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경험도 인력도 없었지만 우리 스스로 철저한 파악과 끊임없는 학습으로 혁신 모델을 만들어 왔습니다.”
휴맥스가 첫 직장인 이용훈 혁신실 상무는 오랜 기간 개발과 영업 업무를 맡아오다 2005년부터 혁신실을 이끌게 된 남다른 이력의 소유자다. 당시는 휴맥스가 글로벌 사업을 빠르게 확장하던 시기로 `벤처를 키운 열정` 이상의 근본적 처방이 필요하다는 위기감이 혁신실 출범 배경이었다.
휴맥스 창사 이래 처음 만들어진 혁신실을 `혁신` 업무라고는 처음인 이 상무가 이끌게 된 셈이다.
이후 시작된 이 상무의 혁신 스토리는 휴맥스의 근본 체질을 바꿔 놓으면서 7년이 지난 지금 많은 기업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이 상무는 “급하게 성과를 얻기 위해 작은 규모의 다양한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이 기업이 혁신 과정에서 가장 많이 범하는 오류”라며 “혁신은 오랜 기간 성과를 내지 않다가 어느 순간 이후 회사를 크게 성장시키는 힘이 된다”고 소신을 밝혔다.
◇세계적 혁신 이론 흡수…품질 혁신 시동=“혁신에 관해 보고 들은 적도 아이디어조차 없었고 무엇을 해야 할지 주제부터 찾아 나섰다”는 이 상무는 세계적 경영 및 혁신 이론을 습득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첫 화두로 삼은 것은 `품질`이다. 제품에서 확장해 일하는 수준 자체를 범주로 삼았다.
국내외 품질 경영 이론을 독파한 이 상무는 세계 시장에서 품질로 승부하는 휴맥스의 실전 개발 프로세스 개선 작업을 시작했다. 이 상무는 “우리끼리 답을 찾아보자는 심정으로 책 속에서 품질 경영 방향을 잡기 시작했고 모든 업무의 시작인 개발 초기 단계부터 바꿔 나갔다”고 말했다.
품질을 결정하는 개발 초기 단계를 `앞단품질`이라 자체 정의하고 소비자 요구 사항 수렴 방식부터 바꿨다. 개발 완료, 즉 초기 생산 이후에야 따지던 품질을 개발 초기부터 챙길 수 있도록 했다. 분리돼 있던 개발과 품질 테스트 과정을 하나로 결합한 것이다.
이 상무는 “영업 단계에서 사용자 요구를 무조건 승인하지 않고 해당 요구의 정합성과 합리성부터 검증하기 시작한 것”이라며 “개발 착수 시 개발과 품질 인력이 같이 작업하도록 하는 등 중간 결과물 품질 검증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셋톱박스에 탑재되는 다양한 소프트웨어 개발에도 초기 단계부터 품질을 보증할 수 있는 과정과 방법론을 더했다.
개발 속도가 느려질 것이라 우려한 사람들의 예측은 빗나갔다. 결과적으로 이 방식은 초기 오류를 줄이면서 개발 기간을 단축시켰다. 이 상무는 “2006년엔 개발 계획 이후 개발 기간이 60% 이상 더 소요됐다면 지금은 평균 15% 오차에 불과하다”면서 “앞단품질이 시간과 비용을 좌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갑자기 개발 일정이 늦어지거나 기술적 어려움에 막히는 경우를 우려해 경영진이 불안을 느끼는 일도 급격히 줄었다.
이 상무가 `앞단품질`과 더불어 중요하게 여긴 것은 지식 재사용 역량이다. 개발 관련 지식이 공유되면서 축적될 수 있도록 하고 2007년엔 제품데이터관리(PDM) 시스템 구축으로 효과를 높였다.
◇`계획-공급` 동시 혁신…SCM 파격=이 상무가 품질 혁신과 함께 신경 쓴 부분은 바로 공급망관리(SCM) 혁신이다. 하나의 셋톱박스에 약 200개 이상의 부품이 탑재되는 휴맥스의 SCM은 자재 수급이 관건이었다. 이를 위해 기존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계획-실행의 동기화`를 최우선 삼아 문제와 추진 과정을 눈에 보이도록 하는 데 집중했다.
이 상무는 “많은 부품이 일정한 시간에 준비가 돼야 생산에 차질이 없는데 하루에도 수십개씩 발생하는 생산계획 중 하나에 문제가 생기면 또 다른 계획에 영향을 미치고 계획 변동의 여파를 아무도 몰랐다”고 회고했다.
판매 부문은 “자재 입고 계획이 불투명하다”고 토로하고 생산 부문은 “판매 계획이 불투명하니 자재 구매를 못하겠다”고 했던 것이다. 이 상무는 양측 입장을 조율해 나가고 확정할 수 있는 틀을 만들기 시작했다. 판매 부문에서는 실제 팔 물량을, 생산 부문은 실제 생산할 물량만을 시스템에 입력하도록 하며 확정된 계획의 차이점을 분석했다. 주 단위로 판매와 생산을 조율하는 판매생산계획(S&OP) 회의로 자재 구매 등을 확정시켰다.
결과는 자재 업체들이 먼저 느꼈다. 이 상무는 “휴맥스 생산계획 정확도가 높아지면서 자연히 자재업체에 통보하는 자재 구매 계획 정확도가 급상승해 자재 업체들이 더 정확히 납품을 할 수 있게 되는 등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면서 “자재 조달 가능 파악 역량도 매우 높아져 향후 16주를 내다본다”고 말했다.
SCM 혁신 시 계획과 실행 어느 한 가지만 좋아져서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것이 이 상무의 생각이다. 이 상무는 “한쪽만 먼저 개선하게 되면 불균형으로 결국 성과를 내기 어렵게 되며 계획, 구매, 생산 및 판매, 물류 등 전 부문이 하나가 돼 동시에 문제점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시스템·프로세스 아닌 `마음`을 움직여야=이 상무는 자칭 변화관리 매니저다. 프로세스 개선과 시스템 구축보다 직원이 즐겁게 혁신활동에 임할 수 있는 동기부여에 집중한다는 의미다. 각종 심리학과 철학 이론을 독파하면서 임직원 스스로 혁신의 주인이 되도록 하는 방안에 골몰한다.
이 상무는 “해당 임직원마다 강제 혹은 자발적 동의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다른데 직원마다 특성을 파악해 접근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 곧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정당성을 충분히 설명해 논리로 이해토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수년간을 문화 조성에 먼저 힘쓴 이후 2008년부터 핵심성과지표(KPI)를 만들고 2009년 이후에야 자체 SCM 시스템 구축 등에 나선 것도 이같은 기조에서다. 이 상무는 “구매·생산 등 모든 업무 현황을 눈에 보이도록 하는 것 자체도 중요한 동기”라면서 “문화가 미성숙한 상황에서 숫자 지표를 강제적인 인사 잣대로 활용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고객 대응 횟수를 인사 잣대로 활용하던 콜센터 직원이 매번 서둘러 상담 전화를 끊어버리는 사태에 직면했던 한 외국기업을 예로 들었다. KPI로 평가 이전에 일의 열정과 의지를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열정을 가능케 한 CEO의 의지가 뒷받침됐던 것도 휴맥스의 행운이라고 평가했다.
◇이용훈 상무 프로필
이용훈 휴맥스 혁신실 상무는 휴맥스에 입사해 개발과 영업 업무를 담당하다 2005년 출범한 혁신실을 이끌게 된 휴맥스 최초의 혁신 기획가다. 당시 네 명으로 구성된 혁신실을 이끌고 경영혁신 이론과 심리학 등을 독파하며 벤처 기업 특성에 맞는 혁신 기법 운용으로 휴맥스의 재고절감과 매출 효과에 기여했다. 2007년 PDM 시스템 도입과 2009년 SCM 시스템 개발 등을 진두지휘했으며 휴맥스의 시스템 개발과 프로세스 혁신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