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지난 50여년에 걸쳐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제조 강국으로 성장했다. 다양한 성공요인이 있겠지만 정부 주도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이 중심에 있었던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간과해서는 안 될 또 하나의 성공요소가 있다. 에너지 다소비형 제조업에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한 것이다. 산업정책과 에너지정책의 적절한 조화가 자원이 전무한 우리나라를 제조업 국가로 성공시키는 핵심 역할을 했다.
문제는 우리 에너지 인프라가 앞으로도 우리 경제와 사회에 에너지를 값싸고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지다. 최근 소비자는 똑똑하게도 난방을 위해 고급 에너지인 전기를 채택하기 시작했다. 이 결과 난방에 의한 동계 `첨두부하`가 냉방을 켜는 하계 첨두부하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 더 많은 발전소와 더 많은 송전탑을 지어야 한다.
발전소와 송전탑을 세우는 일도 예전 같지 않다. 과거와 달리 막대한 입지비용을 지불해야만 시설을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 전력망은 이제 점차 나이가 들어가면서 고장 확률이 높아졌다. 이미 전력망 운영 과정에서 고장전류나 안정도에 상당한 부담과 위험 징후가 나타났다.
그럼에도 전기 수요는 예측불허로 증가한다. 그나마 신규 발전소를 짓겠다는 기업이 많아서 다행이다. 그러나 대다수 발전소는 해안에 위치한다. 이들이 생산하는 전력에는 백두대간을 뚫고 수도권을 관통하는 송전탑 건설이 필요하다. 송전탑 건설은 전국적으로 지연된다. 원가에 못 미치는 낮은 전기요금으로 수요는 꾸준하게 증가한다. 이에 대비할 투자재원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입지도 투자비도 부족한 상태에서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는 매우 중요한 선택이다.
결론적으로 전력망 고도화로 극복해야 한다. 전력망 고도화는 `지능화와 분산화`를 의미한다. 앞으로 도입할 신재생 전원의 안정적 운전을 위해 전력망 확장과 지능화가 필요하다. 즉, 송배전이 더 강하고 똑똑해져야 한다. 송전망을 전국에 골고루 구축해야 한다. 배전망 역시 보다 지능화해 신재생·수요자원 등을 활용하는 데 문제가 없게 해야 한다. 이를 관리하는 운영체계(EMS)는 이 모든 변화를 선도할 수 있어야 한다.
송배전망 설비 보강과 지능화를 위한 투자 확대는 무엇보다 우선해야 한다. 정부와 산학연은 그동안 문제 해결을 위해 전력IT와 스마트그리드 기술 개발을 추진해왔다. 앞으로도 성과를 높이기에 꾸준히 경주해야 할 것이다.
장기적이고 근본적으로는 입지난과 전력망 혼잡 부담을 줄이기 위해 발전소를 수요처 근처로 이동하는 분산화가 요구된다. 분산화는 복합화력·열병합·연료전지 등 작지만 혁신 속도가 빠른 발전기술 채택을 뜻한다. 계통신뢰도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 특히 대규모 풍력단지의 출력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해 기동 속도가 빠른 발전기 조합이 예비력으로 필요하다. 가스발전기도 하나의 대안이 될 것이다. 분산화한 발전기의 주 연료는 가스가 된다. 다행히 가스 수급은 우호적 여건이 형성됐다. 최근 미국 셰일가스로 세계 가스 가격이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우리 전력망은 노후화하면서 많은 어려움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런 시급한 상황에 한국전력은 매출의 50%를 해외에서 찾겠다고 설정했다. 전력망 유지보수와 투자에 소홀하지 않을지 우려된다. 전력망 지능화와 분산화는 계통신뢰도 향상뿐 아니라 신재생 확대, 에너지 효율화에도 필수다. 정부와 한전이 지금보다 전력망 고도화에 노력해주기를 촉구한다.
김창섭 가천대학교 에너지IT학과 교수 cskim40718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