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정의 어울통신]퍼스트무버의 조건

세계의 시선이 우리 기업에 꽂혔다. 지난주 국내 휴대폰 빅3의 신제품 발표 얘기다. 팬택이 `베가레이서2`를 발표했고, 삼성전자는 다음날 영국에서 `갤럭시S3`를 선보였다. LG전자도 같은 날 `옵티머스 LTE2`를 출시했다. `퍼스트 무버(시장 선도자)` 전략을 앞세운 야심작들이다. 문제는 우리 기업의 야심작이 세계 시장에서 통할 것인지다. 애플의 기대작이 출시되기 전이라는 시기적 미묘함도 있다. 퍼스트 무버의 방향성과도 직결된다.

퍼스트 무버가 무엇인가. 기존의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 전략과 달리 앞서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선도적 기술혁신 개념이다. 기술혁신은 그래서 기존에 없던 기술과 함께 그것을 개발하고 활용하는 사회를 동시에 구성하는 활동이다.

우리나라 휴대폰은 그동안 패스트 팔로어 전략으로 급속한 발전을 거듭했다. 노키아·모토로라가 승승장구할 때 그들을 따라잡기에 몰두해서 턱 밑까지 추격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패스트 팔로어 전략 이상이 필요한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그렇다면 퍼스트 무버의 조건은 무엇이 있을까.

1885년 이후 127년간 한국인으로 살아오고 있는 언더우드 가문의 피터 언더우드는 `기존의 성공 방정식을 버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창의력으로 승부를 걸라는 것이다. 창의력은 답을 찾는 능력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정답을 빨리 찾아내고 따라 하는 패스트 팔로어 전략이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해 나가면서 길을 찾아가는 퍼스트 무버의 혁신이 답이라는 지적이다.

맞는 말이다. `퍼스트 무버`의 저자이기도 한 그의 말대로 이제는 창의력을 바탕으로 인문학과 공학을 결합한 통섭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미지의 세계를 헤쳐가기 위해서는 소수의 리더십보다는 많은 사람들의 집단 지성이 필요한 시기다. 결국 교육의 문제로 귀결된다. 따라 하기식 암기 위주의 학교 커리큘럼이 바뀌어야 한다. 문제를 제기하는 능력을 갖춘 인재를 길러야 한다. 저명한 혁신정책 전문가인 송위진 박사는 이 같은 상황을 예견하고 `탈추격형`, 이른바 퍼스트 무버형 기술혁신 활동이 필요함을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역설도 있다. 기술·경제적 리스크가 상존한다는 것이다. 패스트 팔로어는 1등 기업의 뒤를 쫓아가며 잘한 것은 따라하고 못한 것은 고쳐 나가면 됐지만, 퍼스트 무버는 미지의 영역을 개척해 나가야 하기 때문에 성공의 달콤함만큼 위험의 쓴맛도 크다.

필름 분야의 세계적 선도기업인 코닥의 예가 단적이다. 노키아도 마찬가지다. 퍼스트 무버 전략이 맞지 않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근 서울대 교수는 최근 세계 소비시장의 중심인 미국의 문화코드에 맞추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오히려 패스트 팔로어 전략이 제품의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삼성, LG, 팬택 등 우리 기업 일각에서도 이 같은 주장이 나오고 있다.

과연 무엇이 옳은가. 분명한 것은 혁신의 가치와 결과는 기존의 방법론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퍼스트 무버의 혁신은 그래서 멋진 실패에 상을 주고 평범한 성공에 벌을 주는 데서 시작한다.

우리 기업들이 퍼스트 무버 기치를 높이 들었다. 애플, 노키아, 화웨이, ZTE 등 퍼스트 무버와 패스트 팔로어로 대변되는 기업 모두 전면전 양상이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한국을 가장 잘 안다고 하는 벽안의 피터 언더우드에 따르면 새 시대를 맞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속도계가 아닌 나침반이다. 발사-조준-준비의 나라가 아니라 이제는 따라 하기의 숙명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는 것이다. 그래야 세계 시장에서 우리의 미래가 있다.

박승정 정보사회총괄 부국장 sj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