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포커스]여름피크 대비 발전소 계획예방정비 구슬땀

꽃샘추위가 지나고 초여름 날씨를 방불케 하는 완연한 봄이다. 전력사용량이 가장 적은 시기인 지금은 발전회사들의 주요 임무인 전력공급의 무게도 그만큼 가벼워진다. 몇몇 발전소들은 가동을 멈추고 잠시나마 휴식기간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수치상으로 전체 전력공급량이 적은 것과 달리 발전소 내부는 이맘때가 가장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겨울철 쉬지 않고 작동한 발전소를 종합 진단하기 위해 정비 인력들이 총동원돼 설비들을 분해 조립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약 40여일간의 기간 동안 동원되는 인력만도 1000여명이다. 신규 발전소 건설을 제외하면 발전소에서 진행되는 가장 큰 규모의 작업인 계획예방정비 현장을 찾아갔다.

서부발전 태안화력본부 직원들이 터빈 메인밸브의 히팅볼트를 조이고 있다.
서부발전 태안화력본부 직원들이 터빈 메인밸브의 히팅볼트를 조이고 있다.

희뿌연 안개가 자욱한 23일 아침 태안발전본부를 찾았다. 50만㎾급 발전기 8기를 가동, 총 400만㎾의 설비규모를 갖추고 있는 이곳은 2015년 석탄가스화복합화력(IGCC)과 2016년 9·10호기를 준공하면 국내 화력발전소에 중에서 가장 많은 용량을 확보하게 될 발전소다.

지금은 2호기와 5호기가 계획예방정비 작업에 들어갔다. 태안발전본부의 첫 인상으로는 두기의 발전소가 정비 중이라는 사실을 체감할 수 없었다. 발전소 내부에 들어서자 바닥에 줄을 선 듯 늘어져 있는 장비들, 설비 중간 중간 걸려있는 가림막, 붉은색과 노란색의 안전펜스, 공구를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인부들의 모습을 보고나서야 정비 작업이 한창임을 알 수 있었다.

터빈실을 올라서자 터빈과 주변설비의 속살이 눈에 들어왔다. 수많은 부품들과 검은 기름때가 가득한 설비들은 모두 설명을 들으려면 일주일도 부족해 보였다. 컨테이너로 만든 임시 사무소와 터빈 주위에 펜스를 둘러 꾸민 정비 작업실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 정비가 단순하지 않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발전소 계획예방정비는 사람으로 치면 종합검진과 같다. 유연탄 미분기에서부터 보일러·터빈·급수 순환계통·펌프·전동기·밸브·튜브 등 기계설비에서의 점검 포인트만도 수천가지다. 전기설비와 계측제어설비까지 발전소의 근육계통과 신경계통을 모두 아우르는 작업을 40여일만에 끝마쳐야 하는 전쟁 같은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태안 5호기는 계획예방정비 마무리 단계로 보일러 부분 튜브 수질개선 작업과 수압시험을 병행하고 있었다. 발전소의 혈관이라고 할 수 있는 튜브를 청소하고 내구성을 알아보는 작업이다. 수압시험이 무사히 마무리되면 터빈 시운전 등 최종단계로 넘어갈 수 있지만 문제가 발생하면 전면 재점검과 보강·교체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한 달 반 가량의 정비일정이 두 달 이상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 시험 화면을 바라보는 작업자 눈에 경고알람이 울리지 않기만을 바라는 간절함이 묻어났다.

홍광수 태안발전본부 지역협력팀 차장은 “정비 마무리 단계에서 이상이 발생하면 일정이 두 달을 넘기기 십상”이라며 “가동일수 감소로 수익성 타격도 문제지만 다른 발전소 정비 일정에도 차질을 생길 수 있는 만큼 처음부터 철저히 정비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악의 작업환경은 정비기간 동안 엔지니어를 괴롭히는 최대 요인이다. 일반인들이 발전소 내부에서 땀을 흘리는 데 필요한 시간은 가만히 있어도 10분 정도면 충분하다. 여기에 두툼한 작업복과 장갑, 작업화와 안전모는 체감온도를 더욱 높게 한다. 그나마 아직까지는 날이 선선해서 참을만한 상황이지만 기상청의 초여름 무더위 소식은 야속하기만 하다. 일정한 크기로 계속 울리는 기계소음은 심적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소음을 신경 쓰지 않고 작업에 집중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 방법이다. 하지만 발전소를 나와서까지 윙윙거리는 이명 현상은 스스로 청력이상을 걱정하게 했다.

숙식 여건도 좋은 편이 아니다. 정비인력들은 협력회사 직원들이 대부분이다. 한 달간 출장 형태로 태안발전본부 정비 작업에 참여하는 만큼 별도로 숙식을 해결해야 한다. 태안발전본부 정비원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숙박시설은 인근 휴양지의 펜션이다. 휴가의 여유를 느끼기 위해 만들어진 펜션에서 이들은 하루의 고단함을 풀고 있다. 식사는 주로 구내식당을 이용하지만 작업이 길어질 경우 제때 식사를 못하는 일도 다반사다.

여러 어려움 중에서도 작업자를 가장 압박하는 것은 부상에 대한 두려움이다. 부속설비 무게만도 수톤에 달하는 중장비를 다루다보니 잠깐의 실수가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정비 공구들도 주위를 기울이지 않으면 부상 위험이 있는 것들이 다수다. 15층 높이의 보일러 내부 작업은 작업대를 쌓는 데만도 며칠이 걸린다. 외부인이 보기에도 아찔한 작업들이 많다 보니 몇몇은 본인이 하는 일이 가족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는 경우도 있다.

우려스러운 건 여러 위험과 불편을 감수하고 하는 일이다 보니 후임자들이 쉽사리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발전업계에도 3D 업종 기피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박승식 태안발전본부 2호기 기계팀 차장은 “정비는 기술적으로 점검 단계를 건너뛰고 앞당길 수 있는 것이 아닌 작업자가 손수 확인해야 하는 인력기반 작업”이라며 “지금도 인력 스케줄 조정에 상당히 애를 먹고 있어 인력 풀 확충을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호기 터빈실을 나오는 도중 순환펌프를 정비 중인 엔지니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시간은 12시 20분 한창 점심식사를 할 때이지만 작업이 늦어서인지 볼트를 조이는 작업에 매달려 있었다. 안전모 안에서 땀이 흘러내리자 기름낀 장갑으로 연신 눈 주위를 훔쳐내는 모습은 정비작업이 익숙함 아닌 사명감으로 버텨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인터뷰박스/윤상철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장

“발전소 정비는 시간과 비용, 그리고 안정성의 삼박자가 정확히 지켜져야 합니다. 무엇 하나 틀어져서도 안 됩니다.”

윤상철 태안발전본부장은 발전소를 사람에 비유한다. 사람이 어디 한 곳이 아프면 생채리듬이 무너지듯 발전소 설비 하나의 고장이 전체 계통의 문제로 확산된다는 의미다. 급탄기가 고장 나면 연료수급이 안되고 순환계통이 고장 나면 증기발생과 냉각에 문제가 발생한다. 굳이 터빈과 보일러·발전기와 같은 주요 설비 고장이 아니더라도 발전소는 멈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윤 본부장은 “운영과 정비를 동시에 해야 하는 만큼 정비를 전담하는 협력사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며 “과거와는 달리 탈황·탈질설비 같은 정비 포인트가 늘어난 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는 저열량탄 혼합연소를 위한 안정성에 신경을 쓰고 있다. 지난해 유연탄 가격이 상승하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저열량탄의 사용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윤 본부장은 “발전소 정비는 사람이 직접 눈으로 하나하나 확인하는 원시적인 방법을 동원하지만 상식의 수준을 넘어서는 고도의 기술이 사용되는 작업”이라며 “수만개의 설비가 전력공급이라는 목표에 조화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완벽함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태안(충남)=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