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불린다. 세계 유수의 전자제품, 가전제품이 중국에서 만들어지고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영어가 ‘Made in China’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동시에 중국은 ‘산자이’(山寨)라고 불리는 모방품, 복제품 천국으로 불리기도 한다. 대기업조차 뿌리뽑지 못하는 이런 모방품 앞에서 중소기업은 속앓이에 그칠 뿐이다. 하지만 이런 복제품 앞에 고품질 제품으로 당당히 승부를 건 CEO가 있다. 자외선 살균기 ‘퓨라이트XD’를 생산하는 엔퓨텍(www.enputech.com) 이화용 대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 강건너 불구경, 알고 보니 ‘내 발등에 불’
엔퓨텍이 생산하는 자외선 살균기 ‘퓨라이트’는 이미 세상에 나온 지 10년이 넘은 제품이다. TV 광고나 이삿짐 업체에서 파란 광선이 나오는 방망이를 가지고 이불이나 침대를 소독하는 장면을 봤다면 여지없이 이 회사 제품인 퓨라이트다. 그런데 이 제품이 나오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탄저균 테러’ 때문이었다고.
![▲ 이 대표가 퓨라이트를 만들게 된 계기는 다름아닌 ‘탄저균 테러’다.](https://img.etnews.com/cms/uploadfiles/afieldfile/2012/03/29/01.jpg)
“2001년만 해도 탄저균 테러 때문에 미국이 시끄러웠죠. 당시 한 업체에서 ‘자외선 살균 장비를 만들어 주면 20만 대를 수입하겠다’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런데 4개월 동안 밤새워 개발을 해 놓고 나니 탄저균 테러 이슈가 쏙 들어갔습니다. 당시에는 결국 개발을 해 놓고도 제품 수출을 못 했습니다.” 엔퓨텍 이화용 대표는 이렇게 묻힐 뻔한 퓨라이트가 결국 TV홈쇼핑을 통해 빛을 보게 됐다고 말한다.
“이 사업을 접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하다가 ‘일단 내놔보자’하고 마음을 먹고 한 TV홈쇼핑 채널을 통해 2002년 11월에 국내 판매를 시작했죠.” 당시만 해도 집먼지진드기 관련 상품이 없었던 지라 그야말로 블루오션이었고 판매도 순조로웠다. 하지만 2004년 말 한 업체가 ‘진드기 기피율 99.9%’라고 광고한 상품이 인증서를 허위로 발급한 제품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며 상황이 달라졌다.
이화용 대표는 ‘강건너 불구경인줄 알았더니 내 발등에 불이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저 업체 어떻게 하냐, 이렇게 남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소비자 단체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홈쇼핑에서 ‘진드기’라는 말만 들어가면 전부 (제품을) 내리더라고요. 당시만 해도 홈쇼핑 이외에 판로가 없었는데 난감했죠. 매출도 떨어지고….”
■ 중국산 카피 제품에 ‘휘청’
결국 이 대표는 2006년부터 직접 시카고로, 라스베가스로, 홍콩으로 직접 뛰어다니며 판로를 개척했다. “이게 기존에 없던 제품이다 보니 바이어 한 명을 이해시키는 데만 해도 반년이 걸립니다. 한 명씩 붙잡고 제품을 이해시키고 ‘시장이 있다’고 설득을 하고….” 그렇게 거래처를 한 곳 한 곳 늘려나가던 것도 잠시, 이번에는 중국산 카피 제품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중국 업체들 장사수완이 보통이 아니더라고요. 제품은 똑같이 베끼고, 우리가 거래하는 바이어한테 쫓아가서 더 싸게 준다고 하고, 공인 기관 증명서는 어차피 똑같은 제품이니까 우리 걸 보라고 했다나요. 시장에서 자리 잡기도 전에 이런 일을 당하니 타격이 심했습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 이 대표는 ‘퓨라이트의 핵심 기술이 필터에 다 담겨 있다’고 강조한다.](https://img.etnews.com/cms/uploadfiles/afieldfile/2012/03/29/02.jpg)
특허를 신청해서 디자인이나 기술을 보호받는 방법은 없었을까? 하지만 이 대표는 고개를 저었다. “미국에만 특허를 냈는데 변호사를 한 명 선임해서 미국 총판하고 중국 제조사에 경고장을 보내본 적도 있습니다. 경고장 2장에 1만 2,000달러(한화 약 1,370만원)가 들더군요. 하지만 큰 성과는 없었습니다. 아무리 중소기업이 특허를 가지고 있어도 금전적인 능력이 없으면 소용 없더군요.”
뿐만 아니라 이런 웃지못할 일도 있었단다. “홍콩 전자전에 제품을 들고 참가했을 때 일인데요, 바로 근처에 문제의 중국 업체 부스가 있었습니다. 거길 찾아가서 ‘내가 대표다’라고 하니 그 회사 영업부장이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다음 말이 더 가관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생산하지 말고 자기네한테 생산을 맡겨달라는 겁니다. 사과는커녕 거꾸로 제안을 하더라고요. 한마디로 ‘적반하장’이죠.”
■ 품질을 높인 ‘정공법’ 통하다
중국산 카피 제품에 고전하고 법적인 방법으로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 대표는 오랜 고심 끝에 제품 품질을 높이는 데 주력하기로 마음먹었다. “미국 시장이 확실히 저가 제품이 먹히는 시장이에요. 그래서 중국 제품 쓰는 바이어들도 많은데, 필터, 배터리, 램프 품질에서 차이가 많이 나서 결국 다 (퓨라이트로) 돌아오더군요.”
필터라고 해도 그냥 보기에는 자외선램프 앞에 대 놓은 검은 판 하나일 뿐이지만 이 대표는 ‘퓨라이트의 핵심기술이 필터에 다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물론 필터가 없는 제품도 같이 생산하지요. 하지만 이 자외선 필터가 있으면 피부암을 일으키는 자외선을 걸러주고 보다 안전하게 쓸 수 있습니다”
![▲ 자외선 필터가 없는 제품도 있지만 판매율은 낮은 편이다.](https://img.etnews.com/cms/uploadfiles/afieldfile/2012/03/29/03.jpg)
해외 판매에서 무엇이 가장 어려운지 물어보자 ‘보여주기 힘들어 힘들다(?)’는 답이 돌아왔다. 무슨 말일까. “집먼지진드기, 세균, 모두 눈에 안 보이죠. 차라리 세균이 죽는 걸 바로 눈에 보여 주는 장치를 만들어 팔면 요즘 말로 ‘대박’이 났을 겁니다. 결국 보여줄 수 있는 건 외부 기관이 발급한 인증서뿐입니다.” 요즘은 아마존 저팬에도 입점해 판매중이고 까다로운 일본 소비자들도 써 보면 만족한다고 한다.
이 대표는 올해 미국시장 판매 목표를 3만대로 잡았다. “작년에는 6억 6,000만 원 정도 수출을 했습니다. 올해 목표는 그 3배인 20억 원 정도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퓨라이트처럼 필터를 쓴 고급 제품은 찾아보기도 힘들어 충분히 승산이 있어 보이거든요.”
■ 축사 살균기·차량 살균기로 사업 다각화
퓨라이트의 수명은 굉장히 긴 편이다. 무상보증기간은 1년이지만 하루에 1시간씩 써도 16년을 버틴다고 한다. 어찌 보면 지속적으로 물건을 팔아야 하는 중소기업에는 바람직하지 않은(?) 제품이다. 그만큼 계속해서 새로운 시장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수출도 좋지만 다른 방법이 필요한 것.
![▲ ‘퓨라이트MD’ 등 휴대용 제품도 나와 있다.](https://img.etnews.com/cms/uploadfiles/afieldfile/2012/03/29/04.jpg)
이 대표에게 제품 수명 이야기를 꺼내니 바로 다른 제품 이야기가 나왔다. “그동안 구제역을 예방할 수 있는 축사 살균기, 차량 살균기를 개발했다 올해부터 보급중입니다.” 퓨라이트와 마찬가지로 자외선을 이용하기 때문에 물과 소독약을 쓰지 않아 친환경적이고 소독약 분무식보다 훨씬 간단해서 품도 덜 든단다.
마지막으로 퓨라이트를 사간 곳 중 특이한 곳을 물어봤다. “한 번은 어느 육군 부대 취사반에서 휴대용 제품을 주문하길래 하도 궁금해서 물어 봤습니다. 자외선 소독기가 다 있지 않느냐고 말이죠. 막상 훈련을 나가면 소독기를 쓸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타지에서 생활하는 병사들 건강에도 도움이 되겠구나 싶어 기분이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