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효율향상으로 발전소 대체 한다

“소비구조에서는 가격이 싼 전기 사용을 늘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문제는 전기 사용을 부추기는 가격 구조입니다. 왜곡된 에너지 가격 구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수요관리를 할 수 없습니다.”

에너지 효율향상으로 발전소 대체 한다

전자신문은 지난 12일 서울 녹색성장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에너지 수요관리 및 이행점검` 좌담회를 열고 에너지 수요관리 정책 추진을 위한 정부와 업계 전문가 의견을 수렴했다.

우리나라 에너지 효율의 반성과 산업·민간 부문 에너지 효율 향상에 필요한 제도 개선을 주장하는 전문가 목소리가 이어졌다. 제5의 에너지로 불리는 `에너지 효율`만으로도 현재 직면한 에너지 위기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는 데 뜻을 같이 했다. 특히 왜곡된 에너지 가격에는 참석자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왜곡된 가격 구조 개선을 주장했다.

전력요금 누진제도와 산업·가정·농업용 등 용도별 차등 요금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에너지 가격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소외 계층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에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의견도 시선을 모았다.

참석자(가나다순)

문승일 서울대학교 전기공학부 교수

유복환 녹색성장위원회 녹색성장기획단장

은종환 에코시안 사장

임재규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조동우 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허증수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

사회=김동석 전자신문 그린데일리 부장

◇사회(김동석 전자신문 그린데일리 부장)=효과적 온실가스 절감 방안으로 에너지 효율 향상과 절약이 부각되고 있다. 왜 공급 위주에서 수요관리 중심으로 에너지 정책 무게중심이 이동하는지 이해가 선행돼야 할 것 같다.

◇유복환 녹색성장위원회 녹색성장기획단장=에너지 절약과 효율 향상은 불, 화석연료, 원자력, 신재생에너지를 넘어 미래를 좌우하는 제5의 에너지다. 기후변화에 효과적인 온실가스 감축 수단으로서 중요성이 부각됐다.

현재 세계 각국은 에너지 수요관리로 정책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1970년대 오일 쇼크를 겪으면서 안정적 공급 위주 에너지 정책을 추진해 오다 최근 들어 급증하는 에너지 수요의 관리 중요성을 인식했다. 앞으로 에너지를 절약하고 효율을 향상할 수 있는 지속적 정책 노력과 자발적 민간 참여를 유도하는 제도 여건과 의식 변화가 요구된다.

◇허증수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에너지 절약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효율성과 경제성 관점에서 정책 방향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소비자는 스스로 절약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 에너지 소비와 국민소득의 상관관계도 있다. 경제성장도 고려하면서 효율적으로 접근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임재규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그동안 석유, 가스 등 에너지원별 공급정책에 초점을 맞췄다. 최근 정부가 수요관리 인식을 확대하고 강화하는 추세다. 제품 에너지 효율 기준을 강화하거나 자발적 산업계 참여를 위해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있다. 규제 중심에서 규제와 유인이 효과적으로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 정책 방향이다.

◇사회=대기업 수요관리 제도와 지원책은 구체적으로 무엇이 있나.

◇임재규=에너지목표관리제도를 예로 들 수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강력한 규제다. 산업계 효율 향상에 상당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허증수=그동안 우리나라 에너지 효율은 공급관리 정책이 대부분이었다. 수요관리는 용어만 있었지 실질적 정책은 없었다. 수요관리를 하려면 예산과 인력이 있어야 하는데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9·15 정전사태로 수요관리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모였지만 체계가 구축된 것은 아니다. 연구개발(R&D) 체계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수요관리에 필요한 R&D가 아니라 학계 등 연구자를 위한 형식적 R&D가 많았다. 목표관리제도 또한 누가, 어떻게 추진할지 액션플랜이 없다.

◇사회=우리나라 에너지 효율은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정부와 전력업계는 왜곡된 가격구조에서 비롯됐다고 말하고 있다.

◇허증수=효율을 말하려면 에너지원별 단위를 봐야 한다. 산업계는 제품 생산에 들어가는 단위에너지를 예로 들며 경쟁력이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부가가치 원단위를 보면 세계에서 가장 높다. 산업구조에서 제조업 비중이 높은 것이 이유다. 산업 공정상 효율은 높지만 조명·운송 등 외적인 부분에서 절약할 여지가 여전하다. 전기요금이 싸니까 감당할 수 있다는 생각인 것이다. 숨어 있는 에너지 절약 요소가 많다는 것은 동계 피크 때 추진한 사업장 10% 의무 감축이 성공적으로 이행됐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문승일 서울대학교 전기공학부 교수=에너지 절약 기술은 세계 수준에 도달했다. 문제는 제도적 허점이다. 특히 전기요금에 결집돼 있다. 지난 10년간 에너지소비량을 보면 매년 2.7%씩 증가했다.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전력사용량은 10년간 5.3% 증가했다. 이런 추세에 맞춰 발전설비를 늘려 나갈 수 없다. 1984년 ㎾h당 67원이었던 전기요금은 2008년에도 89원에 머물렀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전력소비량이 일본, 프랑스 국민보다 더 많다. 공급 위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우리나라 전력수요는 포화돼서 내려가야 하는 상황인데 반대로 올라가고 있다. 전기는 가장 고품질의 에너지원이다. 열이 한강물이면 전기는 생수다. 생수가 한강물보다 싼 것이 지금 상황이다. 가격 시그널 문제다. 난방비를 줄이기 위해 전기히터를 도입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효과적 수요관리를 기대할 수 없다.

◇사회=결국 전력요금 현실화는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하지만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지가 문제 아닌가.

◇문승일=정치와 정책의 문제다. 정부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 물가도 민감하지만 전력요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국가적 위기가 발생한다면 우선 순위는 분명해진다. 국민도 앞선 생각을 갖고 있다. 한 달 전 중앙선관위 설문 조사 결과 원전을 없애고 신재생에너지를 도입했을 때 전기요금을 더 부담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절반 이상이 10% 정도 인상은 받아들일 수 있다고 답했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원가 연동제를 도입해 자동적으로 가격을 반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조동우 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건물을 예로 들면 열에너지는 감소하고 있지만 전기소비는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가격 메커니즘을 활용한 절약이 필요하다. 다만 소득상황에 따른 배려가 필요하다. 가격을 현실화하되 저소득 계층을 고려한 정책이 필요하다.

◇사회=가격 현실화 문제는 수요관리 핵심이다. 문제점을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은종환 에코시안 사장=가격 현실화에 동의한다. 신재생에너지의무할당제(RPS)에 대응하기엔 전력요금이 너무 낮다는 게 관련업계 목소리다.

◇임재규=요금 현실화에 동의한다.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요금 체계가 문제다. 주택·일반·산업·농어촌용 등 용도별 가격이 비합리적이다. 필요 없는 분야에서 싸게 쓰고 필요한 곳에서 비싸게 쓴다. 실제로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산업계가 전력요금 현실화로 받을 파급효과도 생각해야 한다.

◇사회=에너지 가격 현실화가 이뤄진다면 에너지 취약계층과 중소기업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조동우=에너지 취약계층은 에너지비용이 가구 전체 지출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가구를 말한다. 전체 가구의 8%, 120만가구 정도로 추산한다. 한 가지 예를 들겠다. 정부가 취약계층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저소득층 에너지지원사업에 194억원을 투입해 2만가구의 단열성능을 개선했다.

사업성과를 높이기 위해 검증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시공 전과 후를 비교했는데 가구당 100만원을 지원하는데 17% 개선 효과가 발생했다. 금액으로는 연간 30만원을 줄일 수 있다.

문제는 지원금액이 적어 제대로 된 사업을 진행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100만원을 투자해 1년에 30만원을 회수한다면 4년 정도면 투자비 회수가 가능하다. 건물 수명과 비교하면 짧은 기간이다. 국가 에너지 효율 측면에서도 사회복지 차원에서도 이익이다.

◇허증수=저소득층 에너지 지원과 관련해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 연탄이 대표적이다. 저소득층을 지원한다는 명목 하에 원가보다 싸게 팔고 있다. 이익을 보는 것은 연탄을 사용하는 자영업자다. 원가를 받고 난 후 취약계층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사후관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승일=요금체계 왜곡의 전형이 전기요금이다. 현재 요금체계로 이익을 보는 것은 국민이 아니라 기업이다. 국가 전체 전력 사용현황을 보면 주택 부문에서 1300만가구가 14%를 쓴다. 산업용은 35만개 사업장이 55%를 사용한다.

한 달에 7000원 이하 요금을 내는 곳이 300만여가구다. 이런 사람들에게 전기를 아끼라고 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 최저 인건비보다 더 낮게 돈을 주면 인력 착취라는 소리를 듣는다. 현재 전기요금은 과격하게 말하면 착취구조다.

◇임재규=생각이 다르다. 용도별 요금제를 보면 산업용이 원가 회수율이 높다. 원가 회수가 안 되는 것은 주택용, 농사용, 교육용이다. 산업용이 싸다고 하는 것은 오해다. 주택용 누진제를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 우리나라는 1인가구가 많다. 초기 누진단계에서 원룸 등 소규모 가구가 혜택을 본다. 취약계층이 볼 혜택이 다른 곳으로 돌아간다. 현재 6단계 누진체계를 3~4단계로 줄여야 한다.

◇사회=녹색산업 창출이라는 관점에서 수요관리제도에 따른 컨설팅 시장이 생겨나고 있다. 국내 컨설팅 시장 규모와 향후 시장전망은 어떤가.

◇은종환=산업계의 전력요금 인상 대응이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과거 설비교체 등 하드웨어 투자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에너지를 감시·관리하는 경영시스템을 구축하는 투자가 늘고 있다.

기업별 환경을 보면 대기업 에너지 효율 향상 여건은 괜찮지만 중소기업은 열악하다. 규제보다 인센티브로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 정책을 보아도 중소기업이 에너지 감축을 추진하면 인센티브를 준다. 대·중소기업 협력 프로그램 등 서플라인 체인상에서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방안 등이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컨설팅 시장은 10년 사이 빠르게 성장했다. 현재 50여개 기업이 활동하고 있다. 해외사업 비전이 크다. 중국, 동남아시아에 진출해 컨설팅을 하는 경우가 많다. 녹색산업 수출모델로도 손색이 없다.

◇사회=에너지 수요관리 정책을 만들고 있는 녹색위의 정책방향과 개선사항이 있다면.

◇유복환=정부도 다양한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2일 보고대회에서 에너지수요관리제도 보완점을 파악했다. 고효율 인프라 확충 방안도 짚고 넘어갔다. 에너지수요관리 체계에 대해 말하자면 국가차원의 종합적 대책이 필요하다. 전기·석유·가스 등 원별로 구분할 것이 아니라 통합적 수요관리를 해야 한다. 전반적인 가격체계, 대체재 간 비교 등을 고려하고 생활과 밀접한 부문은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지방 정부가 참여하는 수요관리정책이 필요하다.

에너지 절약이 국민 실생활과 닿아 있지 않은데 교육과 홍보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리=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