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엔지니어다. 엔지니어링 회사라고 하면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 언뜻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내가 일하는 화공플랜트 분야는 정유정제시설, 천연가스생산시설, 석유화학공장 등을 설계하고 역무범위에 따라 자재·기기 구매, 시공까지 한다. 나는 프로세스팀에 속해 있다. 우리 팀은 설계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공정흐름도·공정 설명서·설계 기준서 작성, 기기 및 배관 크기 결정, 배관·기계·계장 등 다른 팀의 설계 업무를 위한 기본 공정 데이터를 제공한다. 한마디로 프로세스팀이 화공플랜트 설계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내 꿈이 처음부터 엔지니어는 아니었다.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석사로 학업을 마치기로 결정했고, 취업설명회를 왔던 이웃 연구실 선배를 따라 현대엔지니어링에 취업했다. 엔지니어링 사를 선택한 것은 대학시절 수업에서 만난 한 선배의 영향이 컸다. 졸업한 선배가 방문해 회사에서 하는 일을 설명해줬는데,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화학공학 출신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지금 우리가 배우고 있는 수업이 얼마나 중요하며 실제 어떻게 활용될 것인지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전공인 화학공학을 살리기에 엔지니어가 가장 최적의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취업 후 실제 모든 업무가 전공지식을 기초로 하고 있어, 전공을 200% 활용하고 있다.
입사 당시만 해도 여성 엔지니어는 극소수였다. 하지만 선배들은 외국에는 남자들과 동등하게 일하는 여성 엔지니어가 많다며 유능한 여성 엔지니어가 되라고 용기를 줬다. 실제 남자와 여자가 일하는 조건은 같았다. 오히려 기술 집약적이고 타 부서와 연관업무가 많은 복합적 설계 분야라 여성의 세심함이 필요한 경우가 많았다.
어느덧 입사 10년차가 됐다. 요즘 엔지니어링 업계는 호황이다. 일은 넘쳐나는데 엔지니어가 부족해 회사마다 아우성이다. 신입사원을 엔지니어로 키우는 데 걸리는 기간이 길다 보니, 늘어나는 수주를 따라가지 못해 수요보다 공급이 적은 인력난을 겪고 있다. 화공플랜트 분야는 여성의 세심함이 강점이 될 수 있고 수요도 많으니 많은 여자 후배들이 이 분야로 진출하길 바란다.
한정된 인력으로 정해진 프로젝트 일정에 따라 성과품을 준비하고, 발주처 요구를 맞추기 위해 항상 숨 가쁘게 일하다 보니 여성으로 일과 가정을 함께 유지하기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던 여성 엔지니어는 꾸준히 늘어 많은 여자 후배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 여성 인력이 많아진 만큼 가정, 육아문제를 배려하도록 사회 분위기가 변할 것으로 생각한다. 건강한 가정을 유지하며 더 많은 여자 후배들과 함께 활기차게 일할 날을 기대해 본다.
박신정 현대엔지니어링 프로세스팀 과장 sjbak@he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