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이면 태양 폭발이 최고조에 이르러 지구가 멸망하게 된대요. 어떡하죠?”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떠도는 괴담 중 하나다. 괴담은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2013년은 태양표면 활동 극대기로 항공기 운항과 통신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는 발표 직후 근거 없이 확대 재생산된 것이다. 영화를 비롯한 각종 대중문화에서 자극적 코드로 즐겨 쓰는 `지구 멸망`과 걱정 섞인 NASA 예측이 결합됐다. 괴담은 근거 없다 치더라도 NASA 발표를 생각하면 꽤 우려할 만하다.
◇현대 인류는 `우주인`이다=지구 인류에 영향을 미치는 태양표면 활동은 태양 에너지가 좁은 영역에서 순간적으로 분출되면서 일어난다. `플레어`라고 불리는 이 태양 폭발은 흑점에서 비롯된다. 흑점에서 점점 에너지가 모여 강렬한 폭발을 일으키면서 플레어가 만들어진다. 우주과학자들은 이때 발생하는 에너지양이 핵폭탄 수백만개와 맞먹는 것으로 분석한다.
그렇다고 이 같은 폭발이 지구를 집어삼킬 정도는 아니다. 이재진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태양이 수소에너지를 모두 소모하고 헬륨에너지를 소모할 때가 되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적색 거성`이 되는데 이는 수십억년 뒤 얘기”라며 “지금의 플레어 현상은 태양과 지구 사이 거리 때문에 파괴적인 영향력을 미치진 못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NASA 발표처럼 분명히 지구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 삶의 영역이 이미 지구 밖으로 확장돼 있기 때문이다.
일단 통신이 두절될 수 있다. 플레어가 지구 전리층을 교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방사선 피폭이다. 플레어 폭발과 함께 태양 입자가 우주로 방출되는 데 여기엔 강력한 방사선이 포함돼 있다. 우주인은 물론이고 비행기를 타고 가다 피폭될 가능성이 있다.
인공위성 고장이나 대규모 정전도 발생할 수 있다. 특히 GPS를 이용하는 항공기나 선박에 심각한 위험성을 안겨 줄 수 있다. 모두 우리 생활에 중요한 것들이다.
◇`우주날씨예보` 등장=한국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항로가 중요한데다 IT강국 코리아 위상을 만든 것 중 하나가 통신망이다. 하지만 항공기 운항과 통신에 장애를 일으키는 태양 활동을 인간이 막을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미리 알고 준비하는 것이 최선이다.
`우주날씨예보`는 이처럼 고도의 기술 발달로 태양 활동에까지 영향을 받게 된 인류가 내놓은 고육지책이다. 기상청은 지난달 “4월부터 우주 날씨를 예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태풍경보` `한파주의보`처럼 태양 활동이 급격히 활성화될 때는 `우주폭풍 경보`가 내려지게 된다.
기상청 관계자는 “태양폭발에 따른 우주기상 경보 발령 종류는 일반에서 심각까지 다섯 등급 15개로 분류된다”고 설명했다.
앞서 천문연구원은 2009년 우리나라 상공을 측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공군에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우리나라 상공 전리층 변화를 1분 간격으로 관측, 분석한다.
미국에선 이미 해양대기청이 우주날씨예보를 내놓고 있다. 지난달 23일 전체 5단계 등급 중 두 번째 등급인 `관심(Moderate)`에 해당하는 플레어가 발생했다. 인공위성 통신과 GPS에 부분 장애가 발생하고 일부 항공기가 우회하는 불편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폭발할 때 북극을 지나다 겪을 수 있는 참사를 생각하면 우주날씨예보가 큰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
우주날씨 연구는 이처럼 일상생활에서 겪을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내다보는 데도 큰 도움을 준다. 이 연구원은 “역사적으로 소빙하기였던 시기에는 태양 흑점이 매우 적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런 사실이 우주날씨와 지구날씨 연관성을 설명해 준다”며 “우주날씨 연구가 지구 변화를 예측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어차피 피할 수는 없다=아무리 경보를 미리 내리고 축대를 튼튼히 쌓는 등 대비를 한다고 하지만 자연이 할퀴고 지나간 자리에는 큰 상처가 남는다. 우주날씨도 인간이 미리 알고 피할 수 있을지언정 피해를 겪지 않을 순 없다.
150여년 전인 1859년, 지구에서 맨눈으로도 볼 수 있었던 거대한 플레어가 발생했다. 당시에는 GPS를 이용해 성층권을 비행하는 비행기도 없었고 인공위성도 없었다. 고주파를 이용하는 휴대폰도 없었다. 그래서 이 `슈퍼플레어`가 별다른 피해를 미치진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 똑같은 규모의 플레어가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이 연구원은 “세계 주요 도시가 암흑으로 변하고 인공위성은 기능을 멈추며 GPS 신호를 이용하는 여러 국가 기관 전산망은 순식간에 엉망이 될 것”이라며 “그야말로 `우주재난`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날씨예보가 더욱 중요하다. 멀지 않은 미래에는 각 방송사 뉴스 방송이 끝날 즈음 나오는 일기 예보에서 기상캐스터가 지구지도 대신 우주지도를 크로마키에 띄우고 이렇게 말할 날이 올 것이다.
“다음 주 태양 활동은 안정적입니다. 비행기 여행하시는 분들, 방사선 걱정은 하실 필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GPS와 통신 시스템 운용도 문제가 없겠습니다. 다만 이달 말에 예정된 2급 수준 플레어에 대비해 각 항공사가 항로 수정에 들어갔으니 참고하셔야겠습니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