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똘똘한 소재가 엮어낸 쾌거

김재홍 지경부 성장동력실장
김재홍 지경부 성장동력실장

김재홍 지식경제부 성장동력실장 jkim1573@mke.go.kr

지난해 11월 생산기술연구원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상기된 목소리로 우리나라가 독자 개발한 에코 마그네슘이 미 연방항공국 규제심사 통과를 앞두고 있어 곧 항공소재로 인정받을 것이란 반가운 소식을 전해왔다. 미 연방항공국은 그동안 항공기에 마그네슘 사용을 엄격히 금지해왔던 터라 놀라웠다. 더욱 놀라운 일은 미 연방항공국 심사를 통과할 수 있도록 뒤에서 지원해 주는 곳이 국내 기업이 아닌 미국 보잉이었다. 그것도 세계 최대의 항공기 제작사인 보잉이 말이다.

사실 보잉은 지난해 초부터 에코 마그네슘의 항공기 소재부품화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지경부는 스스로 찾아온 보잉을 그대로 돌려보낼 순 없었다. 보잉과의 면담에서 양국 공동협력 분야를 보다 폭넓은 분야로 확대하고 한국기업의 보잉 소재부품 공급망 참여를 위한 양해각서 체결을 제안했다.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에서 던졌던 제안에 보잉은 의외로 협력을 반겼다. 양측은 지난 12월부터 본격적인 협상에 돌입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보잉은 이미 에코 마그네슘 외에도 티타늄, 복합재, 항공전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과 협력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그러나 첫 단추를 끼우는 양해각서(MOU) 교환식 준비는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보잉과의 공동 R&D 프로젝트 지원방안 마련, 보잉과 협력이 가능한 국내 소재부품기업 발굴 등에 지경부와 KOTRA 담당자 전원이 매달려야 했다. 특히 MOU 성격상 미국에 있는 보잉 본사와 직접 협상했기 때문에 시간적·공간적 제약이 많이 따랐다.

또 협상전 비밀유지계약(PIA)을 체결해 엄격한 보안 속에 일을 추진해야 했다. 보도 자료에 들어가는 단어 하나하나까지 합의하는 등 실무자 간에는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여야 했다.

지난 22일 드디어 4개월여에 걸친 협의 끝에 지경부와 보잉은 글로벌 동반성장 MOU에 서명했다. 그토록 높게만 보였던 보잉에 국내 기업들이 소재와 부품을 공급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첨단소재를 통해 다른 분야의 공동협력까지 덤으로 얻어낸 쾌거였다.

보잉과 지경부가 맺은 MOU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소재 하나로 세계 최고의 글로벌 기업을 한국으로 불러 들였다는 점이다. 핵심원천소재기술 부족으로 해마다 엄청난 규모의 대일 무역역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도 소재기술에 집중하면 조립 중심의 제조 강국이란 불명예를 얼마든지 떨쳐 버릴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둘째, 기술개발 최종 지향점은 국내시장이 아니라 세계시장을 향한 도전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좁은 국내 시장만을 탓하지 않고 과감하게 해외시장을 향해 도전할 때 그 노력의 과실이 수십 배, 수백 배로 돌아 올 수 있다는 것을 에코 마그네슘 사례가 보여줬다.

마지막으로 소재부품 업체들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기업과의 파트너십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간 국내 소재부품 업체들은 국내 대기업에 의존해 경영을 해왔다. 이 전략이 고속성장 시대에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을 바라보는 지금은 보잉과 같은 글로벌 기업과 손을 잡을 때다.

사실 문명 역사는 곧 소재 발전 역사이기도 하다. 구석기, 청동기, 철기시대를 가르는 기준 역시 소재다. 21세기 하이테크 시대 승패도 결국 소재에서 갈린다.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나라가 주력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첨단 신소재 기술 개발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소재가 중요하지만, 그간 소재분야가 등한시된 측면이 있다. 이번 보잉과의 MOU가 소재 분야 육성과 우리 경제 발전의 전환점이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