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공공부문 R&D 축은 크게 3개다. 현재 통합논의로 진통을 겪고 있는 정부출연연구기관(국가개발연구원)과 대학, 그리고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 오세정)이 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은 산업을 지원할 목적으로 응용 및 원천 연구(목적기초)를 주로 진행한다. 반면 기초과학연구원은 대학과 함께 국가 차원의 기초과학 연구가 주 미션이다. `돈`이 안 돼 기업이 손대기 어렵거나 과학기술 기반이 되는 기초를 다지자는 취지로 지난 해 11월 만들어졌다.
응용분야 R&D에서는 이제 더 이상 선진국 베끼기나 벤치마킹이 통하지 않는다.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창의연구로 가야만 하는 수준까지 올라왔기 때문이다.
기초과학 R&D도 `남들 베끼기` 연구에서 창조적인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오세정 IBS 원장의 지론이다.
오 원장은 “기초분야에서도 다른 나라 사람들 따라가는 연구를 많이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남들 안하는 걸 해보자. 우리나라도 그럴 때가 됐다”며 “그런 연구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기초과학연구원이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노벨상 수상 가능성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드러냈다.
오 원장은 “노벨상 수상이 목표가 되면 기관 설립 취지가 자칫 왜곡될 수 있다”며 “기초과학 기반을 충실히 만들어가다 보면 노벨상은 자연스레 따라올 것”으로 내다봤다.
오 원장으로부터 올해 IBS 설립 진행과 운영 방향 등에 대해 들어봤다.
-IBS가 출범한지 3개월 밖에 안 되다 보니, 아직은 국민적인 관심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향후 기관 운영 방향에 대한 큰 그림은 어떻게 되는지요.
▲IBS는 기초과학을 위해 설립한 정부출연연구기관입니다. 물리, 화학, 생명, 수학, 지구과학 등을 집중 연구합니다.
우리나라 IT, 반도체, 자동차 등과 연결된 응용과학은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습니다. 돈과 연결된 분야이기에 많은 지원과 투자가 이뤄졌습니다. 반면 기초과학은 응용과학과 비교할 때 이렇다 할 지원과 투자 없어 명맥만 유지해오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IBS 설립으로 기초과학분야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를 시작할 발판이 마련됐다고 봅니다.
IBS는 기초과학분야 세계 10대 연구기관 진입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상위 1% 인용논문 세계 10대 게재 기관, 우수과학자 직장 선호도 1위 기관, 노벨과학상 수상 과학자 최다 배출 및 보유기관, 신진 연구인력 지속 유입 및 육성 기관을 세부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수월성, 개방성, 자율성, 창의성을 근간으로 IBS를 글로벌 기초과학 연구거점으로 만들어 갈 것입니다.
-IBS는 연구와 함께 교육 기능도 있습니다. 차세대 기초과학 연구리더를 육성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선 KAIST와 UST 등 이공계 교육기관과 연계한 석사학위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육성한 과학인재는 한국 과학이란 숲을 풍성하게 만들어줄 것으로 확신합니다.
젊은 과학자에게는 다양한 창의연구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연구단이 구성되면 연구단 내 유망한 신진 연구자가 차세대 연구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개인 연구 활동을 지원합니다. 필요에 따라 외부 인력이 참여하는 독자 연구그룹을 구성해 연구 활동을 수행하도록 할 계획입니다.
미래 연구단장으로 성장할, 잠재력을 갖춘 젊은 우수 연구자도 선정합니다. 이들에게는 4~5명 규모 소형 연구그룹을 독립적 운영하도록 지원할 것입니다. 하고 싶은 연구를 자유롭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독립연구그룹은 본원과 캠퍼스에 설치합니다. 연구단이 수행 중인 연구 분야와 연구 인력을 연계시킨다면 시너지 효과도 클 것으로 예상합니다.
-현재 연구단장 공모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돼가고 있습니까.
▲지난 2월 말로 지원자는 101명입니다. 그 가운데 1명은 대덕 출연연구기관을 통해, 다른 1명은 KIST를 통해 지원한 해외거주 인물입니다. 광주과기원 연합 캠퍼스에서도 외국인 1명을 추천했습니다.
연구단장 선발은 본인 신청과 IBS과학자문 위원회 추천으로 후보 풀을 먼저 구성합니다. 이어 16명으로 짜인 연구단장 선정·평가위원회가 이들을 대상으로 심사를 하게 됩니다.
공정성과 객관성 확보를 위해 연구단장 선정·평가위원회 위원 절반가량을 외국에서 활동하는 석학으로 구성했습니다. 현재 이 위원회 구성은 마무리 단계를 밟고 있습니다. 모두가 인정하는 단장 선정을 위해 공개 심포지엄도 진행할 것입니다. 동료 간 비공개 토론으로 후보검증도 거칠 계획입니다.
연구단장은 총 50명을 뽑을 계획입니다. 올해는 3회에 걸쳐 25명 정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숫자를 채우기 위해 수월성이 떨어지는 후보를 연구단장에 앉히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숫자에 연연하는 것은 IBS는 물론 국민들도 원치 않는 일일 것입니다.
첫 단추를 제대로 끼워야 기초과학이 제대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연구단장 선정평가 위원장을 외국인이 맡는다고 하는데.
▲피터 풀데(Peter Fulde)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 소장께서 연구단장 선정평가위원장을 맡습니다. 피터풀데 박사는 독일 막스플랑크 복잡계물리연구소 초대 소장을 지냈습니다. 물리학 분야 권위 있는 상인 마리안 스몰루호프스키-에밀 바르부르크 물리학상을 받은 석학이기도 합니다.
풀데 위원장과 유능한 위원들이 연구단장 적임자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연구단장 선정과정에서 일부 수월성 기준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IBS는 철저한 다단계 검증을 거쳐 단장을 선별할 것입니다.
연구단장 선정평가위원회 사전심의를 거친 뒤 패널 평가 방식으로 단장 후보를 1차 필터링 합니다. 이후 종합 심의 및 후보자 압축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노벨상 수상자 등으로 구성된 IBS 과학자문위원회가 후보자 적격성을 다시 한 번 더 검증합니다.
철저한 검증과 평가를 거쳐 단장을 선별할 것입니다. 수월성이 떨어지는 후보는 절대 뽑지 않을 것을 재차 강조합니다.
-외국에 나가있는 과학기술자를 다시 귀국 시키는 전략도 펴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우수한 인재를 귀국시키기 위해 IBS는 `브레인 리턴(Brain Return) 500`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외국으로 나간 한국의 우수과학자를 다시 한국으로 데려올 것입니다. 이들에게 최고 수준의 연구 환경을 제공합니다.
연구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연구자에게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해주면, 이들은 독창적이고 모험적인 연구를 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과학은 선진국 추격형 체제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모험적이고 실험적인 연구는 선진국에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적었습니다. 이제는 과정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독창적이고 모험적인 연구를 할 때입니다.
그런 연구를 진행할 재외 과학자를 모셔올 것입니다.
향후 충원할 3000여 인력의 50%이상은 대학과 연계해 교수와 겸직하거나 석· 박사과정·박사후 과정이 차지할 것입니다. 개방성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제 시작하는 IBS의 미래 모습을 그려본다면.
▲과학 분야 노벨상이 IBS에서 배출되는 날을 상상하곤 합니다. 50개 연구단이 구성되고 500명의 과학자들이 한국으로 들어오고, IBS 틀이 갖춰지면 노벨상도 그리 멀리 있는 허상은 아닐 것입니다.
이를 위해선 과학을 바라보는 사회전반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과학은 수백, 수천의 실패 속에서 접근법과 방법론을 수정·개선해 결과를 도출합니다. 그럼에도 연구 과정의 실패나 성실한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참으로 아쉽습니다.
`성실실패`를 용인하고 연구결과를 기다려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우리나라 과학은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
△1953년생
△학력사항
-경기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학사
-미국 스탠포드 대학원 물리학 전공 석, 박사
△경력사항
-1981~1984 미국 제록스 팔로알토 연구소 연구원
-1984~현재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물리·천문학부 교수
-1989~1994 대통령자문 21세기 위원회 위원
-1994~1994 일본 도쿄대 방문교수
-1999~2008 과학기술부·과학재단 지정 우수연구센터 복합다체계물성연구센터 소장
-2004~2005 교육부 2단계 BK21 사업기획단 위원장
-2004~2006 대통령자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제8기, 제9기 위원
-2004~2008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전국자연과학대학장협의회 학장 및 회장
-2008~2009 교육과학기술부 `세계적 연구중심대학` 사업 총괄관리위원장
-2008~2009 대통령자문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제1기 위원
-2009~현재 교육과학기술부 기초기술연구회 이사
-2011~현재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위원회 위원
-2011~현재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
-2011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2011~현재 기초과학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