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가 사람들이 유독 싫어하는 말이 하나 있다. `왜 우리나라엔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 뱅크가 없냐`는 물음이다.
최근 한 달새 기자가 만난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도, 윤용로 외환은행장도 이 질문만 하면 돌아오는 답이 유장했다. 아프긴 아픈가보다. 여러 원인을 들었지만, 궁금증은 가시질 않았다.
금융업은 규제산업이다. 허가권만 따면 그 다음부터는 땅짚고 헤엄친다. 그런데도 힘들어 한다 싶으면 알아서 건져주고 인공호흡도 시켜준다. 공적자금 투입이다.
벌이가 좀 시원찮다면 대출이자 올리고 예금이자 내려 `예대마진` 높이면 된다. 여기에 각종 수수료는 덤이다. 900조원을 돌파한 가계부채와 중소기업·영세 자영업자에 유독 높은 대출금리 덕에 지난해 시중은행들은 예외없이 큰 수익을 올렸다.
쉽게 벌어 그런지 은행들이 요즘 연일 돈잔치다. 하나금융지주는 오는 23일 주총에서 임원 보수 총액을 현행 5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늘리는 안건을 통과시킨다. 퇴임하는 김 회장에게 퇴직보로금을 챙겨주기 위해서다. 이 회사가 인수한 외환은행 직원들에게는 성과급 200%가 이달말 지급된다. 5년 독립경영 인정에도 불구, 피인수 은행 직원 입장에서 얼마나 불안하겠냐는 게 지급 이유다.
신한지주의 작년 총배당금은 6295억원. 이중 60%가 넘는 3841억원이 일본 등 외국인 주주들에게 돌아갔다. KB금융은 작년 순이익이 전년보다 크게 늘자, 배당금도 400억원대에서 2000억원 이상 올렸다. SC제일(현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2년 연속 2000억원을, 씨티은행은 3분기 기준 1299억원을 각각 배당했다. 이 두 은행은 외국인 지분이 100%다. 배당금은 전액 외국인 몫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돈장사해 번 돈, 주주랑 종업원이 좀 나눠 갖겠다는데 뭐 잘못됐냐고 한다면 작정하고 `시비` 좀 걸겠다. 국가의 보호 아래, 공공재인 `화폐`를 취급하는 한, 은행은 공익성을 담보해야 마땅하다. 우리가 은행을 `금융기관`이라 부르는 이유다.
다시 질문이다. 왜 우리나라엔 삼성전자 같은 은행이 없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은 것 같긴 한데 뒷맛이 영 개운찮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