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률 지음, 알투스 펴냄
개구리를 끓는 물에 넣으면 바로 튀어나오지만 개구리가 몸을 담근 물을 조금씩 서서히 데우면 넋 놓고 있다가 그대로 죽는다죠. 미묘한 상황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비극을 상징하는 예화입니다. 이 책은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 저마다 살 길을 찾아 이리 뛰고 저리 뛰다 서서히 질식해 가는 보통사람들에게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하는 책입니다.
![[e북 초대석] 죽음의 계곡](https://img.etnews.com/cms/uploadfiles/afieldfile/2012/05/24/286291_20120524092804_010_0001.jpg)
현역 언론인인 지은이는 취업에 목맨 20대부터 앞날 걱정하기 바쁜 50대까지 왜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지 묻습니다. 우리 부모와 선배가 그렇게 살아야 했는지를 아는 것이 도움이 된다며 경제사를 훑습니다. 주로 미국 자본주의를 살피는데요, 책 제목이 된 `죽음의 계곡` 이야기가 인상 깊습니다.
미국 서부 오리건 주의 윌래밋 밸리는 19세기 중반까지 칼라푸야라는 인디언 부족이 살던 축복받은 땅이었답니다. 땅이 비옥하고 기후는 온난해 이 부족은 풍요로웠고 고유의 문자까지 사용할 정도로 문화를 발달시켰다죠. 문제는 여름만 되면 많은 주민이 시름시름 앓다 죽어나갔다는 점이죠. 부족 원로들은 원죄론을 들먹이거나 축복의 땅에서 사는 대가라고도 풀이했죠. 어쨌거나 죽음만 피하면 안락한 생활이 보장됐기에 칼라푸야족은 대를 이어 살다가 결국은 이 땅을 욕심 낸 백인들의 총부리에 밀려서야 이 계곡을 떠났습니다.
지은이는 이 이야기에서 `적당히 죽어나가면서 적당히 먹고 사는, 아무도 떠나지 않았기에 누구도 떠나지 못하는` 모순된 상황을 봅니다. 그리고 우리 삶과 연결 짓지요.
미국에서 독점자본가가 등장한 `야만의 시대`를 거쳐 20세기 중반 절대 다수의 미국인이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된 `타협의 시대`를 이야기합니다. 이 때 등장한 것이 새끼를 품을 순 없지만 알만 낳으면 주인이 주는 모이를 먹으며 폐계가 될 때까지 생을 보장받는 `양계장 암탉형 인간`이 등장한답니다.
그나마 80년대 이후는 이런 삶도 사라지고 기회의 사다리를 붙잡으려고 죽기 살기로 경쟁하고 노후까지 대비해야 하는 승자독식의 시대가 닥칩니다. 모든 상황을 개인 탓으로 돌리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자기계발형 인간`이 화두가 됩니다.
지은이는 이 대목에서 옛날 동해에 살았던 귀신고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나운 범고래들과는 달리 이 고래들은 작은 따개비를 몸에 붙이고, 새끼고래들을 등에 업고 너른 바다를 유영했다며 `창조적 공생`을 제안합니다. 단순한 경제사를 넘어 새로운 삶의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의미 있는 책입니다.
책 속의 한 문장: 아무리 `자기실현`이라고 포장한들, 경제적 가치에 종속된 자기계발은 `나를 어떻게 하면 더 잘 팔 수 있을까`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을 팔아야 하는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만회할 수 있는 것은 돈이라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더 가져야 한다는 욕망의 늪에 더 깊숙이 빠져들고 맙니다.
자료제공: 메키아 (www.mek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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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영기자 hybrid@etnews.com