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서 실패하라=먼지봉투 없는 진공청소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먼지봉투가 없으면 진공청소기가 막히지 않는다. 먼지봉투가 불편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는 걸 누구나 알았지만 지난 100년간 아무도 바꾸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제임스 다이슨이라는 사람은 그걸 해냈다. 이 책은 그 발명 이야기다.
공학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먼지봉투의 존재를 알고는 그 형편없는 디자인에 충격을 넘어 분노를 느끼게 된다. 먼지봉투를 없애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100년전 방식 그대로 진공청소기를 팔아먹는 제조사들에 대한 분노였다. 마침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났던 그는 마구간에서 작업에 들어간다.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하면서 배우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5년간 무려 5127개의 모형을 제작해본 끝에 세계 최초의 먼지봉투 없는 진공청소기를 개발한다.
하지만 고생이 끝나지 않았다. 빚이 많았던 그는 직접 생산할 수가 없어 특허권을 팔기 위해 세계를 누빈다. 하지만 영국과 유럽, 미국 어느 기업도 그의 아이디어를 사려하지 않았다. 세계적 대기업이란 것이 특허를 헐값에 사려하거나 몰래 베끼려는 노력을 하는 것을 보고 처음 먼지봉투를 봤을 때와 같은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그는 결코 타협하지 않았고 제품 개발을 시작한지 13년만에 다이슨을 차리고 직접 청소기를 생산할 수 있었다.
제임스 다이슨은 앞서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 아이디어를 회사에서 쫓겨나기 직전 이사회에 공개했다. 반응은 냉담했다. “하지만 제임스, 그렇게 좋은 진공청소기가 있다면 후버(미국 진공청소기 회사)에서 진작 내놓지 않았겠어?” 이 말이 다이슨의 가슴에 무언가 불꽃을 일으켰다. 다이슨은 지금도 그 때의 일을 생생히 기억한다고 한다. 다이슨이 혁신의 대명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이 같은 고정관념과 냉소, 패배주의, 속물근성에 도전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무언가 새로운 것, 남다른 것, 진정한 변화를 통해 안일한 자기만족에 젖어 있던 기성 세계를 뒤집는 것을 그는 즐겼다. 이야말로 혁신의 비밀인 것이다.
이 책은 제임스 다이슨이 직접 쓴 것이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성공하기까지 과정이 생생하게 기술돼 있다. 육성이 살아있고 사례가 풍부하다. 흔치 않은 오래된 사진도 실려 있다. 비즈니스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보고 들은 내용도 가감 없이 실었다. 경쟁사나 계약상대방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도 들어 있다. 영국 경제가 본질(제조업)에서 벗어나 겉멋(광고와 금융)만 부린다는 비판도 경청할 만하다. 무엇보다 `한 번의 도약`보다 뚜벅뚜벅 조금씩 나아가려는 그의 성실과 끈기가 가슴에 와닿는다. 이 시대의 진정한 장인 다이슨으로부터 배울 게 너무나 많다.
제임스 다이슨 지음, 박수찬 옮김. 미래사 펴냄. 1만7000원.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