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에는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저절로 창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산고 끝에 한 생명이 탄생하듯이 고통 속에 창조의 꽃이 핀다. 정말 사랑하면 상처받을 수 있다. 가슴에 멍이 들 수도 있다.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흉터가 되고, 흉터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되살아날 수 있다. 사랑하는 대상이 마음대로 창조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삶을 창조하는 여정은 위기의 연속일 수 있다. 위기가 동반되지 않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대강 좋아하는 삶은 삶이 싫어지면 쉽게 사랑의 끈을 놓아버리면 된다. 그래서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는 것은 삶의 위기와 고난까지도 사랑한다는 말이다.
운명을 거슬러 올라가는 창조의 `여정`에는 `열정`과 용기가 요구된다. 용기 없이 두려움에 맞설 수 없고 `열정` 없이 `여정`을 마칠 수 없다. `열정` 없이 운명을 재창조하는 `여정`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 `열정`이 자신이 사랑하는 운명을 재창조하는 `여정`의 연료라면, 용기는 내가 사랑하는 운명의 앞길을 밝히는 등불이다. 열정은 환상적이고 화려하고 멋있어 보이지만 그것은 열정이 발휘되어 나타난 표면적 결과일 뿐이다!
가혹한 시련의 용광로에서 담금질되어 비로소 뜨거운 쇳물로 돌아오는 `여정` 속에서 `열정`은 살아 숨 쉰다! `열정`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의 믿음 위에 피는 불꽃 같은 의지다. 운명을 재창조하는 여정에서 오르기 힘든 언덕을 만날 수 있고 헤쳐나오기 어려운 진흙 구렁텅이에 빠질 수도 있다. 걷기 평탄한 길만 있는 게 아니다. 먼 곳을 항해하는 배가 풍파를 만나지 않고 조용히만 갈 수 없다.
풍파는 언제나 전진하는 자의 벗이다. 차라리 고난 속에 인생의 기쁨이 있다. 풍파 없는 항해, 얼마나 단조로운가! 고난이 심할수록 내 가슴은 뛴다고 니체는 외치고 있다. 길이 험하면 험할수록 가슴이 뛴다. 인생에서 모든 고난이 자취를 감췄을 때를 생각해 보라! 계속해서 무사태평한 삶을 살아가는 최후의 인간들에게 `그 이상 삭막한 것이 없을 것`이라고 니체는 최후통첩을 날린다. 운명아, 비켜라! 용기 있게 내가 간다.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