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P3 플레이어 따로, 피처폰 따로 들고 다니던 몇 년 전과는 달리 요즘은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 뿐만 아니라 2011년 화제를 모았던 ‘나는가수다’ 덕에 음악이 본연의 모습인 ‘듣는 음악’으로 돌아온 것도 사실. 하지만 스마트폰에 딸려온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다 보면 허전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물론 번들 이어폰도 나쁘지는 않지만 원가를 낮추려다 보니 가격이 낮아지기도 하고 또 모든 사람들의 취향을 맞추기도 어렵다. 이 때문에 10만 원이 넘는 고가 이어폰을 큰 맘 먹고 ‘지르는’ 사람들도 흔히 찾아 볼 수 있다. 하지만 무작정 몸값이 높다고 해서, 혹은 모양새가 그럴 듯해서 샀다가 상상했던 소리와 전혀 딴판이라 실망하는 경우도 많다. 컨슈머저널 이버즈(www.ebuzz.co.kr)와 하이파이 전문 사이트 골든이어스(goldenears.net)가 시장에서 잘 팔리는 고가 이어폰 5종을 골라 직접 테스트해 봤다.
■ 테스트 환경 소개
이번 테스트에서는 유통업체(G마켓, 다나와, 옥션, 인터파크, 에누리, 마이마진, 11번가) 판매·인기 순위를 바탕으로 10만원 대 초반에서 20만원 대 후반에 팔리는 이어폰 중 총 5종을 선정했다. 이들 이어폰을 골든이어스가 보유한 시뮬레이터(Head And Torso Simulator)를 이용해 측정하고 실제로 사람이 귀로 들었을 때 느낄 수 있는 주파수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했다.
이 시뮬레이터는 인간의 귀 구조를 최대한 비슷하게 재현하였고 음파 측정용 마이크도 인간 귀의 고막과 같은 위치에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소리가 나는 이어폰 진동판과 고막 사이에 있는 공간에서 공진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측정 결과를 표기하기 전에 이를 보정하기 위한 작업을 거친다(Diffuse Sound Field, The Small Room X-Curve 보정).
이렇게 얻어진 주파수 응답곡선을 바탕으로 실제로 들리는 소리의 재생 대역폭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 이어폰의 소리가 어떤 성향을 띠는지 골든이어스 김은동 대표의 조언을 구했다.
주파수 응답특성 그래프의 상하표시는 소리의 크기를 나타내는 dB(decibel, 데시벨)이 단위로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1dB은 사람이 구분 가능한 최소 단위이며 3dB이면 누구나 쉽게 구분을 할 수 있는 단위이다.
일반적으로 하이파이 스피커의 경우 주파수 응답특성의 범위를 +-3dB혹은 +-6dB범위 내에서 표기한다. 하지만 이번 분석에서는 마스킹 효과(Masking Effect)를 고려해 제조사에 유리한 조건인 +-10dB 범위를 기준으로 살펴보았다.
■ 뱅앤올룹슨 A8 “의외로 표현 폭 좁다”
뱅앤올룹슨 A8은 가로축과 세로축을 접어서 귀에 밀착하는 특이한 디자인 때문에 인기가 높다. 환율이 뛰어오르면서 가격이 20만원 대 초반까지 올랐지만 기내 면세점이나 벌크 제품을 이용하면 10만 원대 중반에 구할 수 있다. 몇 년 전 국내 몇몇 업체에서도 이 이어폰을 벤치마킹한 이어폰을 내놓기도 했었다.
제조사에서 공개한 자료를 보면 이 이어폰의 주파수 대역폭은 20Hz에서 20kHz(20,000Hz)까지로 표기되어 있다. 하지만 김은동 대표는 "실제 측정 자료(위 그래프 참조)를 기준으로 판단했을 때, 이 이어폰이 표현할 수 있는 고역의 한계는 +-10dB 기준으로 보아도 12kHz 정도가 최대치일 것으로 예상합니다"라고 말했다.
“10kHz 이후의 그래프를 보면 1kHz의 소리에 비하여 대략 10dB정도 작게 나옵니다. 물론 계측기로 측정을 해 보면 그래프의 아래쪽에 표기가 되긴 하지만 사실상 12kHz 이후의 소리를 실제로 사람이 듣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A8 이어폰은 오픈형 이어폰의 약점인 저역대는 극복했다는 것이 김 대표의 평가다. 일반적인 오픈형 이어폰들은 저음이 그다지 재생되지 않고 대역폭도 좁은데 반하여, A8은 저음의 재생 대역폭도 오픈형 중에서는 비교적 넓은 편이고 소리 성향도 다른 이어폰에 비해 비교적 균형이 잡힌 편이다.
■ 보스 인이어 헤드셋 “답답하게 느껴질 가능성 있어”
보스 인이어 헤드셋은 부드러운 실리콘 재질이 귀에 밀착되어 소리가 새어 나가는 것을 막아 주는 이어폰이다. 대체로 저음이 탄탄한 반면 고음부 음 재현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있어서 평가는 엇갈린다. 가격은 10만 원대 초반으로 비교적 부담없이 구매할 수 있다. 애플 아이폰에서 작동하는 볼륨조절, 통화 스위치를 단 제품도 나와 있다.
제조사 자료에 따르면 이 이어폰의 주파수 응답특성은 20Hz에서 15kHz까지로 표기되어 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이 제품도 앞서 살펴본 A8과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하면 약 13kHz 정도가 최대치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제품은 비교적 정확한 수치를 표기한 셈이다.
하지만 이 이어폰은 위 그래프에 보이는 실제 측정 결과에서도 10dB 가까이 저음역대가 강조(Boosting)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이렇게 저음역대를 강조하다 보면 보컬이 걸려 있는 중음역대까지 소리가 가려지는 ‘마스킹 현상’(Masking Effect)이 일어나 소리가 답답하게 들릴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 비츠바이닥터드레 투어 “저음 강조 뚜렷해”
비츠바이닥터드레 투어는 빨간색 색상과 일명 국수가락처럼 생긴 특이한 이어폰 케이블 덕에 찾는 사람들이 많다. 케이블이 원형이 아니라 납작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잘 꼬이지 않고 관리하기도 편하다. 지난 2011년부터 HP와 HTC가 자사 노트북/스마트폰에 비츠오디오 기술을 도입하면서 인지도가 높아지기도 했다. 2012년 3월 기준으로 15만원 정도에 살 수 있다.
제조사가 공개한 이 이어폰의 주파수 응답특성 자료는 20Hz에서 20kHz까지 표기되어 있다. 위 평가기준을 바탕으로 실제 측정 결과를 보아도 대략 18kHz 이상으로 나와 고역 재생 대역폭은 제조사가 공개한 자료와 어느 정도 일치한다.
하지만 김 대표는 “비츠바이닥터드레 투어 이어폰은 저음이 20dB 이상 강조되어 있어서 그로 인한‘마스킹 현상’때문에 저음의 소리가 중,고역의 소리까지 가릴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저음을 중요시하는 사람에게 알맞은 이어폰인 셈이다.
■ 슈어 SE315 “착색 적지만 표현력 떨어져”
슈어 SE315는 이어폰 마니아들 사이에서 ‘균형잡힌 소리’를 들려주는 이어폰으로 소문이 높다. 특정한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거의 고른 소리를 들려준다는 것. 국내 가격은 20만 원대 초반에 형성되어 있고 꺾임이나 단선으로 케이블에 문제가 생기면 케이블만 교체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제조사에서 표기하는 이 이어폰의 주파수 응답특성은 22Hz~18.5kHz로 되어 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실제 주파수 응답특성을 측정한 그래프를 위와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 평가하자면 제품 제원에 적혀 있는 최대 `18.5kHz` 대역폭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소리의 균형은 어느 정도 맞는 편이다"라고 분석했다.
■ 젠하이저 IE60 “중음역대 답답하게 들릴 수 있다”
젠하이저 IE60은 젠하이저 하이엔드 이어폰 중 가장 낮은 가격에 살 수 있는 제품이다. 가격은 20만 원대이며 국내에는 지난 2011년 11월에 출시되었다. 통화 기능이나 마이크, 리모컨 기능이 모두 제외된 음악 전용 제품이고 제조사가 밝힌 주파수 응답특성은 11Hz에서 18kHz까지이다.
젠하이저 IE60에 대해 김 대표는 "측정 결과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IE60은 저음이 심하게 부풀어 있고 3kHz 부근에서 음압이 떨어진다. 그런데 사람의 목소리 중 자음성분은 3kHz를 중심으로 위치한다. IE60의 이런 특성은 사람 목소리의 명료도를 떨어뜨린다"고 답했다. 저음·고음역은 어느 정도 균형있는 소리를 들려주지만 중음역대 소리가 약간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
■ 제조사들이 정확한 정보 제공 꺼려
테스트 결과 대부분의 이어폰이 제원상 표시된 주파수 대역폭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음은 물론 몇몇 제품에서는 소리의 왜곡 현상(Coloration)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은동 대표는 “특정 제조사의 제품이나 일부 초고가 제품은 소비자가 그래프만 봐도 어떤 성향의 제품인지 파악할 수 있도록 자세한 정보를 제공한다. 하지만 음향기기의 제품사양 표기법에 관한 국제적인 강제규정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제조사들은 실제로 측정을 한 데이터인지도 알 수가 없는 의미 없는 수치만 제시해서 혼동을 주는 것이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제조사가 표기한 수치만 보고 제품을 고르기 보다는 직접 스마트폰이나 MP3플레이어를 가지고 가서 음악을 들어보며 고르는 것이 가장 정확한 셈이다. 하지만 직접 소리를 들어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해 김은동 대표는 “제조사가 표기한 수치에 의존하지 않고 실제로 제품을 측정한 후 그 결과를 공개하는 웹사이트가 전 세계적으로 몇 곳 존재한다. 현재로서는 이러한 웹사이트를 참조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으로 생각된다"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