 정보통신대학원설립추진 기업협의회장(내외반도체 사장), 김택호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장(현대정보기술 사장 역임, 현 프리씨이오 회장), 양승택 한국전자통신연구소장, 서정욱 한국이동통신 사장(과기부 장관, 초당대 총장, 전자무역추진위원장 역임, 현 명지대 석좌교수 역임) 등이었다.
자문위원장 선임과 관련한 양승택 당시 소장의 회고록 증언.
“조백제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사장이 회사를 그만두게 될 때 감사원 감사를 받았다. 조 사장이 그 결과에 불만을 품고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이석채 장관(현 KT 회장)이 소송을 취하하게 하기 위해서 대학원을 설립하는데 역할을 맡게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주위 사람들이 조백제 박사가 대학원장이 되면 정보통신 색채가 좀 퇴색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했다(조 박사는 회계학 박사다). 나는 학교 설립 경험도 있고 대학원장을 할 욕심도 없을 사람을 생각해 보았다. 그 때 최순달 박사(체신부 장관, 한국과학재단 이사장, 대덕대학장 역임)가 생각났다. 최순달 박사를 자문위원장으로 모시고 조백제 박사를 자문위원회에 모시면 무난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최 박사에게 부탁드려 수락을 받았다. 얼마 후 정통부에서 정보통신대학원 설립을 담당하던 류필계 기술기획과장이 대전으로 출장을 왔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대학원 설립자문위원회에 최순달 박사를 자문위원장을 모신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류 과장이 `어떻게 5공 잔재를 이 일에 개입시키느냐`고 했다. 나는 화가 나서 `최순달 박사가 5공 잔재면 류과장도 잔재가 아니냐`고 했다. 그랬더니 류과장이 `연구소는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정통부는 그렇게 할 수 없다`면서 돌아갔다. (회고록 끝없는 일신(日新)에서)”
조백제 당시 한국통신공사 사장 사퇴는 1995년 4월에 발생한 한국통신 노사분규가 발단이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국가 기간통신사업자인 한국통신 노사분규에 격노했고 그해 5월 29일 감사원은 한국통신에 대한 감사결과를 정통부에 통보했다. 감사원은 한국통신이 예산을 부당하게 전용하고 방만경영을 했다고 지적했다. 조 사장은 이에 강력 반발해 퇴임 후 감사원장을 상대로 명예훼손 혐의로 소송을 제기했다.
조 전 사장의 회고.
“감사원 발표는 사실과 달랐어요. 왜곡 발표였습니다. 방만 경영은 노조 전임자에게 임금을 준 것을 말하는데 저는 취임 후 전임자 수를 80명으로 대폭 줄였습니다. 당시 전임자에게 임금을 주지 않은 기업은 한 곳도 없었어요. 잘못한 점을 지적했다면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는 1년 6개월 후에 주위의 만류로 대승적 차원에서 소송을 취하했다. 하지만 퇴직금을 몽땅 변호사 비용으로 사용했다.
대학원 설립 계획의 수립과 집행을 담당할 설립추진단장은 정통부 신현욱 국장(부산체신청장, 한국전파진흥협회 부회장 역임)이 맡았다. 추진단 역할은 한시적이었다.
당시 추진단은 대학원 설립 시까지 업무를 수행하고 대학원이 설립되면 모든 업무를 대학원에 인계하고 해산키로 했다. 이에 따라 1997년 4월 정보통신대학원 총장으로 양승택 원장이 내정되면서 추진단장은 양 총장으로 교체됐다.
당시 설립추진단은 업무 성격에 따라 기획팀과 학사팀, 건축팀으로 구성했다. 추진단 인력은 모두 14명이었다. 인력은 한국전자통신연구소와 한국통신,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등에서 공학과 경제, 경영학, 건축, 설비, 행정 분야 전문가들을 파견 받았다.
기획팀은 업무총괄과 학교설립계획 승인 및 학칙 내규 등 법제 작업을 담당했다. 학사팀은 교과개발과 학제연구, 도서관, 연구장비, 연구시설, 부설 공동연구센터 관련 업무를 맡았다. 건축팀은 건축시설물, 조경, 시공, 발주 등 건축과 시설 관련 인허가 업무를 다뤘다.
정통부가 대학원 설립에 박차를 가하던 그해 연말 정통부 예산 편성과 관련해 있었던 일 하나.
당시 정통부 본부 공무원 급료는 통신사업특별회계에서 지급했다. 경제전문가인 강봉균 장관은 이를 납득할 수 없었다.
강봉균 장관의 회고.
“정통부 본부 공무원들은 정부 예산에서 급료를 받아야지 통신사업특별회계에서 받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정부 예산으로 급료를 받도록 조치했습니다.”
강 장관 지시에 따라 당시 이 업무를 담당했던 정통부 김재섭 기획예산담당관(서울체신청장 역임, 현 지경부 한국스마트그리드사업단장)의 말.
“강 장관의 지시로 재정경제원(현 기획재정부) 예산실과 협의해 정통부 본부 공무원 급료를 일반회계에서 지급받았습니다.”
이 일의 실무를 맡았던 최무열씨(현 우정사업본부 보험기획담당)의 증언.
“당시 예산계장이 정천희 사무관(현 우정사업본부 총무과장)과 이 작업을 해서 230억원을 받아 왔습니다. 그러다가 IMF사태가 발생하면서 다시 통신사업특별회계에서 급료를 주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해가 바뀐 1997년 1월 20일.
강봉균 정통부 장관은 이날 새해 주요 업무계획에서 정보통신전문대학원을 1998년 3월에 개교하겠다고 밝혔다. 정통부가 개교 시기를 못 박은 이상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었다. 오직 실행만 남아 있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