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무슨 주의(主義)가 많다. 심리학에는 인간의 이해는 오로지 관찰할 수 있는 행동만을 문제 삼는 행동주의(行動主義)가 오랫동안 패러다임을 지배해왔다. 그러나 겉으로 관찰할 수는 없지만 사물을 인지하는 과정 변화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인지주의(認知主義)가 등장하면서 행동주의가 블랙박스로 취급했던 인지과정에 새로운 관심이 부각됐다. 행동주의와 인지주의는 마침내 구성주의(構成主義)로의 패러다임 변화를 보여주면서 인간 사고와 행동을 설명하는 다양한 접근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주의는 한동안 사람들의 사고과정을 지배하는 패러다임을 형성하다 다른 주의가 등장하면서 쇠퇴기를 맞기도 하고 잔영이 남아 꿈틀거리다 다시 일어서기도 한다. 미술의 인상주의와 낭만주의, 철학의 실증주의와 구조주의, 객관주의와 주관주의 등 학문 분야별 수많은 주의와 사조가 한 시대를 풍미하다 또 다른 주의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주의(主義)야말로 우리가 정말 주의(注意)해야 할 요주의(要注意) 대상이다. 어떤 하나의 주의만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의(主義)에 우리가 주의(注意)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하나의 주의를 지나치게 신봉하면 다른 주의를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이 닫히기 때문이다. `주의(主義)`가 붙어 있다는 것은 그것이 철저한 기성복이며, 위에서 아래로의 하향식 철학과 사고방식이라는 이야기다. 어떤 것이든 하나의 `주의(主義)`가 되면, 갑자기 독단적이며 엄격한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하고, `우리 편이 아니냐` 식의 극단적 편 가르기가 이뤄진다.
스웨덴의 세계적인 미래 학자이자 트렌드 컨설턴트가 쓴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은 틀렸다`에 나오는 말이다. 이처럼 세상의 많은 주의(主義)는 이전의 주의가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와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대안적인 주의를 양산해온 역사적 산물이다. 하나의 주의를 선호하되 동시에 다른 주의가 주목을 끄는 이유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주의(主義)에 주의(注意)하면서 또 다른 주의(主義)에 주목(注目)하는 안목(眼目)을 동시에 가질 필요가 있다.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