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금융소비자는 참 착한 것 같다.”
9일 한 행사장에서 만난 외국계 금융사 관계자에게 “이번 저축은행 사태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돌아온 답이다.
지난해 미국의 `월가 점령(Occupy) 시위`를 빗대어 한 말로 짐작됐다. 얼굴이 화끈했다.
실제로 정부 저축은행 퇴출 발표 뒤 첫 영업일이었던 지난 7일 기자가 찾은 한 저축은행은 내려진 셔터 사이로 영업정지를 알리는 `경영개선명령공고문`만 보일 뿐 성난 구호도, 들끓는 함성도 없었다.
직원이나 고객보다 몰려든 취재진이 더 많아 머쓱했을 정도였다.
물론 지난해 두 차례에 걸친 부실 저축은행 퇴출을 경험했던 고객들은 대부분 예금액을 5000만원 이하로 조정해놓아 안심하는 분위기다.
정부가 나서서 피해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 구제대책을 내놓는 것도 후폭풍이 없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일반인 사이에서는 `난 저축은행에 넣을 돈 없어 다행이다` `위험하다는데도 굳이 높은 이자 챙기려다 잘됐다`는 반응까지 있는 걸 보면 이 사태를 보는 국민 정서가 어떤지 읽힌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적 비용이 있다. 신청된 가지급금을 줘야하는 예금보험공사의 돈은 어디서 나오겠는가.
각종 특례로 구제받는 기업들에 돌아갈 지원액과 감면 대출금은 결국 유무형의 각종 공적자금과 세금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는 동안 감독당국은 뭘 했을까. 김상우 전 부원장보 등 금융감독원 출신 고위급 인사들은 저축은행으로 자리를 옮겨 금감원을 `감독 않는 감독당국`으로 만들었다. 낙하산 감사를 없애겠다는 약속은 그야말로 공염불로 끝났다.
전직 대검찰청 부장검사, 서울고등법원 판사,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행정안전부 차관 등 고관대작들이 저축은행에서 억대 연봉을 챙기며 `대 정부 로비 창구` 역할을 할 때, 언론은 이들의 인사로 `동정란`을 메우기만 바빴다.
이 글은 미필적 고의에 따른 직무유기 반성문이기도 하다.
류경동 경제금융부 ninan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