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본 투 글로벌(Born To Global)` 시대다. 설립부터 세계 시장을 겨냥한다는 의미다. 최근 창업 전선에 뛰어드는 청년 스타트업가에게 적합한 말이다. 그들은 두려울 게 없다. 태어나면서부터 글로벌 마인드로 살았다. 플랫폼화된 기술 개발 환경은 그들의 글로벌 정신에 힘을 더한다. 시장도 벽이 사라진지 오래다. 미국에서 통한 제품·서비스가 유럽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통한다.
뒤집어 말하면, 우리나라 히트작이 아시아는 물론 미국·유럽에서도 성공한다. 그동안 우리나라 수출 역사는 대기업이 써 왔다. 정부 지원책은 중소기업에 집중됐다. 이제는 스타트업 기업도 챙겨야 한다. 그들이 수출 전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날이 멀지 않아서다. 무역협회는 민간 차원에서 국가 무역 확대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성과도 많다. 지난 2월부터 협회를 이끌고 있는 한덕수 회장을 허운나 스타트업포럼 이사장이 만나 스타트업 기업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허운나 스타트업포럼 이사장=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일자리가 많이 줄어들 것으로 우려된다. 이 때문에 각국은 일자리 창출 일환으로 창업 확대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일자리뿐만 아니라 국가 미래 경쟁력 강화 측면에서 창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말해 달라.
▲한덕수 무역협회장=창업은 중요하다. 최근 청년 스타트업가 창업이 활기를 띠고 있다. 문제는 `세계에 나가서 당당히 맞설 수 있는 기술을 보유했느냐`다. 물론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기술력으로 승부해 인정을 받으면 크게 성공할 수 있다. 또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다. 일자리는 대기업에서 나오지 않는다. 경쟁력 있고 유연한 중소기업이 많이 등장해야 일자리가 창출된다. 정부는 자금·인재 등 과거 창업자들이 어려움을 겪었던 부분을 챙겨야 한다. 다만 과대한 지원은 문제다. 처음부터 큰 폭 지원은 오히려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허운나=대기업 일자리 한계 문제는 옳은 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젊은이들이 대기업과 국가고시 등 안정적인 자리에 매달린다. 우수한 학생일수록 창조적 기업을 만드는데 노력할 필요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한덕수=도전정신이 충만해야 할 젊은이들이 고등교육을 받고 대기업만 선호하는 것은 굉장히 큰 문제다. 교육은 중요하다. 사회적으로 낭비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1950~1960년대 설비시설도 없이 공학교육을 받았다. 그들이 1970~1980년대 성장의 주역이 됐다.
이제는 창업의 중요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젊은이가 어느 길로 가는 것이 옳은지 깨닫도록 해야 한다. 대기업에 가서 일부 역할을 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중소기업에 가서 기술·경영·회계·세무 등 필요한 것을 배워서 이후 창업할지 선택해야 한다. 후자가 장점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해야 한다.
-허운나=무역규모가 1조달러를 넘었다. 이제 2조달러 시대를 바라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중견 수출기업이 지속적으로 등장해야 한다. 무역협회는 어떤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나.
▲한덕수=우리나라 중소기업 현황을 `9988`이라고 한다. 99% 중소기업이 88%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설명이다. 앞으로 일자리는 중소기업에서 찾아야 한다. 무역도 마찬가지다. 중소·중견기업이 우수한 부품과 소재를 생산하지 않으면 대기업에서 품질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없고, 우리 수출이 다양화되기 위해서는 중소·중견기업이 수출전선에 뛰어들어야 한다. 10개 안팎의 대기업 제품만으로는 수출이 늘어날 수 없다. 제품 수도, 수출기업 수도 늘어야 한다. 중소기업은 국제시장 참여 경험이 적다. 그래서 국제시장에 대한 두려움이 많다. 인천을 찾아 중소기업인들과 대화를 나눴는데, 수출을 하려고 해도 담당할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무역 전문가가 회사에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역협회는 연간 800명 가까운 무역인재를 키운다. 이들은 취직도 잘 되는데 인천만 돼도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역별로 무역 실무 전문가 양성과정이 필요하다.
-허운나=스타트업 포럼은 창업 생태계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생태계에서 교육도 중요한 부분이다. 좋은 아이디어 부탁한다.
▲한덕수=인재를 키우는 중심은 교육기관이 맡아야 한다. 기존 교육기관이 효율적이지 않다고 새롭게 만들려고 하면 기존에 투자한 것을 모두 다시 해야 한다. 시간이 걸린다. 무역실무가 필요하다면 산업계 무역전문가들이 겸임교수로 대학에서 가르치도록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허운나=스타트업 본 투 글로벌 시대다. 창업부터 해외를 겨냥하는 스타트업 기업이 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한덕수=당연한 시각이다. 우리나라 시장은 1조달러다. 세계는 62조달러다. 62배의 경제시장이 존재한다. 그곳을 타깃으로 하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처음에는 테스트가 필요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세계시장을 봐야 한다. 세계 벽을 넘지 못하면 세계적인 기업이 될 수 없다. 단순히 규모의 문제만이 아니다. 62조 시장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해야 한다. 해외를 보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도전해야 한다.
-허운나=정부는 자유무역협정(FTA)에 적극 나서고 있다. 수출업계에는 큰 기회다. 벤처, 스타트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떻게 보는가.
▲한덕수=분명히 커다란 기회다. 우리나라는 8개국과 FTA를 체결했다. 이들 나라의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세계 전체의 60%에 달한다. 한·중·일 FTA 협상도 연내 개시한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중동 국가들과도 FTA망 구축을 준비 중이다. 국내에 시설이 있지만 외국에 있는 것과 동일한 조건에 거래를 하게 된다. 해외를 봐야 한다. 한 평의 풀밭에서 이제는 하나의 평원에서 뛰어야 한다.
-허운나=스타트업기업에게 수출은 쉽지 않다.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조언 부탁한다.
▲한덕수=제일 중요한 것은 좋은 제품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기술이 있어야 한다. 기술을 갖게 되면 벤처캐피털이 투자하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외국 자본도 이용할 수 있다. 세계화된 시대다. 자본이 세계를 돌아다닌다. 능력이 있다면 그 자본을 쓸 수 있다.
-허운나=좋은 기술을 갖고 있어도 벤처캐피털과 바이어를 찾는 것이 쉽지 않을 때가 있다. 최근에는 기술이 융합되면서 새로운 기술을 제대로 이해시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한덕수=기술만 있어서는 안 된다. 그 기술을 제대로 알리는 것도 중요한 능력이다. 투자자, 바이어를 설득하는 것은 결국 기업인 몫이다. 차별화된 기술과 함께 사람을 이해하고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 나가서도 마찬가지다.
-허운나=스타트업 기업에 `기업가 정신`이 강조된다. 기업가정신을 어떻게 정의하나.
▲한덕수=도전정신으로 정리하고 싶다. 무엇보다 기득권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언제나 외부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중요하다. 필요에 따라서는 과감히 합쳐야 한다. 때론 기술을 팔고, 사는 것에도 오픈돼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분야 전문가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네트워킹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도전하는 데는 네트워킹도 큰 도움이 된다.
-허운나=민관에서 수많은 경험을 쌓았다. 스타트업 창업자에게 멘토 입장으로 한마디 부탁한다.
▲한덕수=창업이야 말로 젊은이들이 도전해 볼 만한 것이다. 우리 민족 기질로 봤을 때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러나 창업에 앞서 훈련이 필요하다. 연구개발, 교육 이런 부분에 절대 게을러서는 안 된다. 도전정신을 발휘하고 개방된 자세로 할 수 있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주변에 언제나 도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자신감을 갖길 바란다.
-허운나=정부도 스타트업 창업자에게는 중요한 파트너다. 우리 사회, 정부가 이들에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나.
▲한덕수=정부가 창업자를 끌고 가는 것은 옳지 않다. 다만 청년 창업자가 도전정신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 정부가 펼쳤던 정책 가운데 경쟁을 제한하는 요소가 있다면 과감히 풀어야 한다. 벤처가 개발한 기술이 생태계 지원을 받아서 대기업을 이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모습이 자주 등장해야 한다. 그러면 청년들 사이에 `나도 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될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과거와 달리 두려워하지를 않는다. 그런 그들을 제약하면 안 된다. 다만 리스크(위험)에 대해서는 정부가 어느 정도 책임질 필요가 있다. 예컨대 벤처캐피털에 대해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이다. 정부가 일정 부분 리스크를 분담하는 것이다. 그러면 창업에 뛰어들고 투자에 나서는 곳이 많아진다.
-허운나=옳은 지적이다. 그래야 청년이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난다.
▲한덕수=다만 악의적인 경우는 철저히 막아야 한다. 최선을 다하는 것에 대해서만 사회적으로 용납하고 인정할 수 있는 문화가 중요하다.
-허운나=최근 지방 중소기업인을 많이 만난다고 들었다. 무엇을 느끼는지.
▲한덕수=책상에 앉아서는 그들 문제를 이해할 수 없다. 현장에서 얘기를 듣는 것과 안 듣는 것은 큰 차이다. 지방 중소기업 대표 가운데 젊은 분들이 많다. 그들은 기술개발도 많이 하고 적극적이다.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기술개발에 매진한 기업 가운데는 좋은 곳도 많다.
-허운나=이달 말이면 취임한지 100일이 된다. 그동안 소회를 부탁한다.
▲한덕수=의료·교육 등 서비스 분야를 발전시키겠다. 이 분야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수출도 많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력을 높여야 한다. 브랜드도 알려야 한다. 우리 서비스 문화가 해외에서 인정받도록 해야 한다. 경제·무역·문화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제가 지속성장할 수 없다. 그것을 결합시키는 노력을 무역협회가 하려고 한다.
-허운나=스타트업 기업을 위해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한덕수=무역협회는 전시와 컨벤션이 전문이지만 스타트업 기업 인큐베이팅에도 관심이 있다. 협회가 위치한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는 주중에 14만명, 주말에 25만명이 모인다. 소셜인프라가 잘 돼 있다. 이곳에서 스타트업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인큐베이팅을 통해 좋은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공간을 만드는 작업을 추진해 볼 생각이다.
정리=
김준배기자 j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