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보통신대학교
1996년 11월 29일 금요일 오후 2시. 국회 통신과학기술위원회 회의실.
강봉균 정보통신부 장관(재경부 장관 역임, 현 민주통합당 국회의원)과 박성득 기획관리실장(정통부 차관 역임, 현 한국해킹보안협회장), 정홍식 정보통신정책실장(정통부 차관, 현 한국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이사장), 안병엽 정보화기획실장(정통부 장관, 17대 국회의원 역임) 등 정통부 간부들이 회의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계철 차관(한국통신 사장 역임, 현 방송통신위원장 내정자)은 해외 출장이어서 불참했다. 당시 통신과학기술위원장은 강창희 의원(과기학기술부 장관, 자민련 사무총장, 원내총무, 한나라당 최고위원 역임)이었다.
이날 통신과학기술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어 정통부가 제출한 전기통신기본법 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일사부재의(一事不再議) 원칙에 배치되는 코미디 같은 해프닝이 벌어졌다.
정통부가 개정법률안을 제출하자 위원회는 법률안소위원회를 구성해 내용을 심의했다. 소위원장은 유용태 의원(노동부 장관 역임)이 맡았고 위원은 김충일, 박성범(KBS 앵커, 한나라당 서울시당위원장 역임), 이상희(과기처 장관, 국회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장 역임, 현 대한변리사회장), 김영환(과기처 장관 역임, 현 국회지식경제위원장), 정호선(현 세계학생UN본부장), 조영장(국무총리 비서실장 역임. 현 밀레니엄인천회장) 의원 등이었다.
오후 2시 39분.
예정시간을 넘겨 강창희 위원장이 개회를 선언했다.
“성원이 되었기에 회의를 개회합니다. 먼저 유용태 소위원장께서 법률안 심사결과를 보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용태 법률안소위원장이 법률안 심사결과를 보고했다.
“소위에서 심시한 결과를 보고 드리겠습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 대학원대학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한 규정 중 제15조 2항과 3항에 대해서는 소위원회에서 이견이 있었습니다. 연구원 소속으로 할 경우 유능한 정보통신 인력을 양성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연구진의 교수겸직 등으로 연구원 고유기능 수행에 지장을 줄 염려가 있으므로 이를 삭제하자는 의견과 원안대로 의결하되 이른 시일 안에 연구원에서 분리, 독립시키자는 조건을 붙이자는 의견, 중소기업 전문인력을 중점 육성시킨다는 취지를 법 조문에 반영하자는 의견 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의견을 정통부가 대학원대학 설립 추진계획에 충분히 반영해 우리 위원회에 보고하도록 촉구키로 하고 원안대로 인정했음을 보고 드립니다.”
△강창희 위원장=“원안대로 의결하고자 하는데 이의 없으십니까? (`이의 없습니다`라고 의원 중에서 말함) 그럼 전기통신기본법개정법률안은 가결됐음을 선포합니다.”
강 의원장은 의사봉을 “땅땅땅” 힘차게 두드렸다. 강봉균 장관을 비롯한 간부들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감돌았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터졌다. 위원장이 가결을 선포한 후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려 하자 남궁진(문화부 장관 역임), 조홍규(한국관광공사 사장, 성균관이사장 역임), 장영달(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역임) 의원 등이 의사진행발언을 얻어 중소기업 전문인력 양성과 대학원대학 설립 참여를 놓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들은 법률개정안을 재심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김형오 의원(국회의장 역임)이 정회를 요구했다. 다시 회의가 속개됐지만 이들은 개정법률안을 재심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강봉균 장관이 발언대에 나섰다.
“대학원대학 설립에 의원님들이 걱정하시는 내용을 다 반영해 정통부가 계획을 수립하겠습니다. 특히 중소기업이 설립추진위원회와 자문위원회, 학교운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장관이 책임을 지겠습니다. 개정법률안이 이번에 통과돼야 1998년 3월 대학원대학을 설립할 수 있습니다.”
의원들의 반대 발언이 이어졌다. 심지어 소위원으로 참여했던 모 의원조차 재심의 주장에 동조했다.
이를 지켜보던 강창희 위원장이 기가막히다는 표정으로 목청을 높였다.
“아니 조금전에 가결을 선포했는데 지금 무슨 말씀을 하는 겁니까. 만약 이견이 있다면 가결전에 발언을 해야지 가결해 놓고 다시 논의하자니 말이 됩니까. 일사부재의 원칙을 몰라서 하시는 말입니까.”
유용태 소위원장도 나서 “원안대로 가결해 놓고 무슨 소리냐”며 재심의 주장을 반박했다.
가결된 법률안을 재심의하자고 주장하는 코미디 같은 상황은 6시에 종료했다. 재심의를 주장한 의원들이 자신의 입장을 철회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개정법률안은 원안대로 상임위를 통과했다.
1996년을 하루 남긴 12월 30일 정부는 전기통신기본법 일부(법률제5219호)를 개정했다. 그 골자는 한국전자통신연구소 명칭을 한국전자통신연구원으로 변경하고, 연구원은 필요한 경우 교육법에 의한 대학원대학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대학원대학 설립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변경조문은 6개항이었다.
①전기통신 분야의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연구·개발하고 이를 보급하기 위하여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하 “연구원”이라 한다)을 설립한다.
②연구원은 법인으로 한다.
③연구원은 전기통신 분야의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교육법에 의하여 대학원대학을 설립할 수 있다.
④정부, 전기통신사업법 제2조 제1항 제1호의 규정에 의한 전기통신사업자 또는 연구원의 사업과 관련된 자는 연구원의 사업수행에 필요한 경비를 충당하게하기 위하여 연구원에 출연할 수 있다.
⑤연구원이 아닌 자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또는 이와 유사한 명칭을 사용하지 못한다.
⑥연구원에 관하여 이 법에 규정한 것을 제외하고는 민법 중 재단법인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
이날 정통부는 인사를 단행했다. 그동안 정보통신대학원대학 설립 업무를 담당하던 류필계 기술기획과장(현 LG유플러스 부사장)이 총괄과장으로 전보됐다. 후임 기술기획과장은 김인식 체신금융국 기획과장(한국정보인증 사장 역임)이 발령났다.
민족최대의 명절인 설을 사흘 앞둔 1997년 2월 5일.
서울에는 성긴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설을 앞두고 백화점과 재래시장 등은 설빔을 준비하느라 모처럼 인파가 몰려 활기가 넘쳤다.
정보통신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22층 회의실에서 제1차 정보통신대학원설립 추진위원회를 열었다.
위원장인 박성득 정통부 차관 주재로 열린 회의에는 추진위원 11명이 참석했다. 정홍식 정통부 통신정책실장과 김정덕 과기처 연구개발조정실장(한국과학재단 이사장 역임), 반장식 재경원 기술정보과장(기획예산처 차관 역임, 현 서강대기술경영전문대학원장), 곽창신 교육부 대학지원총괄과장(교원소청심사위원장 역임), 양승택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장(ICU 총장, 정통부 장관, 동명대 총장 역임, 현 인터넷스페이스타임컨소시엄 대표), 이천표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현 서울대 명예교수), 정창훈 정보통신대학원대학설립추진 기업협의회장, 김을재 정보통신대학원대학설립추진 기업협의회부회장(현 금양통신 회장), 이계철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장, 조백제 설립자문위원장(현 서울디지털대학교 총장), 간사인 김창곤 정통부기술심의관(정통부 차관 역임, 현 한국디지털케이블연구원장) 등이었다.
설립추진위원회는 박성득 위원장의 인사말에 이어 김창곤 간사가 대학원대학 설립 기본계획안 설명, 위원별 의결개진 순으로 진행했다.
△정창훈 위원=대학원 부설 중소기업공동연구센터는 어디에 설치하는가.
△김창관 심의관=대학원 캠퍼스 내에 둘 예정이나 각계 의견을 수렴해 결정하겠다.
△김을재 위원=대학원대학 개교와 동시에 센터를 설치 운영할 계획인가.
△장홍식 위원=중소기업공동연구센터는 대학원대학 개교와 더불어 설치해 운영할 계획이다.
△반장식 위원=기존 대학원과 차별화, 현장 실무중심의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김정덕 위원=교과과정과 학사운영 등 매우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므로 대학원도 KAIST 사례를 검토해 추진하는 것이 좋다.
△곽창신 위원=디자인포장센터부설 국제산업디자인대학원의 설립 계획도 참고가 될 것이다.
△양승택 위원=KAIST와 충남대 간의 상호 학점인정, 겸직교수 활용 등은 이점이 많을 것이다.
△이천표 위원=초기에는 연구원 부설로 설립하는 것이 이해가 되나 학부 간 전공제를 다양화하려면 사회과학 분야도 전공분야로 추진해야 한다. 전자공학과 정보통신정책학, 사회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과정 개발이 필요하다.
△이계철 위원=정보통신 경영 석·박사 양성도 필요하다.
△조백제 위원=특성화 교육과정에는 기술을 아는 사람이 경영을, 경영을 하는 사람이 기술을 공부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정홍식 위원=의견을 수렴해 대학원대학 설립계획서를 더욱 보완하겠다. 법인설립 문제는 교육부와 계속 실무검토를 진행하겠다.
△박성득 위원장=대학원대학 설립 계획과 관련해서는 충분한 토론이 있었다. 따라서 원안대로 통과시키자. 오늘 제기된 부처 간 실무협조는 계속 협의해 조정하겠다.
참석자들은 이날 회의에서 `정보통신대학원대학(ICU)` 설립 계획을 확정했다.
정통부는 대학 설립과 운영에 필요한 예산은 1010억원으로 추정했다. 이중 건설비 450억원과 준비금 40억원은 정부가 정보화촉진기금에서 충당하고 운영기금 400억원과 연구시설 120억원은 대학원 설립에 공동 참여하는 기간통신사업자와 민간정보통신업체에서 부담키로 했다.
정통부는 대학이 21세기 국가발전을 선도할 최고의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교육과정도 특화해 1년 3학기제 운영과 석·박사과정도 통합 운영키로 했다. 당시 1년 3학기제 운영은 파격적인 일로 창의적인 인재양성의 새 모형이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