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앞으로 한달]저가 요금제·단말기 없이는 `찻잔 속 태풍`

방송통신위원회는 “단말기자급제를 위한 시스템은 완벽하게 구축됐다”고 4일 밝혔다. 단말기자급제가 시행되기 위한 시스템에는 △휴대폰 식별번호(IMEI) 통합관리센터(CEIR) △이동통신사업자 영업 전산망 △제조사 IMEI 기기 부착 등이다.

도난·분실 등 `블랙리스트`로 신고된 단말기의 IMEI를 공유하는 곳인 통합관리센터는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에 설치돼 운영될 예정이다. 이통사는 5월 1일 이후 공급받는 단말기에 일괄적으로 IMEI를 등록해놓고 개통하던 이전의 과정과 달리, 개통 시마다 전화번호와 IMEI를 매칭시키는 시스템으로 바뀐다. 삼성전자·LG전자 등은 단말기 배터리를 분리하면 IMEI를 사용자가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안쪽 면에 부착해 출고하게 된다.

문제는 실효성이 얼마나 있을지다. 업계는 “피부로 느껴지는 변화가 당장은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단말기가 소비자 판매로 마진을 남기는 것보다 이통사 가입자를 유치하는 도구로 쓰여 온 시장 관행이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우선 보조금 없는 단말기를 소비자가 쉽게 구매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통사 한 관계자는 “가까운 일본만 봐도, 개방형 IMEI제도를 전격 도입했지만 오픈마켓 디바이스(OMD:이통사를 거치지 않고 유통되는 휴대폰 물량)가 0.1%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범유럽 지역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오래 전부터 블랙리스트 제도를 도입한 유럽도 20% 남짓 외에는 모두 이통사가 보조금을 지급해 유통하고 있다.

`저가 선불요금제`를 이통사가 내놓을 가능성도 없진 않다. 보급형 저가 단말기의 시장 공급이 확대되면 저가 요금제와 맞물려 통신비 인하 효과를 누리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장 기업들이 정부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진 않을 전망이다. 이통사 측은 “무리하게 낮은 요금제를 출시하긴 어렵다”며 반박하고, 제조사는 “저가 단말기 수요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는 입장이다. 정부와 기업 간 의견이 수렴되지 않으면 시작부터 진통이 올 수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시장 상황으로는 이통사에도, 사업자에도 특별한 유인이 없다”며 “시스템이 바뀌는 것 외에 OMD 시장이 갑자기 열린다거나 평균 통신비가 빠르게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제조사는 “생산물량이 어느 정도 보장되지 않으면 저가 단말기를 만들래야 만들 수가 없다”는 주장이다.

방통위 관계자도 “당장 눈에 띄는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요금 인하뿐만 아니라 그동안 이통사가 장악한 유통구조에서 생긴 폐해를 없애고 소비자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중장기적으로 단말기 재활용을 통한 자원 절감과 통신서비스 본연의 경쟁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