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연구진이 결국 세계 물리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우주 생성 비밀을 푸는 열쇠로 꼽히는 `중성미자`의 마지막 퍼즐을 맞추는 데 성공했기 때문. 독자 기술로 제작한 장비를 통해 얻어낸 성과라 한 층 더 의미 있다는 평가다.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김수봉 교수를 연구책임자로 12개 대학 35명으로 구성된 연구팀. `RENO(원전 중성미자 실험)`라고 이름 붙여진 이 연구팀은 중성미자의 세 번째 변환상수가 `10.3%`이라고 발표했다.
◇중성미자 마지막 수수께끼=중성미자는 만물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 중 하나로 핵융합이나 핵분열 반응 때 발생한다. 전자중성미자, 뮤온중성미자, 타우중성미자 세 가지가 있다. 질량이 워낙 작아 관측이 잘 안 된다는 이유로 `유령입자`라고도 한다.
1998년 일본 연구팀이 수퍼카미오칸데 실험에서 세 종류의 중성미자 사이에 서로 변환이 일어남을 발견했다. 그 자체로 물리학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발견이다. 예컨대 뮤온중성미자는 타우중성미자로, 타우중성미자는 전자중성미자로 탈바꿈한다. 한 종류의 중성미자가 다른 종류의 중성미자로 얼마나 많이 변하는지를 나타내는 척도가 `변환상수`다. 중성미자 종류가 셋이므로 세 변환상수가 존재한다. 일본 연구팀 발견 이후 두 변환상수(~100%, ~80%)는 측정이 됐다. 하지만 나머지 하나는 상수 값이 유독 작아 그 동안 측정되지 못했다. 입자물리학의 최대 골칫거리 중의 하나였다.
◇세계적 발견 경쟁 돌입=마지막 변환상수를 측정하기 위해 원자로 부근에서 여러 실험이 시도됐다. 일본은 2조원을 들여 2000년 초부터 가속기를 지어 작년부터 실험을 시작했다. 프랑스는 `더블 슈(Double Chooz)` 검출기, 중국은 `다야 베이(Daya Bay)` 검출기를 2003년부터 짓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지막 상수는 수치가 너무 작아 번번이 측정에 실패했다. 검출기 크기를 키우고 거리를 늘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변환상수 값보다 검출기의 측정 오차가 여전히 컸다. RENO연구팀은 그 해답을 전남 영광원전의 원자로에서 쏟아져 나오는 전자중성미자에서 찾기로 했다. 연구팀은 지난해 8월 116억원을 들여 원자로 중심에서 290m 떨어진 지하와 1380m 떨어진 지하에 각각 중성미자 검출기를 설치했다. 6기의 원자로가 밀집된 영광 원전은 최근 일본 카시와자키 원전이 지진으로 중단된 후 출력 규모가 세계 최대다. 연구 경쟁국인 프랑스(8.7GW)나 중국(11.6GW)보다 중성미자가 많이 배출돼 실험결과를 보기 쉽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먼저 원자로에서 나온 중성미자를 근거리 검출기에서 세고, 원거리 검출기에서는 그 거리를 날아오면서도 계속 변하지 않은 중성미자 숫자를 파악해 변환율을 계산했다.
◇마지막 퍼즐은 10.3%=연구팀은 최근 중성미자의 마지막 남은 상수를 풀었다. 그 답은 10.3%였다. 이 결과는 10억 번에 2번 정도 틀릴 정도로 정확도가 높다. 앞서 지난달 초 중국팀은 변환상수가 9.2%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정확도는 1000만 번에 6회 정도 틀릴 확률이다. RENO연구팀이 3주 정도 늦게 결과를 발표했지만 중국에 비해 정확도 높은 변환상수를 측정했다는 평가다.
마지막 중성미자 변환상수를 확보함에 따라 물리학계는 중성미자 성질은 물론이고 우주를 이루는 기본입자 원리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게 됐다. 중성미자 변환은 곧 질량의 존재를 의미한다. 우주 생성 과정을 설명하는 물리학이론인 표준모형에서는 중성미자의 질량을 0으로 봤다. 하지만 변환상수 규명으로 중성미자의 질량이 밝혀지면서 표준모형을 대체하는 새로운 물리학이론이 대두될 전망이다. 물리학 교과서 한 부분도 다시 쓰게 될 전망이다.
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