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삼성전자의 숙명

2003년 1분기 실적이 발표되자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임직원들은 일제히 흥분했다. 삼성전자가 휴대폰 매출에서 처음으로 모토로라를 추월, 2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판매대수에서 뒤졌지만 고가폰에 주력한 삼성전자는 25억3000만달러 매출을 기록, 24억달러에 그친 모토로라를 앞섰다. 1위인 노키아와 격차는 여전했지만 한때 세계 휴대폰 시장을 호령했던 모토로라를 제친 것은 삼성전자 휴대폰사업에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그 소식을 접한 삼성전자 LCD 사업부는 한숨을 내쉬었다. 모토로라는 그 당시 삼성전자로부터 휴대폰 LCD를 구매하는 대형 고객 중 하나였다. 모토로라 측은 삼성전자 LCD사업부에 “만약 삼성전자가 휴대폰에서 우리를 앞지르게 되면 LCD 구매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얘기해왔다. 모토로라는 휴대폰 매출이 삼성전자에 뒤처지자 실제 구매 물량을 일본기업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양사 관계가 회복되기까지는 꽤 오랜 기간이 소요된 것으로 기억된다.

세트사업과 부품사업을 병행하는 일본식 사업구조를 가진 삼성전자 고민이 깊어진다. 삼성전자 세트사업이 강해질수록 부품사업(DS부문) 소속 임직원은 움츠린다. DS부문 주요 고객이 삼성전자 세트사업과 경쟁하기 때문이다. 일부 고객은 자신의 정보를 세트 쪽에 전달했다며 DS부문을 의심하기까지 한다. 사업부 간 독립경영체제와 치열한 내부경쟁을 예를 들면서 해명하지만 고객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둬들이지 않는다. 고객들로서는 TV사업부, LCD사업부 모두 동일한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최근 LCD사업부를 분사시키기로 했다. 당초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SMD)를 합병할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LCD사업부를 분사시킨 후 SMD와 합병해 가칭 삼성디스플레이라는 독립회사로 운영하는 시나리오다. 고객들의 의구심을 지우겠다는 의지도 한몫했다. 그러나 삼성디스플레이 최대주주는 여전히 삼성전자다. 고객들은 삼성디스플레이를 제 2의 삼성전자쯤으로 여길 가능성이 더 크다. 해외에 나가보면 독립회사인 삼성전기, 삼성SDI마저도 삼성전자로 아는 고객도 수두룩하다.

세트사업과 부품사업을 함께하는 삼성으로서는 이같은 고객 시선은 숙명이다. 해답은 메모리에서 보인다. 애플이 삼성의 LCD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면서 메모리를 구매하는 이유는 타사와 비교할 수 없는 최고 경쟁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경쟁사 대비 1년 가까이 앞선 제조공정기술, 2위의 2배에 달하는 시장 점유율은 경쟁사가 삼성전자 메모리를 외면할 수 없는 이유다. 80년대 세계 전자산업을 호령했던 일본기업은 세트와 부품에서 모두 최고였다. 그러나 이제는 두 사업 모두 이류로 내려앉았다. 한편이 너무 강해서 다른 한편이 망가진 건 아니다. 오히려 한편이 약해지자 다른 사업도 이류로 몰락했다. LCD사업부 분사, 그리고 SMD 합병은 삼성 디스플레이 사업의 승부수다. 승부수가 통할지는 경쟁기업의 시선교정보다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하느냐에 달려있다.

유형준 부품산업부장 hjy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