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30여년간 우리나라 에너지 산업과 정책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지원하는 실질적인 동력과 밑거름이었다. 지난날 에너지 정책이 상당 부분 성공적으로 추진되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박종배 건국대 교수](https://img.etnews.com/photonews/1203/258560_20120322153306_500_0001.jpg)
1970년대 두 차례 오일 쇼크로부터 시작된 탈석유 정책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과거 석유 중심인 전원 구성은 지금 원자력·석탄·천연가스의 황금비율적인 구성을 유지하게 됐다. 2006년 이후의 급격한 유가 상승에 따른 충격이 우리나라에서 상대적으로 적었던 이유는 전력부문을 중심으로 에너지 다변화 정책이 이미 구축돼 작동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에너지산업의 국내외 환경이 매우 급격하게 변한다. 일례로 유가는 과거 배럴당 20달러 수준에서 계속 상승해 지금은 100달러 내외를 지속적으로 등락한다. 뿐만 아니라 에너지와 산업 부문 지구온난화 가스 감축이 현실로 됐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전 세계의 에너지 정책과 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수입액이 1000억달러를 상회한다. 대규모 송전망 구축은 현실적으로 더욱 어려워졌다. 에너지 산업의 국내외 상황이 나쁜 방향으로 급선회한다. 그러나 급격한 환경 변화는 스마트그리드·신재생에너지·에너지효율 등의 기술과 시장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현 정부가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어젠다를 국정 방향의 중심에 둔 것도 현실과 변화를 정확하게 간파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에너지 산업 변화에 대해 누구도 이견은 없을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대부분 동의하는 고효율·저탄소 중심의 에너지 믹스를 언제 어떻게 효과적으로 구축할 것인가다. 목적지와 출발점이 정해졌으니 경과지의 중간 중간에 위치하는 주요한 장애물을 정확하게 파악한 다음, 이를 극복하는 방법론을 정교하게 설계하고 구현하는 것만이 남았다.
최근 에너지 요금과 에너지 산업구조로 대표되는 현재의 주요한 장애물에 대해 상당 부분 공감대를 형성했다. 하지만, 장애물 극복 방법론에 이르게 되면 매우 넓은 스펙트럼의 대안들이 병렬적으로 제시된다.
이 정부 역시 뚜렷한 방안과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본다. 단지 소비자·전문가 집단·에너지 사업자·시민단체·정부 등 각계각층에서 그들만의 입장과 이념을 바탕으로 제자백가 식 해법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에너지 요금과 산업구조에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엄청난 국가적 손실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전기요금·가스요금·열요금 사이 혹은 이내의 교차보조와 미현실화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어쩌면 우리의 상상을 넘어가는 엄청난 금액일 수 있다. 아무도 수치를 제시하지 않았기에 암묵적으로 넘어갈 뿐이다. 따라서 이는 에너지 기업의 적자 문제를 넘어 사회적 비용의 관점에서 다시 바라봐야 하고 계산해야 한다. 객관적 수치와 사실을 바탕으로 논의를 시작해야만 공허하지 않은 대안과 방법론이 나타날 것이다.
지금까지 에너지 시장 구축을 통해 에너지 산업구조와 요금 문제를 해결하자는 방안과 규제로 모든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입장이 대립했다. 물론 제3의 대안으로 시장과 규제의 정교한 결합과 조화를 통해 목적을 달성하는 방안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현 에너지 시스템의 왜곡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과 각 주장이 목적지에 이르는 비용을 합리적인 차원에서 제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실사구시의 관점에서 수치화된 비용을 기반으로 합리적인 에너지 믹스를 논의할 시점이다.
박종배 건국대학교 교수 jbae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