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상돈의 인사이트]대통령을 보면 과학 미래가 보인다](https://img.etnews.com/cms/uploadfiles/afieldfile/2012/04/18/271109_20120418161350_470_0001.jpg)
4월은 과학의 달, 21일은 과학의 날이다. 올해로 벌써 45회째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출발은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설립부터다. KIST 출범은 1965년 5월 박정희 대통령의 미국 방문이 촉매제가 됐다. 당시 미 백악관이 박 대통령을 정상회담 파트너로 초청한 것은 베트남 파병 보답의 성격이 강했다. 미국은 과학기술 도입과 경제 원조를 원하는 한국의 입장을 충분히 들어줄 준비가 돼 있었다. 초대 KIST 원장을 지낸 고 최형섭 박사는 “박 대통령은 당시 백악관 과학기술담당 고문인 호닉 박사에게 자문을 구했다. 호닉 박사가 공과대학을 만드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는데 박 대통령이 간곡히 과학기술연구소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고 회고했다.
한미 정상회담 후 9개월 만인 1966년 2월, KIST는 서울 종로5가 조그만 빌딩 사무실에서 출범했다. 그리고 한 해 뒤인 1967년에는 과학기술 정책 진흥 전문 부처로 과학기술처가 만들어졌다. 박 대통령은 경제성장이 과학기술에서 출발한다는 확고부동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KIST를 수시로 방문해 과학기술에 남다른 애정을 과시했다. `KIST 40년사`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1967년에 두 번, 1968년에 세 번, 1969년부터 1971년까지 매년 두 번씩 KIST를 방문했다. 이때마다 전산실을 직접 방문해 컴퓨터가 작동하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했다고 한다. 그래서 박 대통령은 오늘날 중견, 원로 과학자들에게 과학기술 발전의 본질을 진정으로 이해했던 `통치자`로 기억된다. 과학기술계 인사들은 이때를 한국 과학기술의 르네상스 시대라 부른다.
1990년대 `과학기술 입국`을 선언한 김영삼 대통령도 우주개발을 포함한 과학기술 장기발전계획을 수립하는 등 과기 선진국을 향한 강력한 의지를 비쳤다. 실제로 재임기간 동안 고등과학원·광주과학기술원·아태이론물리센터 등을 설립했다. 김대중 대통령 역시 과학기술처를 과학기술부로 승격하고 국가과학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과학기술을 중시했다. 연구개발비도 크게 늘렸다. 기술이사회 제도를 도입해 연구소들이 행정 간섭을 받지 않도록 했다. 과학기술기본법과 벤처특별법을 제정해 기술 집약적 벤처기업을 육성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업적이다.
과학기술에 대한 애정 순위에서 둘째라면 서러워할 사람이 노무현 대통령이다.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 신설과 이공계 우대, 연구개발 투자 증액, 연구중심제(PBS) 및 인센티브 개선 등 과학기술 관련 공약을 무더기로 쏟아냈다. 당시로선 모두가 파격이었다. 대통령 취임 후 그는 대부분의 약속을 지켰다. 한 술 더 떠 과기부총리제를 도입할 만큼 노 대통령은 과학기술 부문에 전폭적 지지를 보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명박 정부는 4년 전 출범과 함께 교육인적자원부와 과학기술부를 통합해 교육과학기술부를 만들었다. 그런데 과학기술 정책은 교육 이슈에 밀려 찬밥 신세다. 조직은 고사(枯死) 위기에 놓였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새로 출범했지만 정책 기능 없이 조정권만 있어 도무지 힘이 실리지 않는다.
정확히 50년 전, 경제기획원 새해 업무보고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며 장관에게 과학기술 문제까지 고려했는지 따졌다. 대통령의 그 질문 `한마디`가 과학기술 개발계획 수립으로 이어지고 경제 성장을 일구는 기폭제가 됐다. 이후 우리 대통령들은 `과학입국`이라는 슬로건 아래 과학기술을 선진국 도약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과학기술은 국가 지도자의 관심을 먹고 자란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대통령의 과학관(觀)을 보면 과학기술 발전상이 보인다`고 말한다.
주상돈 벤처경제총괄 부국장 sd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