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88>

97신규통신사업자 허가(2)

사업권 획득을 위한 경쟁구도는 언제나 이해가 칡덩굴처럼 얽혀 복잡했다. 97통신사업자 허가권 향방에 정치권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국회 상임위에서 의원들은 정보통신부를 상대로 사업권 허가에 대해 따지고 물었다.

이현덕의 정보통신부<88>

1997년 3월 6일 오전 10시.

국회 통신과학기술위원회(위원장 강창희)는 강봉균 정보통신부 장관(재경부 장관 역임. 현 민주통합당 국회의원)과 박성득 차관(현 한국해킹보안협회장) 등 간부들을 출석시킨 가운데 새해 첫 상임위를 열어 정통부 주요 업무계획을 보고받았다.

강봉균 장관의 인사말에 이어 정통부 이성해 기획관리실장(현 큐앤에스 회장)이 97신규통신사업자 허가계획을 보고했다.

“신규통신 사업자는 시내 및 시외전화 각 1개, 주파수공용통신(TRS)은 지난해 신청업체가 탈락했거나 신청자가 없었던 대전과 충남권, 충북권, 전북권, 강원권 4개 지역에 각 1개, 무선호출은 부산과 경남권에 1개, 전기통신회선 설비 임대는 희망지역에 신청할 수 있고 적격 법인은 모두 허가할 방침입니다. 심사는 1차와 2차로 나눠 하며 6개 항목별로 각각 60점 이상을 받아 평균 70점 이상을 얻어야 통과합니다. 2차는 일시출연금으로 심사하되 만약 출연금이 같은 경우 1차 점수 순으로 선정합니다. 심사위원은 대학과 관련 연구기관, 사회단체 등의 전문가들로 신청 업체와 연고가 없는 중립적인 인사들로 구성합니다.”

업무보고가 끝나자 간사 간 합의에 따라 국회의원 질의가 시작됐다. 의원 질의는 제2 시내전화사업자 허가기준과 선정방식, 심사 등에 집중했다.

△하순봉 의원=제2 시내전화사업 투자비가 앞으로 5년 동안 7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는데 만약 시내전화사업자 컨소시엄이 잘못 구성되면 부실화할 우려가 높다. 제2 시내전화사업 부실을 막기 위해 컨소시엄 구성에 다수 기업이 참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래야 재정을 확보할 수 있다. 정통부에서 제2 시내전화사업 부실화 방지를 위해 각계 전문가나 민간의 폭넓은 의견을 수렴한 적이 있는가.

△이부영 의원=초고속망 사업자 선정과 제2 시내전화전화 사업자를 연계하겠다는데 그 방안이 실효성이 있겠나. 나중에 특혜시비로 이어질 수 있지 않나.

△박성범 의원=정통부가 확정한 심사기준 고시안에는 초고속망 사업자와 연계방침과 지역분할방식 우대 조건을 삭제했다. 이유가 무엇인가.

△정호선 의원=신규 통신사업자 선정 시 심사위원 채점표를 제출해서 검증할 생각은 없는가.

△남궁진 의원=제2 시내전화사업은 데이콤을 중심으로 하는 그랜드컨소시엄과 시외전화사업은 온세통신 등 특정업체를 염두에 두고 선정작업을 하는 것이라는 설(說)이 나돈다. 사실인가.

조영장(13·14대 국회의원. 현 밀레니엄인천 회장), 김형오(한나라당 원내대표. 18대 국회의장 역임), 김영환(과기부 장관 역임. 18대 국회지식경제위원장), 장영달 의원 등이 마이크를 잡고 질의를 했으나 내용은 비슷했다. 이날 상임위 분위기는 1996년통신사업자 선정 때와는 사뭇 달랐다.

질의 내용이나 분위기에 긴장감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쟁점 사안이 별로 없었다.

통신사업권 허가업무를 총괄한 서영길 정보통신지원국장(티유미다어 사장 역임. 현 IGM세계경영연구원장)의 회고.

“국회 상임위에서 허가 고시안과 관련해 별 쟁점이 없었습니다. 의원 질의내용도 일반적인 사항들이었습니다. 정통부는 96년 통신사업권 허가를 한 경험이 있었고 논쟁거리는 97사업자허가 기준에 이미 반영해 쟁점이 될 소지를 없앴습니다.”

국내기업들이 가장 눈독을 들인 사업은 제2 시내전화사업권이었다. 재계는 통신시장 개방을 앞두고 마지막 노른자위가 시내 전화사업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제2 시내전화사업을 놓고 대세는 데이콤 주도 컨소시엄이었다. 대기업인 삼성과 현대, 대우, 효성, 금호 등은 데이콤 컨소시엄 구성에 참여키로 결정한 상태였다. 이들은 지분출자와 더불어 시내전화 연고지별 지역사업권을 데이콤 측에 요구했다.

데이콤은 지역분할 요구에 반대했다. 데이콤의 제2 전화사업 추진반장은 기조실장인 조익성 상무(데이콤 전무 역임)였다. 김우한 데이콤 기술본부장(현 행정안전부 정부통합전산센터 운영기획관)은 기술 분야 책임자로 추진반에 참여했다.

조 실장은 3월 6일 오후 기자간담회를 갖고 “시내전화 지역분할은 대기업 간 나눠 먹기 식으로 소수 주주만이 이익을 얻는 반면에 나머지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손해”라면서 “데이콤은 대기업이 요구하는 시내전화의 지역분할을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데이콤은 사전에 정부와 입장을 조율해 이런 방침을 결정했다.

조 실장은 “데이콤은 3월 15일까지 사업제안서 초안을 만들어 데이콤 컨소시엄 참여 희망업체를 대상으로 사업설명회를 열겠다”고 발표했다.

3월 25일 오전 9시 30분.

데이콤은 서울 남대문로 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제2 시내전화사업자 컨소시엄 참여 희망 업체를 대상으로 사업설명회를 열었다. 설명회에는 400여 국내 기업체 대표 및 관계자들이 참석해 대성황을 이뤘다.

데이콤은 이날 1조원 자본금의 컨소시엄을 구성해 사업권을 따내면 오는 2004년까지 교환기와 전송선로, 단말기, 부대설비 등 투자비가 6조60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데이콤은 시내전화 시장은 1가구 2전화 시대에 접어들고 각종 서비스가 늘어나 1996년 3조4000억원 규모에서 2004년에는 11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데이콤은 사업계획서에서 컨소시엄은 300~500개로 구성하고 지분은 주요주주에 40%, 중견 및 중소주주에 각각 30%를 배정하기로 했다. 서비스는 서울과 부산, 인천 등 5개 광역시와 제주 지역에서 우선 시작하고 2001년에 중소도시, 2003년까지 전국 읍·면 지역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시내전화서비스는 음성과 데이터 통신 위주에서 영상전화와 원격교육, 주문형 정보제공, 홈쇼핑 등 수요에 대비해 광케이블과 케이블TV망 무선가입자망으로 고도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때까지 데이콤 주도의 컨소시엄 구성이 대세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튿날인 3월 26일. 데이콤 대세론에 하루 만에 복병이 등장했다.

삼보컴퓨터와 한국전력이 대주주이며 전용회선 임대사업자인 두루넷이 독자 컨소시엄을 구성해 제2 시내전화사업권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두루넷은 국내 최초 고속인터넷서비스업체였다. 제2시내전화 사업권이 데이콤과 두루넷 양자 구도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두루넷은 “자본금은 데이콤의 절반인 5000억원으로 하며 대기업이 관심을 보이는 지역분할에 대해서도 지역본부에 권한을 대폭 위임하겠다”고 밝혔다. 대기업 참여를 이끌기 위해 데이콤과 차별화를 시도한 것이다.

두루넷은 “컨소시엄 구성은 신기술이나 운용기술, 재무능력을 갖춘 기업을 제1 그룹으로 선정해 30% 지분을 배정하고 제2 그룹은 지역연고 영업망을 보유한 기업이나 기간통신사업자, 통신기반시설을 보유한 기업으로 구성해 40% 지분을, 제3 그룹은 케이블TV 영업 기반을 보유한 기업과 유망 중소기업으로 구성해 30% 지분을 배정하겠다”고 밝혔다.

두루넷은 서진구 부사장(코인텍 대표 역임)이 사업추진반장을 맡고 김도진 나래이동통신 상무(두루넷쇼핑 대표이사 역임)가 기술 분야 책임자로 추진반에 합류했다.

두루넷은 4월 2일 오후 2시 서울 인터컨티넨탈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컨소시엄 구성을 위한 사업설명회를 개최했다.

두루넷은 한전과 대기업을 주요주주로 5000억원 규모 자본금으로 사업권을 획득하면 1999년 시내전화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삼보컴퓨터는 두루넷 지분의 10%를, 한국전력은 9.9% 지분을 보유했다.

데이콤과 두루넷은 독자 컨소시엄 구성을 추진하면서도 단일화를 위한 막후협상을 벌였다. 두루넷은 처음 데이콤과 같은 10% 지분을 요구했으나 데이콤은 이를 거부했다.

데이콤은 4월 4일 자사 컨소시엄 구성에 참여를 희망하는 업체 선청을 마감했다. 집계 결과 삼성과 현대, 대우, 한화, 일진 등 대기업과 SK텔레콤, 온세통신 등 기간통신사업자와 성미전자, 핸디소프트, 텔슨전자 등 중견 중소기업 등 400여개 업체가 신청했다.

데이콤은 4월 10일까지 컨소시엄 구성을 완료했다. 이어 11일부터 15일까지 참여기업들과 지분에 관한 합작투자계약을 체결했다. 데이콤과 두루넷은 루비콘강을 건넌 셈이었다.

4월 30일 오후.

일반의 예상을 깨고 반전 드라마가 연출됐다. 독자 컨소시엄 구성을 추진했던 두루넷과 데이콤이 외나무 줄다리기 협상에서 막판에 지분배정에 합의점을 찾아 동반자가 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두루넷 이용태 회장(삼보컴퓨터 회장 역임)의 최근 증언. 그는 당시 시내전화 경쟁구도는 잘못이었다고 말했다.

“제2 시내전화사업자 허가는 잘한 통신정책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당시 한국통신(현 KT)은 서비스나 통화품질, 통신료 등에서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경쟁서비스를 도입한다고 해서 소비자에게 별 이익이 없었어요. 두루넷이 독자 컨소시엄 구성을 추진하다 데이콤 컨소시엄에 참여하면서도 걱정이 많았어요. 그게 나중에 현실이 됐어요. 한국전력이 통신사업을 한다고 하면서 결국 두루넷은 망했습니다.”

곽치영 데이콤 사장(16대 국회의원. 한국위치정보 회장 역임)의 당시 회고.

“국가적 차원에서 제2 시내전화사업이 제대로 추진되려면 자가통신망을 보유한 한국전력 역할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데이콤은 두루넷과 한국전력에 공동 제2주주 지분으로 7%씩을 각각 배정했다. 이에 따라 컨소시엄 주요 주주사 지분은 데이콤이 10%, 한전과 두루넷이 7%, 삼성과 현대, 대우, SK텔레콤이 6%씩이었다.

데이콤은 신규통신사업자 마감일인 이날 오후 늦게 전체 지분의 48%를 차지한 7개 주요주주사를 포함해 모두 444개 주주사로 컨소시엄을 구성, `하나로통신(가칭)`이라는 법인으로 정통부에 시내전화사업허가를 신청했다. 단독이어서 사실상 사업권을 획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시로서는 행복한 순간이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