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그리드 시장 창출을 위한 전문가 좌담회

◆참석자

유복환 대통령직속 녹색성장위원회 단장

정동희 대통령직속 녹색성장위원회 에너지정책국장

정승일 지식경제부 에너지산업정책관

문승일 서울대 전기공학부 교수

허엽 한국전력 개발사업본부장

손진수 KT 스마트그린개발단장

송혜자 우암코퍼레이션 회장

사회=주문정 전자신문 그린데일리 부국장

정부는 지난달 28일 김황식 국무총리 주재로 관계 장관, 녹색성장위원회 민간위원, 시민단체 전문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6차 녹색성장 정책 이행점검회의`를 개최했다. 스마트그리드와 LED 정책에 대한 이행점검 결과 보고회 자리였다. 정부는 2016년까지 전국 가정을 대상으로 2가구당 1대 원격검침인프라(AMI)·전기자동차 충전기 15만기·20만㎾h 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를 보급할 방침이다. 여기에 지능형 수요관리 도입 및 수요관리 전문서비스 사업자 육성을 통한 시장창출 방안을 제시했다. 정부는 다양한 스마트그리드(지능형전력망) 산업 육성정책을 수립하고 있지만, 실제 시장을 주도할 기업들은 조기 시장창출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전자신문 그린데일리는 정부·학계·업계 전문가들과 함께 스마트그리드 분야 비즈니스 창출 방안을 점검해 봤다.

◇사회(주문정 전자신문 그린데일리 부국장)=먼저 국내 스마트그리드 상황과 선진국 스마트그리드 최근 동향 그리고 녹색성장 정책 이행점검 결과에 따른 향후 정책방향 등을 들어보겠다.

◇유복환 대통령직속 녹색성장위원회 단장=스마트그리드는 우리 정부가 추구하는 녹색성장 핵심 인프라다. 정부는 제주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사업과 향후 거점지구사업을 통해 광역시와 연결하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스마트그리드 시장 창출은 이번 녹색성장 정책 이행점검회의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졌다. 최근 미국전력연구소(EPRI)의 편익 보고서에도 스마트그리드를 구축할 경우 투자대비 수익이 적어도 3배 이상 높은 사업으로 평가했다. 아직 국내 스마트그리드는 초기 단계로 상용화는 조금 더딘 상황이지만, 우리가 가야할 방향임에는 틀림없다.

◇문승일 서울대 전기공학부 교수=스마트그리드 외국 사례를 보면 미국은 노후된 전력시스템 고도화, 유럽은 신재생에너지 운영계통과 연결하는 인프라, 중국은 강력한 전력망, 일본은 최근 들어 적극적인 스마트그리드 커뮤니티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와 비교하면 우리 전력망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정부가 추구하는 저탄소 녹색성장의 핵심은 스마트그리드이자, 우리의 녹색성장을 구현할 사실적인 플랫폼이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제주실증사업에만 매달리고 있다. 실용화 측면에서 이탈리아나 네덜란드 AMI보급 사업에 비하면 액션이 턱없이 부족하다.

◇정동희 대통령직속 녹색성장위원회 에너지정책국장=우리는 장시간 마라톤을 위해서 옷도 장비도 갖춘 상태다. 관련법도 정부의 강한 비전도 완성된 상황이다. 지금은 어떤 방법으로 상업화를 실현할 것인가를 준비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다. 정부는 세계 최초로 스마트그리드 법을 제정했고 뒷받침할 전력IT·전기차·ESS 등 기술과 제품도 세계 최고 수준이 됐다. 반면에 정부가 초기 시장 창출을 위해 의욕적으로 나섰지만 저압(가정용) 스마트미터 등 아직 미숙한 분야도 있다. 의욕만큼 추진정책이 다소 늦어진 것도 사실이다.

◇사회=정부 스마트그리드 추진 열정에 비해 실제 산업현장에서는 시장 창출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정부 추진정책과 산업현장 간 온도차가 존재하는데 그 원인과 대책은.

◇손진수 KT 스마트그린개발단장=정부의 1조2000억원 예산은 연구개발(R&D) 중심인데다 한국전력의 인프라 투자계획이 불분명해 민간에서 체감할 수 있는 시장수요는 거의 없다. 스마트미터나 통신 인프라 구축 등에 민간 참여를 확대해야 하고 한전 역시 인프라 구축을 보다 공격적으로 해야 한다. 정부는 2단계(2013년~2020년) 사업에 8조9640억원, 3단계(2021년~2030년) 17조3473억원 예산투입을 계획하고 있지만 아직 먼 이야기라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턱없이 낮고 획일적인 전기요금으로는 아무리 좋은 에너지효율화·피크절감 등을 서비스하더라도 그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송혜자 우암코퍼레이션 회장=제주 실증단지에 정부는 800억원을 투입했지만 참여기업들은 그 이상을 들여 사업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차기 사업을 고려해 무리를 해서라도 사업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 만큼 정부 예산이 현실적이지 못하다. 인홈디스플레이(IHD) 보급사업만해도 지난해 80억원이 투입됐지만 올해 사업비는 36억원으로 줄었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향후 스마트그리드에 거는 기대가 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해 포기하는 기업이 생겨날 정도다. 이마저도 차기 정권이 지금의 중소기업 현실을 얼마나 제대로 반영해 이어갈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문승일=정부 열정에 비해 투자는 부족했다. 2009년 스마트그리드가 생긴 후 3~4년이 지난 지금쯤이면 시장이 열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상은 달랐다. 기업은 관련 기술과 제품을 개발했지만 팔 수 있는 시장이 없다. 지금은 정부와 기업의 역할이 전도되는 상황까지 왔다. 정부는 시장창출이 어려운 곳에 투자를 해줘야 하는데 현재로써는 시장도, 관련법(저속차 관련법)도 마련하지 않고 제품만 주문하는 셈이다. 기업이 전기차를 만들었지만, 도로교통법이 이를 받쳐주지 못했다. 현실적인 인프라 구축보다는 성과위주의 과제만 진행해 왔다. 제주실증단지 시행착오 경험을 바탕으로 실제 시장은 거점지구부터 조성해야 한다. 정부는 실현 가능한 범위부터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계획을 내놓아야 한다.

◇정승일 지식경제부 에너지산업정책관=이번 녹색성장 점검은 시기적절했다. 민간기업 주도의 시장 활성화에 초점을 맞춘 만큼 향후 제도 개선에도 역점을 두겠다. 스마트그리드 시장 신뢰성 확보는 다소 미흡했고 일부 예산정책도 성급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보급한 IHD 결과를 보니 전기사용량이 5%가량 감축되는 의미 있는 데이터도 도출했다. 이 처럼 스마트그리드 기본계획은 전반적인 산업 생태계를 건강하게 하고 단계적으로 얻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2030년까지 5년 단위로 참여기업과 함께 만들어 가겠다.

◇사회=민간투자를 유도할 수 있는 방안은 어떤 것이 있을지. 그리고 기업이 원하는 투자 유도 방안은.

◇정승일=앞으로 한전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본다. 정부는 스마트그리드를 효과적으로 구축하는데 한전과 함께 노력하겠다. 전기차 및 충전 인프라와 신재생에너지 간 연계성 확보에 노력해 민간투자를 유도할 것이다. 또 기본계획에서는 AMI와 전기차 보급을 민간으로 확대하기 때문에 실증사업 수준을 넘어 관련 시장창출도 기대된다. AMI와 전기차 인프라를 연계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거점지구 사업에 적극 반영할 계획이다.

◇손진수=민간투자 유도는 시장 불확실성 제거가 우선이다. 국가적 전력수요관리 목표와 그에 따른 실행계획을 구체화해야 민간참여가 실현될 수 있다. 이에 민관합동 `전력수요관리` 점검 기구 설치나 전력수급기본계획과 동일한 방식의 전력수요관리기본계획도 수립해야 한다. 민간 중심의 수요관리 시장 확대도 시급하다. 한전은 막대한 고객정보와 영업력을 보유하고 있어 고압수용가도 직접 모집해 수요를 감축할 경우 지능형 수요관리 시장은 붕괴될 우려가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지금의 수요관리프로그램과 전력거래소 수요시장을 통합, 민간 수요반응사업자 간 시장 경쟁 체제를 조성해야 한다.

◇송혜자=한전이 먼저 신바람이 나야 한다. 수요자원 시장 등 전력시장 개방도 중요하지만 한전이 먼저 신바람 나게 해주면 관련 업계 모두가 잘 될 수 있다. 스마트그리드를 청정개발체제(CDM)로 인정해주면 한전 경영에도 도움될 것이다. 지난해 AMI보급사업이 보류됐고 아직까지 올해 사업계획이 나오지 않고 있다. 사업진행에 어려움이 있다면 관련 기업이 힘을 모아 사업 모델을 발굴할 수 있는 공동체 모임을 갖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허엽 한국전력 개발사업본부장=AMI와 수요관리가 중요한 것 같지만 오히려 계통망부터 지능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에너지 전체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전달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스마트그리드 하면 AMI·수요반응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가 아는 것과 달리 세계 수요반응은 제대로 사업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AMI는 수요반응보다 전기요금을 내지 못한 수용가를 원격으로 단전시킬 목적으로 사용한다.

◇사회=스마트그리드 초기 시장을 창출하고 성공적인 해외 진출을 위해 필요한 조건이 있다면.

◇손진수=정부 정책이 `잘됐다` `잘못했다`가 아니다. 실행이 됐느냐 그렇지 않은가를 점검해야 한다. 이행점검을 했다면 잘한 기업은 인센티브를, 못한 기업은 과감하게 페널티를 줘야 한다. 이런 기준을 점검하고 실행할 전담기구를 둬야 한다. 이를 통해 사업 불확실성을 검증하는 것이다. 이후 민간투자 유도는 불확실성이 제거되면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다. 정부의 당초계획이 이행됐는지 여부를 정확하게 점검해야 하고 필요한 것은 끊임없이 확인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기업들이 정부 정책을 신뢰할 수 있다.

◇허엽=한전은 제주실증단지에서 경제성과 기술력이 검증된 제품을 적극 구매함으로써 산업발전과 신규 고용창출을 견인할 계획이다. 해외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수출 대상국의 환경 및 특성에 부합한 제품과 요소기술 개발이 선행돼야 한다. 미국은 송배전설비 교체에, 유럽은 신재생에너지, 저개발국은 송배전손실률 저감 기술 등이 필요하다. 국내는 공급 차원에서 사업을 하다 보니 전기요금을 원가이하로 공급하고 있다. 국내는 공익위주에, 해외는 수익사업을 통해 국내 취약점을 보완하려고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기업들과 동반진출하는 것이다.

◇문승일=지능형전력망 특별법 시행령 제정을 기반으로 제주실증단지와 향후 거점지구 사업을 집행할 전문성을 갖춘 실무 전담기관이 있어야 한다. 지금의 스마트그리드사업단 자체로는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최소한 진흥원 수준의 기관이 돼야 한다. 차기 정부에서도 차질 없도록 참여기업에 사업적 신뢰를 주는 차원에서도 제도장치가 필요하다. 제주는 인구 50만명이 살고 있지만, 매년 700만명이 찾는다. 전기차를 2만대 공급하면 좋겠다. 표준화는 당연히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되는 것이니 세계 시장 진출을 고려해 제주를 적극 개방해 활용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유복환=정부는 세계시장을 목표로 기술역량 강화와 적극적인 시장 창출을 위해 보다 세심한 정부정책과 육성이 필요하다는 걸 인식하고 있다. 3월 말 발표예정인 지능형전력망 기본계획에 오늘 토론한 내용을 최대한 반영하겠다. 기본계획은 향후 우리나라 스마트그리드 산업의 모습으로 기업의 시장 창출에 중점을 뒀다. 세계시장 진출을 목표로 지금부터 기업 간 동반성장·동반진출에 정부차원의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

정리=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