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혁신의 대명사로 불린 일본 기업이 요즘 휘청거린다. 간판 전자 업체들이 하나둘 몰락하고 있다. 우리 기업의 나침반 역할을 했던 소니마저 최근 창사 이래 최악의 적자를 기록하고 1만명 대량 감원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아마도 기술 만능 사고에 젖어 시대 변화를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먹고사는 기술`에서 `즐기는 기술`로 사람들의 관심이 옮겨갔는데 말이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미국 경제 위상이 흔들리고 글로벌 파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특이한 것은 국가 경쟁력을 복원하기 위해 미 정부와 의회가 해법으로 들고 나온 것이 바로 융합교육정책, 일명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교육이라는 점이다. 융합형 인재를 키워 경쟁력 유지에 필요한 혁신을 주도하자는 것이다. 미 정부는 STEM교육 5개년 전략계획을 수립하고 올해에만 무려 3조7000억여원의 재정을 지원하기로 했다.
융합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먼저 눈뜨게 한 것은 정부보다 비영리단체 활동이다.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TED강연이다. 기술(Technology),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디자인(Design)을 의미하는 TED는 기술·예술·감성이 어우러진 멋진 강연회로 청중을 감동시킨다. 애플 성공에서 보듯이 세상의 진정한 변화는 혁신적 기술만이 아니라 기술과 감성이 만나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고 기술 잠재력을 꿰뚫어보는 힘, 즉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미국이 STEM교육에 몰두하는 것은 이제 막 시작된 융합시대의 글로벌 인재 경쟁에서 절대 우위를 차지하려는 국가적 포석으로 보인다. 유럽연합(EU)과 일본도 융합교육에 큰 관심을 보이는 등 선진국이 앞다퉈 인재양성으로 미래 과학강국을 준비한다.
우리 정부도 STEM교육을 교육 혁신의 대표 정책으로 펼친다. 기존 STEM 영역인 과학·기술·공학·수학에 예술(Art) 영역을 접목한 스팀(STEAM)교육이 교실 풍경을 바꾸고 있다.
스팀교육의 핵심은 부담스럽게 느낄 수 있는 과학이나 수학을 다양한 과목과 연계해 아이들에게 흥미와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수학에 가진 일반적인 인식은 `어렵고, 여학생들이 특히 싫어하고, 공식을 많이 외워야 한다`는 것이다. 수학이 기피 과목이 된 이유는 `공식을 달달 외워서 문제를 풀어야 하는 방식`으로 어렵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스팀교육으로 다른 과목과 연결하고 실생활에 접목해 재미있게 배우면 수학에 대한 아이들의 인식은 바뀔 수 있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화가 김홍도의 작품인 `씨름` 속 등장인물 구도에 숨어 있는 수학의 비밀을 찾아내는 방식 등으로 수업을 이끌면 아이들 눈빛은 달라진다.
스팀교육을 통한 융합인재 양성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미래 일자리와 관련돼서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현존하는 직업의 80%가 10년 이내에 소멸하거나 진화한다. 세계적으로 청년 실업이 사회적 문제가 되지만 스팀 영역인 과학기술 융합분야 산업체는 심각한 구인난을 겪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초·중·고교뿐 아니라 대학 단계까지 교과과정 개편이 필요하다. 아울러 이들을 교육할 스팀 교사 양성에 주력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올해 스팀 교사 1만명을 양성하는 것은 학교 현장의 변화에 중요한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과학기술은 국가 미래와 직결된다. 우리 아이들이 과학을 즐겁게 공부할 때 창의적인 생각이 쑥쑥 자라고 아이의 꿈 하나가 더 생긴다. 그것이 우리 미래의 힘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강혜련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hrkang@kofa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