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애달픈IT

“스마트금융? 글쎄… 그걸 꼭 그렇게 (중시)해야 하나. 패션(유행) 아닌가. 보안 문제도 그렇고. 산업적 측면에서 봐야지. 일자리 창출 같은.”

올해 초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이 신규 출입기자들과 상견례를 겸한 점심식사 자리에서 한 말이다. 기자 입장에서 보면 분명 말실수다. 된 발음으로 이른바 `꺼리`였다.

하지만 접었다. 현 정권 수뇌부의 정보기술(IT) 의식 수준이 그와 크게 다를 바 없는데, 갑론을박이 무의미해 보였다.

권 원장 말마따나 낮술도 몇 순배 돈, `캐주얼(비공식)한 자리`에서 나온 발언 맞다. 하지만 이 나라 금융감독기관 최고 수장의 금융IT 인식 수준이 이 정도구나 싶던 기억만은 가시지 않는다.

그런 그가 칼을 빼들었다. 오는 29일부터 한 달간 금감원이 `IT부문 특별감사`를 시행하면서다. 그 첫 대상은 농협이다. 앞서 IC카드 교체 혼선과 관련해 IT감독국장과 예하 팀장 등을 전격 경질했다.

농협은 이제 막 금융지주 체제를 갖추고 새롭게 IT조직을 추스른다. IT감독국 역시 금감원 내 대표 한직이다. 칼날을 유독 IT 쪽을 향해 벼렸다.

물론 지난해 4월 전산장애 사태 이후에도 빈번히 사고를 일으켜 온 농협이나, 각종 금융전산 문제를 예방하지 못한 IT감독국에도 책임이 없진 않다.

그렇다고 금융 악재만 터지면 시범케이스 삼아 IT를 겨냥하는 것은 졸렬하다. 이런 식이라면 이번 저축은행 사태 역시 망 운영기관으로서 이를 미연에 모니터링하지 못한 저축은행중앙회나 ASP·유지보수 업체부터 족쳐야 할 일이다.

조직이 희생양을 필요로 할 때, 언제나 그렇듯 가장 힘 없는 인사나 부서가 그 타깃이 된다. 금융가에선 그게 여전히 IT라는 게 애달프다.

류경동 경제금융부 차장 ninan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