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엔젤 투자와 제2의 창업 붐

“포스코·삼성·현대 등 이름 있는 대기업 치고 엔젤 투자 하겠다고 연락 안 온 데가 없어요.” 한 엔젤 투자자가 대기업 벤처 투자 열기를 전했다. 제2 창업 붐이라 불릴 만큼 창업 열기가 뜨겁다. 정부 청년 일자리 창출 목표와 함께 스타트업 기업을 위한 자금이 중소기업청 700억원, 아산나눔재단 1000억원 등 대규모로 풀리고 있다.

하지만 벤처기업과 투자자 중에는 2000년대 초반 `닷컴 붐`이 일던 때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눈먼 돈을 좇아 돈이 몰리던 그때처럼 붐이 꺼지고 나면 다시 벤처 가뭄에 시달릴 수 있다는 우려다.

당시엔 우후죽순 생긴 벤처를 검증해줄 만한 공신력 있는 기관이 없었고 엔젤 투자자의 기대가 실제보다 높았다. 10여년이 흐른 지금, 벤처 기술이나 서비스 검증 능력은 많이 향상됐다. 최근 창업 지원 프로그램은 종잣돈만 제공하고 일정 성과를 본 후에 실제 투자에 나서는 사례가 많다. 심사역도 그동안 쌓인 노하우가 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건 엔젤 투자자 기대만큼 투자금이 회수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높은 위험성을 감수하고라도 투자에 나서는 엔젤 투자자가 빠져나올 중간 회수 시장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제3 주식시장(KONEX)도 코스닥 전례에 비춰볼 때 성공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특히 기업공개(IPO)가 주된 회수 시장으로 기능하는 국내 상황에서 엔젤 투자자는 꼬박 평균 12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활발한 인수합병(M&A)으로 빠르면 1∼2년 안에도 투자금을 회수하는 미국 실리콘밸리와 차이가 크다. 페이스북은 창업한 지 2년 된 인스타그램을 10억달러에 인수했다. 리빙소셜은 설립한 지 만 1년 된 스타트업 기업 티켓몬스터를 인수했다.

벤처가 활성화하고 전 산업에 자양분이 되기 위한 대기업의 역할은 엔젤 투자에 직접 뛰어드는 것보다 적정한 M&A로 기술 발전과 기업 발전을 함께 도모하는 것이다. 핵심 인력 빼가기, 기술 탈취 등 지금까지 대기업에 드리웠던 오명을 씻을 기회다.

오은지 벤처과학부 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