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무역협회는 지난 17일 긴급 회장단 회의를 열어 만장일치로 한덕수 전 주미대사를 차기회장으로 추대했다. 재외공관장 회의 참석차 서울 출장 중이던 한 전 대사가 이 대통령을 면담한 지 이틀 만에 대사 사퇴와 내부 추대가 이뤄진 초스피드 인선이었다.
일각에서는 무역협회장이 아무리 중요한 자리라 하더라도 현직 핵심 국가 대사를 재외공관장 회의 때 소집해 앉혀도 되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인물난과 정치 변수로 이명박 정부의 국정 풍향계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한미 FTA 발효, 민간 쪽 총대 메준 듯=한 전 대사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비준되면 내 역할은 끝난다”고 말해왔지만, 한미 FTA는 여전히 발효 대기 상태다. 4월 총선과 12월 대선 결과에 따라 즉시 폐기라는 운명을 맞을 수도 있다.
무역협회는 무역·수출 관련 최대 민간 조직이다. 전·현 정부 FTA 채널 최일선에서 뛰어온 한 전 대사를 무역협회장에 세워 정치권·국민 설득의 최선봉을 맡긴 셈이다. 지난주 현 정부 들어 처음으로 차관·청장까지 모두 불러들여 확대 국무회의를 열어 한미 FTA를 독려했지만, 공무원의 추진력에 여전히 믿음이 약한 것도 작용했다.
◇정권 말 인물난 현실화=집권 만 4년차에 이르면서 이 대통령 인력 풀은 사실상 바닥났다. 최근 이계철 방송통신위원장 후보 지명, 이달곤 정무수석 임명에 대한 야권 평가가 그렇듯 `새 얼굴`은 찾을 길 없다.
사공일 전 무역협회장 주미대사 내정설이 나오면서 청와대 관계자는 “그런 일까지 있겠는가”라고 되묻지만, 그런 얘기 자체가 통용되는 게 현실이다.
이미 공석인 콘텐츠진흥원장과 4~5월 임기가 끝나는 지식경제부 산하 통합기관장 인선까지 사람 찾기 난항은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한 대학 교수는 “행정부 수장은 물론이고 산하 기관장까지 인선이 가장 어려운 일이 됐다”며 “적재적소에 쓸 사람 풀 자체가 좁으니 가까운, 또는 겪어본 사람 중에서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22일 기자회견에 관심=이 대통령은 22일 집권 4년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해 국정 방향을 설명할 예정이다.
청와대측은 기자회견에서 정치권의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와 한미FTA를 비롯한 주요 국가정책에 대한 야권의 말 바꾸기에 정면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잇단 친인척·측근 비리 의혹은 진솔하게 해명하고 사과를 하되, 국가의 명운이 걸린 사안은 직접 설명하고 국민의 판단을 기다리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앞으로 국정 현안에도 적극 목소리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면돌파 승부로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 장악에 나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